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래시장 김밥집 아저씨의 수난

등록 2000.10.01 00:22수정 2000.10.01 17:43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제가 살고 있는 도시의 재래 시장에는 유명한 김밥집이 하나 있습니다. 한일자로 길게 나 있는 시장의 중간쯤에 기껏해야 서너 평 될까말까하는 공간의 홀 안에서 숙련된 모습으로 김밥을 마는 아주머니들이 보이고, 입구에는 조그맣게 설치한 가판대에서 사장님이신 작달막한 아저씨가 부지런히 김밥을 썰어서 파십니다.

한번 온 사람들은 반드시 두 번 세 번 계속 찾게 되는 마력이 있기에 김밥을 사러 가면 항상 예닐곱 명은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저씨가 깁밥을 썰어 김밥용기에 담아주면, 손님들은 고무줄을 채워 비닐봉지에 넣고, 돈 또한 알아서 넣고 알아서 거슬러갑니다. 워낙 바쁘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으면 시간이 배로 들기에 자연스럽게 그렇게 하지요.


김밥 집 아저씨는 150cm도 채 되지 않는 작달막한 키이나 김밥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열정을 가지고 있는 듯했습니다. 우선 다른 집 김밥과 비교해 보자면, 아저씨네 김밥은 훨씬 큽니다. 그것은 밥을 많이 넣어서라기보다 고명을 많이 넣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저씨네 김밥을 한입 베어 물면,그 깊은 맛은 정말 그 어디에도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단순히 말아서 돈이나 벌어 보자가 아니라 돈을 벌기는 버는데 이왕이면 손님에게도 최대의 기쁨을 주자는 마음씀씀이가 느껴지는 그런 김밥입니다.

배가 몹시 고플 때, 혹은 출출할 때, 아저씨네 김밥을 두어줄 먹으면 금세 포만감으로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주말만 되면, 시내로 나와 김밥집으로 향합니다. 밥하기가 싫어지는 날, 저는 밥하지 않아서 좋고, 제가 해주는 밥 먹느니 아저씨네 김밥 몇 줄이 훨씬 맛있기에 남편도 제가 사오는 김밥에 이의를 달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름이 되면서부터는 텔레비전 뉴스 등지에서 식중독에 대한 기사도 많이 나고 해서 또, 여름에 먹기엔 텁텁하기도 해서 지난 여름엔 김밥집엘 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고, 의심의 여지없는 가을이 창문을 두드리자 저는 또 잊었던 김밥을 생각해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서점에 볼일이 있다면서 집을 나왔고, 텅 빈 주말 오후의 버스 안에서 벌써부터 군침을 삼키고 있었습니다. 설레이는 마음으로 시장통을 휘저어 김밥집을 찾아내었습니다. 예닐곱 명쯤 줄을 서 있으면 어떡하나 걱정을 했는데 다행이 두어 명만 보이길래 빨리 뛰어 세 번째의 순서를 잡았습니다.


저는 씩씩하게 인사를 하고 '깁밥, 네 줄 주세요'라고 외쳤습니다. 아저씨는 어디 가셨는지 안보이고 아주머니가 깁밥을 썰고 계셨는데 상냥하시고 시원시원하시길래 여전히 성업 중임이 보기에 좋았습니다. 다만 하나, 뽕짝 메들리를 너무 시끄럽게 틀어놓아서 귀가 좀 아프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셀프 서비스로 깁밥을 가방에 넣고 돌아서 올려고 하는데, 어머나! 이게 왠일입니까. 바로 옆에 또 하나의 김밥집이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오로지 김밥집만 보고 달려온지라 주변을 제대로 보지 않았는데, 일란성 쌍둥이처럼 똑같은 모양으로 나란히 있는 김밥집을 보자 처음에는 아저씨가 돈을 벌어서 확장을 했나 싶었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원조격인 아저씨네 김밥 집에는 풀죽은 아저씨의 사진이 커다랗게 액자 속에 걸려 있었는데 그 위에는 '옆집과 같은 집이 아닙니다'라는 글씨가 조그맣게 쓰여 있었습니다.

한발 짝 물러서서 제대로 보니, 새로 생긴 깁밥집은 말하자면 로열티 한 푼 안내고 원조 아저씨네 김밥집 흉내를 낸 것이었더군요. 세세한 것 모르는 사람들은 그 집이 그 집이겠지하고 착각하기 충분할 정도로 똑같았습니다.

저는 원조 아저씨네 집 앞에 서서 '세상에 우째 이런 일이'하며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있는지. 인간의 허울을 쓰고... 아저씨네 김밥집이 잘되는 것이 궁금하다면 깁밥을 사서 집에 가서 먹어보고 분석해 보며 비법을 알아내어 다른 곳에서 장사를 한다면 이해를 하겠지만, 바로 옆에서 도둑질하듯 깡그리 복사판으로 차려놓고 음악을 쾅쾅 울려대면, 부지런히, 열심히, 오로지 김밥만 말면서 십 년을 살았다는 아저씨의 노고는 어디서 보상받으란 말인지요.

흔한 말로 뭐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쓰자는 것인지는 몰라도. 아니, 뭐같이 벌어서는 정승같이 쓸 수가 없지 않을까요.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한 만큼 어떻게 버느냐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다행히 새로 생긴 깁밥집은 모든 것을 흉내낼 수 있어도 단 하나 흉내내지 못한 것이 있었습니다. 집에 와서 깁밥을 먹어보니, 크기는 크고 고명도 많이 들었어도 왠일인지 맛은 별로였습니다. 음식이 정성이라면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겠지요.

저는 내일 다시 김밥을 사러 갈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확실히 원조 아저씨네 김밥을 살 것입니다. 남이 힘겹게 이뤄놓은 것을 힘 하나 안들이고 똑딱 낙아챈 비양심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라도 두고 두고 원조 아저씨네의 단골이 될 것입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순간이라는 말이 좋습니다. 이 순간 그 순간 어느 순간 혹은 매 순간 순간들. 문득 떠올릴 때마다 그리움이 묻어나는 그런 순간을 살고 싶습니다.


톡톡 60초

AD

AD

AD

인기기사

  1. 1 감자 들고 학교 간 아이, 교사가 거절하며 건넨 씁쓸한 말 감자 들고 학교 간 아이, 교사가 거절하며 건넨 씁쓸한 말
  2. 2 마당 데크를 걷어내자 나온 것, 십수 년을 모르고 살았네 마당 데크를 걷어내자 나온 것, 십수 년을 모르고 살았네
  3. 3 주가 떨어질까봐 삼성전자 노조 비난하는 당신이 놓친 것  주가 떨어질까봐 삼성전자 노조 비난하는 당신이 놓친 것
  4. 4 [단독] 남욱 "유동규, 미국 송금 알아봐달라 요청"...다시 흔들린 '428억 약정설' [단독] 남욱 "유동규, 미국 송금 알아봐달라 요청"...다시 흔들린 '428억 약정설'
  5. 5 "계엄군이 먼저 쏘지 않았다"는 아이들 말에, 학교에 518m 길을 냈다 "계엄군이 먼저 쏘지 않았다"는 아이들 말에, 학교에 518m 길을 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