공적자금이 투입된 시중은행들이 9월말 경영개선 계획안 제출을 앞두고 대규모 인력 감축에 나서고 있다고 한다. 이들 시중은행의 인력 감축 규모는 2000~3000명선이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런데 이 같은 인력 감축 움직임과 관련해 최근 한 은행에선 전체 임직원 중 14%에 해당되는 650여명을 감원키로 하고 명예퇴직 신청을 받았다고 한다. 명예퇴직 신청자에 대해선 12~17개월치의 월급을 명예퇴직금으로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정말 기가 막힐 일이 아닐 수 없다.
현재 공적자금이 투입되고 있는 시중은행들은 스스로의 힘으론 운영을 정상화할 수가 없는 한계상황에 부딪힌 곳들이다. 기업으로 치자면 부도 직전의 상황이다. 시장경제 논리로만 따진다면, 당연히 부도가 나야 할 곳들이지만, 사회 전반에 미칠 악영향이 너무 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정부가 나서서 수십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국민의 혈세를 동원해 부도를 막고 있는 것이다.
사정이 이와 같은데도 해당 은행에선 명예퇴직자에게 12~17개월치의 월급을 명예퇴직금으로 지급하겠다고 하고 있다. 은행 스스로가 흑자를 내고, 그 돈으로 명예퇴직금을 준다면야 12~17개월치가 아니라 그 몇 배를 명예퇴직금으로 준다 해도 뭐라 할 말이 없지만, 현재 공적자금으로 근근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최악의 재정상태임을 감안할 때 그 명예퇴직금은 어디에서 나오겠는가?
지난 IMF 때의 상황을 돌아보면, 다니던 회사가 부도가 나는 바람에 퇴직금 한 푼 못받고 일터를 잃은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런데 지금 은행권에선 국민의 혈세를 축내 자기네 식구들을 명예(?)롭게 퇴직시키려 하고 있다. 직접적이건 간접적이건간에 현재의 은행 부실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에게 명예퇴직금이란 돈보따리를 안겨서 명예롭게 떠날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를 해주려 하고 있다.
만일 2000~3000명의 시중은행 감축 대상 인원들에게 이런 식으로 12~17개월치의 명예퇴직금을 지급할 경우, 1인당 월급 100만원을 기준으로 12개월치씩만 지급한다 해도 최소 수백억원대의 자금이 소요된다. 은행권 평균임금이 일반기업들보다 높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실제 명예퇴직금으로 소요될 금액은 그 몇 배에 달할 가능성도 있다.
자신의 의사에 반해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게 된 사람들에게는 안된 일이지만, 해당은행의 부실에 직접적이건 간접적이건간에 책임이 있는 구성원들이 명예퇴직금이라는 돈보따리를 챙겨 명예롭게 직장을 떠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퇴직금이나마 온전하게 챙겨 떠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야 할 것이다.
국민의 혈세로 조성된 공적자금이 그런 식으로 헛되이 쓰여지는 것은 결코 묵과해선 안될 일이며, 따라서 관계당국에선 명예퇴직 운운하며 아직도 정신을 못차리고 있는 은행들에 대해 좀더 강도 높은 경영개선 대책을 수립토록 하는 한편, 공적자금 등 자금 사용에 대한 관리감독을 한층 강화해 국민의 혈세가 엉뚱하게 낭비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공적자금 투입은 결국 밑빠진 독에 물 붓기가 돼 국민 부담만 가중시키게 되고, 반면 실효는 거두기 어려울 것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