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있는 비디오를 찾아서 10> 귀부인과 승무원

등록 2000.10.02 18:31수정 2000.10.03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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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 영화를 많이 보는 사람들이라면 여자가 등장하고 이어서 남자가 등장하는 장면에 이어진 다음 장면을 짐작하는 것은 일도 아니다.

색전구가 파랗고 빨간 조명이 드리워진 침실을 배경으로 거시기하는 남녀들의 가쁜 신음, 한두 번 가슴까지 비추기는 해도 다리에만 초점이 모아졌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닌 식상한 장면들, 속칭 공사한 게 뻔히 보이는 지나치게 친절하고 자질구레한 카메라, 그리고 무엇보다도 뻔한 스토리에 비틀것도 없는 플릇 등이 그렇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귀부인과 승무원'을 에로 영화로 바꾼다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드는 이유는 극중 유한부인의 차림새가 '날 잡아 잡수'하고 말하는 것 같기도 하고, 딴에는 멀리 애마부인이나 젖소부인처럼 무방비상태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까닭에 '쉬운 여자'처럼 보여서다.

게다가 조난을 당해 무인도에 유한부인과 하인 둘만 남게 된다는 설정이라면 또 다시 대박의 조짐까지 엿볼 수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러나 지레짐작은 이쯤 해두자. 왜냐하면 이제껏 내가 얘기한 바는 국내 에로 영화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소재로는 맞춤할 수 있어도, 거기서 주제의식을 끌어내는 것과는 하등 상관이 없다고 보는 게 타당할 테니까. 그도 그럴 것이 유한부인이라는 말에서 계급의식을 떠올리는 건 우리의 보편적인 정서랄지 일반적인 현실에선 지나치게 앞서나간 감이 있기 때문이다.

그건 리나 베르트뮬러의 '귀부인과 승무원'에 대한 서구의 평가가 앞서 지적한 바대로 계급관계와 성관계를 비트는 장치(유한부인과 하인의 관계에서 조난 후에 무인도에서의 남과 여의 관계로 바뀜)에 의해서 평가받는 까닭이다. 특히 계급의식 면에선 진보적이고 성의식 면에선 반동적이라는 평가가 주를 이루는 그니의 작품세계가 굳이 표현하자면 여성감독으로서는 의외라 할 수 있는 결말에 다다르고 있는 것도 놓쳐서는 안 된다.

더군다나 결말은 예의 유한부인(도나 라파엘라)이 하인(젠나리오)을 떠나 사랑하든 사랑하지 않든 간에 남편에게 돌아간다는 설정이고 보면, 내게는 계급관계 면에서 진보적이라는 평가 역시 온당한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그녀의 사랑이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어서 그렇다기보다는 고급스런 유희로 보여서일지도 모르지만, 아무려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어정쩡함은 리나 베르트뮬러가 살았던 동시대의 그와 그들의 관계를 말하는 표준은 아니었을까 싶어서다.


그래서일까? 사랑을 잃고 울부짖는 젠나리오의 울부짖음은 호소력이 없이 허한 마음을 채우지도 못하고 공중에 흩뿌려진다. 유한계급의 고급스런 유희에 대한 자각이나 일말의 분노 대신 애처로움이나 안쓰러움 없이 밋밋했다고 보는 이유는 미처 생각지 못한 그 함정 속에 있을지도 모를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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