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00.09.27 14:02수정 2000.09.27 14:06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행복한 사람들의 노래
이젠 모두들 여럿이 모여 술 마시는 걸 꺼린다
설혹 그런 자리 있더라도
누구도 이미 죽은 자에 대해 얘기하지 않고
작은 소리일망정 노래하자고 제의하지 않는다
비밀스런 모임의 계율같은
금단의 대화에 풋술에 취한 풋내기가
슬그머니 손이라도 내밀 양이면
무서워라,
모두는 술기운이 확 달아난
푸르뎅뎅한 얼굴로 지레 오금 저려하고
좀 더 약삭빠른 누군가는
"우리 술이나 더 먹지" 과장된 몸짓으로
맥주 두 병과 햄샌드위치를 재촉한다
안주 없는 깡소주로 단련된 위장
쌓이는 맥주병의 숫자만큼
무겁고 서늘해지는 가슴 퍼붓듯 마셔대도
취하는 사람이 없다
무엇을 줘버려서일까?
형형한 눈빛의 괄괄한 강 선배마저
목소리는 속으로만 잦아들고
"우리도 한땐 좋았지" 중소기업 영업과장이 된
김 선배의 한숨 짙은 푸념에
여윈 미소 몇이 떠올랐단 금새 사라진다
그리 멀지 않았던 그러나 먼 옛날이 돼버린
마주 걸면 탄탄하고 따숩던 어깨의 기억들
끝끝내 누구도 웅숭그린 가슴을 펴지 않고
더치 페이로 술자리는 끝난다
돌아가는 시내버스 막차에서야
참았던 슬픔은 스멀거리며 살아나고
나오지는 않는 구역질을 억지로 해대며
아스팔트에 욕지거리를 끌어다 붓지만
그래봐야 갈 곳이란 늙은 부모와
뚱뚱한 아내가 불안한 잠 자고있을
제 집밖에 없는
불행한, 한때 참으로 행복했던 사람들
95년 겨울
시작 메모
스무 살 시절. 그때는 철이 없었다. 그러니 지금보다 훨씬 무모할밖에. 두주불사(斗酒不辭)였다. 술이 좋았다. 술 마신 후에 겪게될 그 설명 못할 '낙관적 심사'가 근사했고, 목젖을 '싸'하게 울리는 청량감이 좋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내가 술 마시는 자리를 좋아하게 된 건 거기서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이유였다.
89년과 90년 우리는 밤마다 막걸리에 소주를 섞어 "휘휘" 저어 마시곤 지나간 유행가를 부르고, 새벽까지 '우리를 매혹한 그녀'에 대해 지껄였다. 그것이 우리의 존재를 증명하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옆자리에선 '술'보다 '조국'을 사랑하는 치들이 탁자를 두드리며 노래를 하곤 했다. "찢겨진 반도... 진달래 칼날을 세워" 혹은, "세상이 다 변한다해도 내가 먼저 변한다해도"...
그러나, 나도 그들도 이제 더 이상 노래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 밝은 광장과 형광등만으로도 눈부셨던 학교 앞 싸구려 식당을 걸어나와, 짧은 치마들의 교성 높은 단란주점이나 룸살롱을 부끄러움 없이 드나드는 많고많은 변절자 중의 하나로 산다. 그러니...
시인 조정권이 그랬다던가? '살아있다는 사실이 일생 너에게 술을 권하리라'. "소주 뚜껑을 이빨로 따던 시절이 그립다"는 내 취중언은 진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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