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열기에 묻혀버린 '윤락녀'의 죽음

군산 윤락가 화재 사건 보고서 2

등록 2000.10.02 17:03수정 2000.10.03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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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열기에 묻혀버린 '윤락녀'의 죽음
지난 19일 시드니 올림픽 양궁에서 윤미진, 김남순, 김수녕이 나란히 금 은 동메달을 따며 호주 하늘에 태극기를 휘날릴 때, 우리 국민들도 TV앞에 지키고 앉아 환호성을 질렀다.

그러나 몇 시간 전 우리 나라의 서해안에 위치한 항구 도시 '군산'에서는 작은 화재가 발생했고 20∼24세의 윤락녀 다섯 명이 질식사했다.

이 화재 사건은 이날 저녁 TV뉴스에서 잠깐 보도가 된 후 화재 사고 다음 날만 지역 일간지들이 사회면 톱으로 다루었을 뿐 대부분의 신문은 침묵했다. 다섯 명의 죽음은 올림픽의 환호성에 묻혀 그저 그렇게 조용히 몇 몇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는 정도였다.

이들의 장례식이 열리던 30일, 한겨레신문과 오마이뉴스를 제외하고 다른 신문기자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장례식마저 조용히 끝났다.

먼 나라 호주에서 금메달 몇 개 더 따는 것이 국내에서 다섯 명의 생명이 창살에 갇혀 죽어간 것 보다 더 큰 뉴스였을까?

희생자들이 일반인(?)이라는 테두리에서 제외된 '윤락녀'였기 때문이었을까?

한 여성단체 관계자는 "군산이 아니라 서울 미아리나 청량리만 됐어도 이렇게 잠잠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더구나 다시는 이런 참사가 벌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철저한 수사를 해야할 군산경찰서마저도 상식 밖의 졸속수사를 벌이면서 "희생자 다섯 명은 죽어서도 소외되고 말았다"고 유가족들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실제 업주(포주)는 과연 누구인가?
화재 원인은 누전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과연 감금, 폭행을 일삼으며 윤락행위를 강요한 업주가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희생자 다섯 명은 '빚'이라는 굴레 속에서, 불이 났어도 쇠창살에 갇혀 도망가지 못하고 질식사했기 때문에 실제 업주는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 또한 재발방지를 위해서도 실제 업주와 유착고리를 가지고 있는 관계자들의 처벌도 반드시 강구되어져야 한다. 그러나 군산 경찰은 처음부터 그러한 의지가 없어 보였다.

군산 여성의 전화 안향자(52) 회장은 "화재가 발생한 후 늦게 출동한 경찰은 포주들의 장부 입수에도 실패했으며 현장을 보존하지 않아 중요한 수사 자료를 보존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결국 윤락여성들이 어떤 생활을 하고 있었는지 짐작케 하는 희생자의 일기장과 수첩이 나중에 현장을 둘러보던 희생자의 친구들 손에 발견되기도 했다.

경찰은 현재 윤락업소 전세 임대자인 전OO(63) 씨와 그의 아들 박OO(29) 씨만을 구속한 채 더 이상의 수사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또한 실제 업주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수사 중이던 이OO(46) 씨를 명확한 이유 없이 수사 선상에서 제외시키고 그의 아내 박OO(40) 씨에게 수사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 이씨가 실제업주임이 밝혀지고 있다. 우선 이씨는 전과 12범이며 작년 5월 화재가 난 사창가의 다른 업소에서 미성년자 윤락행위, 감금, 폭행 등의 혐의로 구속된 적이 있다.

또한 인근 주민들조차 실제 업주는 이씨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경찰은 이씨가 아닌 박씨가 실제 업주라고 주장하는 것일까?

담당 경찰은 '박씨가 실제 업주'라는 박씨 아버지의 진술에만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경찰이 그렇게 수사 방향을 잃은 사이 이씨는 자취를 감췄고, 3개월 된 아이를 데리고 있는 박씨 또한 소재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다.

또 다른 의혹은 화재가 난 건물 중 2층과 3층의 업주가 다르다는 경찰의 주장이다. 그러나 2층과 3층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3층의 업주라고 주장하는 박OO(28) 씨의 우편물이 2층 업주 방에서도 발견되었다. 또 3층에서 구출된 김OO(29) 씨의 주소와 희생자 최OO(23) 씨의 주소가 일치한다.

게다가 올해 초까지 이 업소에서 일했다는 김현정(26,가명) 씨에 의하면 "평소 애들이 위층에서 잠을 잤었는데 왜 그날은 2층에서 모두 잠을 자다가 사고를 당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결국 이 윤락여성들은 한 사람이 관리해 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찰은 끝내 2, 3층의 업주가 다르다고 결론을 내렸다.

희생자 임OO(20) 양의 아버지 임OO(46) 씨는 "경찰이 사건을 축소시키고 은폐시켜 조용히 넘어가려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모든 수사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지난 28일 경찰의 모든 수사 자료가 군산지검으로 송치되었다. 기자는 수사상의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서 다음 날인 29일 검찰을 찾았다.

"올라온 자료는 엄청나게 두꺼운데 알맹이는 하나도 없었다."
검찰의 한 담당 수사관의 말이다.

그 수사관은 "경찰이 보내온 자료는 피의자들에게 법을 적용시킬 어떤 명분도 없는 허술한 것이다"라며 "초동 수사부터 다시 시작할 생각이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미 피의자 일가족은 화재가 난 후 모여서 대책회의를 한 것으로 보인다"며 "실제 업주를 찾는데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관련 공무원이나 경찰과의 유착고리에 대한 수사를 진행할 것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이미 초동수사에서 경찰이 흩트려 놓았기 때문에 경찰과의 유착관계를 파헤치기에는 늦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경찰이 수사상의 책임을 면키는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경찰은 왜 수사상의 허점을 드러냈을까? 그리고 작년에 같은 죄목으로 구속됐었던 이씨를 왜 구속수사하지 않고 돌려보냈을까?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경찰 중엔 현장에 가보지 않은 경찰도 있었다. 그리고 경찰에게 이씨 얘기를 꺼내면 "그는 가스배관 시공업체를 운영하고 있다"며 "경찰서도 그 회사에서 공사를 한 적이 있다"고 말해 은근히 이씨가 이 사건과 무관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경찰이 수사 의지가 없는 것인지 아니면 수사를 일부러 하지 않은 것인지 검찰의 조사결과를 지켜봐야 할 일이다.

영안실에 시신이 안치되고 11일이 지난 후에야 장례를 치렀다. 그렇게 11일간의 전쟁은 끝났다. 하지만 이번 군산 윤락가 화재 참사가 우리에게 남겨놓은 과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이번 참사와 관련 인근 도시인 전주의 일명 '선미촌', '선화촌' 윤락업소 주인들이 대책회의를 했다. 그 회의에서 "적어도 쇠창살만큼은 뜯어내야 한다"고 결정한 업소 주인들은 현재 70%정도가 업소에 설치되었던 쇠창살을 뜯어냈다고 한다.

그러나 단지 쇠창살이 문제가 아니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윤락가의 인권유린 실태와 이를 묵인하고 유착 고리로 연계되어 있는 관계당국, 경찰의 문제가 해결되어져야 한다.

또한 이 모든 것을 여성단체와 시민, 종교 단체에서 감시해야 한다.
그럴 때만이 제2, 제3의 군산윤락가 화재참사가 발생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올림픽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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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 저서 <이재명과 기본소득>(오마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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