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관예우라는 것이 있습니다. 사전을 뒤져보니 '장관급 이상의 관직을 지낸 이에게, 퇴관 후에도 재임 당시의 예우를 베푸는 일'이라고 풀이되어 있더군요.
장관급 이상 뿐 아니라 고위직 공무원의 많은 수가 공기업 또는 재벌기업의 임원으로 자리를 옮긴 후 전관예우를 바라며 국가를 상대로 로비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전관예우가 가장 문제 되는 곳이 법원입니다. 판사 출신의 변호사가 맡은 사건일 경우 그 변호사가 선임한 사건은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훨씬 쉽게 풀린다는 것은 상식으로 통합니다.
사건의 진실을 가리는 곳에서, 죄의 경중을 나누는 곳에서 사건의 본질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그 무엇으로 인해 판결이 바뀌게 된다면 그것은 또 다른 범죄가 저질러지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살다 보면 전관예우는 법원이나 공무원 사회에서만 나타나는 관례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함께 일했던 직장 상사가 창업을 한 뒤 예전 부하직원에게 구매 또는 편의를 요청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예전 상사의 부탁을 매몰차게 거절할 수 있는 직장인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자신도 그 입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죠.
자신이 속한 조직에 손해를 입히게 될 것을 뻔히 알면서도, 법과 정의가 훼손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전관예우의 고리를 차마 끊지 못하고 관례라는 미명하에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것입니다.
전관예우뿐 아니라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끼리의 봐주기도 별반 다를 것 없습니다.
얼마 전 신문에 자극적인 광고문구의 책 광고가 실렸습니다. ‘자전거 여행’이라는 제목의 산문집이었는데 각 신문 서평란에서 가려 뽑은 구절들이 도대체 어떤 책인가 궁금하게 만들기 충분했습니다.
"우리 시대 최고 산문가 중의 하나"
"모국어가 도달할 수 있는 산문미학의 한 경지"
"아름다운 한국어의 밭"
한겨레에서 조선까지 성향을 달리하는 거의 모든 신문에 서평이 실렸고, 그 내용도 위에 보는 것처럼 낯 간지러울 정도의 찬사 일색이었습니다.
서점에서도 그 광고를 오려서 책 위에 걸어 두었고, 그 책은 이미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서평에 자극을 받아 나 또한 책을 사서 틈나는 대로 읽었습니다.(한겨레21 쾌도난담에서 저자 김훈씨의 이야기를 읽고 나서 그 책을 재활용 상자에 던져버리기는 했지만)
내 능력이 닿지 않아 책에 대한 평가는 하지 않으렵니다. 하지만 김훈씨가 기자가 아니더라도, 시사저널의 편집장이 아니더라도 각 신문마다 극찬을 아끼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을 품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가 대통령에게 북한을 방문하게 해 달라는 내용의 편지를 썼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는데, 그의 기자신분이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전관예우나 동료간의 봐주기가 관례라는 이름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저질러지고 있는 동안 그 무리에 끼이지 못한 이들이 받게 되는 박탈감은 점점 더 커질 것입니다.
그러한 잘못된 관행이 사라져야 세상은 조금이나마 공평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