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정말 사람이 못할 짓이야"

훼불방지! 동국대 불상을 24시간 지키는 세 아저씨

등록 2000.08.31 10:51수정 2000.09.20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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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색 비치 파라솔이 팽팽하게 펼쳐 있다.

날은 매우 무덥다.

바닷가 풍경?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어! 이 일이 쉬워 보여? 이거 정말 사람이 못할 짓이야."

늦더위란 녀석이 '버티기 작전'으로 자신의 남은 힘을 모두 쏟아붓고 있는 8월의 막바지. 장충동에 위치한 동국대학교에서는 가볍게 웃어 넘기기엔 너무 무거운 묘한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비치파라솔을 펼쳐놓고 새벽부터 나와 앉아 있는 한 아저씨. 오후가 되자 어떤 아저씨가 나타나 교대를 해 준다. 이 아저씨는 한밤중이 되도록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저녁 10시가 막 지났을까? 이번엔 또 다른 아저씨가 나타나더니 온밤이 하얗게 새도록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도대체 뭘 하는 걸까?

"뭐하는 거겠어. 부처님 지키는 거지. 지난번 그 사건 몰라요? 다 알고 왔을 거 아냐."


오전 근무자 원동수 씨(55)가 말하는 그 사건이란, 지난 6월 5일 이 학교 '팔정도 불상'에 저질러진 끔찍한 행위를 말한다. 흔히 '훼불사건'으로 일컬어지는...

6월 5일의 사건. 불상에 붉은색 십자가를, 계단에는 '오직 예수'란 글씨를 새겨놓았다. ⓒ '동국'편집위원회

알다시피 동국대는 한국불교를 상징하는 종합대학. 이 학교 건학이념의 상징물이 바로 '팔정도 불상'이다.

동국대에는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종합대학인 만큼, 팔정도 불상 외에도 탑과 불교조형물이 많다. ⓒ 오마이뉴스 노순택

사건이 발생한 시각은 새벽으로 추정된다. 누군가 붉은색 락카로 팔정도 불상에 큼지막한 십자가를 그려놓았다. 그리고 계단에는 '오직 예수'라는 글씨를 흉물스럽게 적어놓았다.

학생들의 약속장소로도 애용됐던 동국대 불상 ⓒ 오마이뉴스 노순택
"그동안 학생회관 안에 있는 불교학생회 불상의 훼손이나, 제등행렬을 위해 만들어 놓은 코끼리상 방화, 경주캠퍼스의 정각원 방화 등 '훼불사건'이 여러 번 발생했지만, 이번은 너무 충격적"이라고 이 학교 정경훈 홍보과장은 말했다.

학교측은 사건 발생 즉시 관할 중부경찰서에 조사를 의뢰했고, 6월 8일에는 교수, 학생, 직원 3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참회법회'를 열었다. 그리고 적극적인 '부처님 지키기'에 한 뜻을 모았다.

"학내 불자 모두가 '사천왕'이 되자"고 결의를 다진 것이다.

학교측의 적극적인 '부처님 지키기'는 먼저 팔정도 불상 주위에 경보시스템을 장치하고, 하루 24시간 '불상 지킴이'를 두는 것으로 현실화됐다.

불상 지킴이 '사천왕' 송이갑 씨. '무더위', '모기'와 싸우는 게 이들에겐 제일 힘겨운 일이다. ⓒ 오마이뉴스 노순택

불상 주위에 설치된 경보시스템(왼쪽). 사천왕들은 몽둥이와 학교 내선이 연결된 무선전화기로 무장(?)했다. ⓒ 오마이뉴스 노순택


"그 동안 자비라는 이름 아래 늘 우리 자신의 잘못만을 참회했지만, 이번 건은 너무 충격적이고 잔인해서 그대로 묵과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린 데 따른 것"이라고, 정 과장은 설명했다.

팔정도 불상에는 아직도 그때의 상처가 희미하게 남아 있다. ⓒ 오마이뉴스 노순택
말하자면 이제 동국대 팔정도 불상을 세 명의 '사천왕'이 3교대로 지키게 된 것이다.

하지만 비치파라솔 아래의 이 '사천왕'들은 인상이 무서운 것도 아니고, 무소불위의 힘을 가지지도 못했다.

나약(?)하게도 한 여름 더위와 싸워야 하고, 밤에는 모기와 처절한 전투를 벌여야만 한다.

"낮에는 지루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사람들이 늘 지나다니는 공간인데 어디 '뻘짓(딴짓)'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그냥 정자세로 있으려니 좀이 쑤셔. 말동무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지금은 나은 편이야. 7월부터 8월 중순까지는 정말 끔찍했어."

낮 근무자 송이갑 씨(59세)는 그러나 "학생들이 불상을 훼손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요즘애들이 되바라졌다고 말들 하지만, 여기 와서 보면 그래도 착하고 순진하다"고 학생들을 감쌌다.

학교측은 이 '사천왕 근무'를 무기한으로 할 생각이다. 허나 짧은 가을이 지나고 나면, 비치파라솔이 추위를 막아주지는 않을 터.

"뭔가 고민이 필요하기는 한데, 이거 참... 뾰족한 방법이 없으니... 지금의 비치파라솔 근무도 그렇고, 겨울에 만약 초소를 만든다 해도 그렇고... 이런 일 자체가 너무 상식밖의 일 아닙니까."

정경훈 과장은 "상식밖 행위에 맞선다는 게 너무나 고통스런 고민을 요구한다"며, "다른 사람의 생각, 다른 사람의 종교를 인정할 줄 아는 성숙된 자세가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 오마이뉴스 노순택
학생들은 이번 사건으로 그동안 애용하던 '약속장소' 하나를 잃어버렸다. 불상 주위에만 가도 사천왕들이 호루라기를 불며 다른 곳으로 옮겨줄 것을 부탁하기 때문.

바닷가 비치 파라솔에는 낭만과 휴식이 있지만,
동국대 비치 파라솔 아래에는 '무더위'와 '지루함'이 엉겨 있었다.

이 웃지 못할 풍경...

송이갑 사천왕은 말한다. "그래도 학교는 커피값이 싸서 좋아. 겨우 100원이거든. 헌데 큰일났어. 싸니까 자꾸 먹게 돼."

조만간 겨울이 닥쳐온다. 지금은 파라솔 하나로 감당하고 있지만, 그때는 또 어떤 방법을 동원해야 할지... 불상과 함께 눈을 맞고 서 있을 사천왕들을 생각하니,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학교 당국은 어둠과 추위로부터 사천왕들을 지키는 방법을 생각해 내야 할 것이다.

불상을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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