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23년째, 우리는 아직도 신혼이랍니다

가시는 없어지고 향기만이 남은 아내

등록 2000.10.02 21:41수정 2000.10.03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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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2일) 1시 반, MBC - FM <싱글벙글쇼> 신혼일기 코너에 내 글이 나갔다.

아내가 내게 가끔 말하기를 "자기 글 많이 쓰면서 내게 편지 한 장 써 봤어?"할 때 나는 그냥 아내의 팔목을 잡고 펴주어도 펴주어도 굽어드는 아내의 장애로 마음 가득 물기만 채울 따름, 사랑한다 하는 말은 너무 허무하고 구구절절 긴 말도 구차스러웠으나 아내에게 내 감정을 다시 한번 정리하고 싶었다.


아내는 "신혼일기 한번 써 봐라"하고 채근하고 나는 신혼처럼 정감 있던 시간 뒤에 다가오는 마의 시간이 늘 소름끼치도록 무서웠다.

그러나 현실은 현실이며 극복해야 했다. 내 몸이 날로 허술해지고 힘이 있을 때 아내에 대한 내 감정을 아내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방송보다 더 좋은 것이 어디 있겠는가. 불특정의 수십만에게 말할 기회가 지금 말고 어디 있단 말인가.

여기 아래 실린 글의 마지막 부분은 방송에서 나가지 않았으나 그 내용 중에 나의 진정이 있었다.

이런 말. 아내에게 가시는 없어지고 향기만이 남아 있다는 말.



신혼일기


신혼 23년째

가을빛이 맛들고 바람이 소슬하여 단풍이 쏠쏠하던 그 날은 국경일이고 낮잠자는 날이었습니다. 내 꼴을 보다 못한 아버지께서 기세가 대단하시게 "선 보러 갈 놈이 잠만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이~, 무슨 선이에요. 안 볼랍니다. 여자가 스물 일곱이라는 데..."
"이 녀석이. 네 나이가 서른야, 서른."

검정색 양복에다 조끼까지 껴입고 수염은 꺼칠하니 도살장 가는 소꼴로 끌려간 곳이 미아삼거리 복다방이라니.
(우와, 촌색시를 만나러 가는구나. 복다방?)

심훈의 '상록수' 여주인공을 좋아하시는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틀에다 아들의 색시감을 맞추시나? 한낮에 악몽을 꾸는구나.

그 동안 맞선으로 한 번은 뚱보 아가씨, 한 번은 결혼 약속한 애인이 있는 은행 아가씨(그러고는 선은 왜 봐?), 한 번은 대전 지나 영덕 아가씨(영화를 보는 동안 내내 내가 더울까 봐 부채질해 주던 순덕네). 돈 들어가고 피곤하고.

이번에는 《복》다방이라고?
명동의 몽셀통통이나 호텔 다방은 뒀다 뭐한대?

시간은 자꾸 가고.
궁둥이는 반쯤 들썩대고 안절부절 못하던 참에 중매쟁이 얼굴이 화사하게 나타나는데, 내 마음은 중매쟁이에게 달려갑니다. 그런데 중매쟁이라고 나타난 사람은 아버지 친구의 따님입니다. 오래 전부터 아버지께서는 그 따님을 며느리 감으로 점 찍었는데 그만 다른 누구와 눈이 맞아 그만 시집가 버리고 오늘은 '친구를 소개합네'하고 중매쟁이가 되어 나타난 겁니다.

중매쟁이의 뒤를 따라 나타나는 노인이 계셨는데 오늘의 주인공의 아버지가 되심직합니다. 그리고 또 누군가가 나타나서 보니, 미모의 규수입니다. 설마, 설마. 아니, 그 설마가 오늘의 주인공이라는 겁니다. 요샛말로 '짱'입니다. '바로 너, 너, 너야.' 내 마음의 절규를 아는지 모르는지...

면도 안한 턱수염과 물만 대강 대강 칠한 새둥지 머리의 내 꼬락서니가 한심하고 소름 끼칩니다.

맞선 볼 때 으레 그렇듯, 가족들은 웅얼 웅얼대며 사라지고 두 사람만 남았습니다.

어쩌고 저쩌고 하다 보니, 이런 세상에 두 사람은 회사는 다르지만 충무로 대연각 빌딩에서 근무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나는 4층이고 그녀는 8층입니다.

어찌 엘리베이터에서 못 만났을까? 나는 4층이라 걸어 다녀야 하나, 그녀는 엘리베이터를 타니 매일 스쳐 지나치고 여기서 만났습니다.

할 말이 무궁 무진합니다. 상대방도 복다방에서 만난다기에 우습기도 했답니다. 중매쟁이 친구의 집이 여기라, 여기 다방에서 만나게 된 거랍니다.

대연각 뒷문 바로 앞에 있는 지하실 오징어집이며, 옆에 있는 팜파스 다방이며, 주절대다 보니 상대는 조용하고 나만 시끄럽대요. 다른 맞선 때는 커피 한 잔하고 떠나 보낼 궁리로 골똘했는데 이번엔 어떻게 함께 더 있을까 생각뿐입니다.

면목동에서 영어로는〈SEAMTER (쉼터가 아닌가요?)〉라고 쓰고 우리말로는 〈샘터〉라는 경양식집을 하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외상도 되니, 맥주와 돈가스라도 먹자하고 갑니다. 따라오데요.

친구는 반가워하고, 음악을 우리 입맛대로 팍팍 틀어줍니다. 밤은 깊어 가고 통금시간이 걱정이 됩니다. 그 때는 통금이 있을 때였으니까요. 버스 정거장까지 바래다 줍니다. 슬쩍 손을 잡았습니다. 가만히 있습니다. 이거 되는구나. 자신이 딱 섭니다. 이제 마지막 맞선이구나. 확신 말입니다.

그 뒤 만만했냐고요. 천만에, 천만에요. 그 날 내게 손을 잡혀도 빼지 않았다는 것은 내가 쑥스러워할까 봐 그랬다는 겁니다. 머리는 까치둥지요, 눈은 켕하지요, 볼을 패였지요. 사실 내게는 볼 게 없었다고요. 갈등이 생기더랍니다.

그녀는 나와 그 날 헤어진 뒤에, 세상에 맞선을 세 번이나 더 보았답니다.

우리는 두 번을 더 만났습니다. 그러다가 결국은 마지막이라고 만나던 날, 내 뒤 모습이 너무 쓸쓸해 보이더라나요.

'해 버리자'하고 그녀가 결정하고, 맞선 본 지 여섯 달만에 결혼식을 올렸지요. 신접 살림을 남가좌동 명지대학교 앞 문간방에 차리고 나는 새벽에 잠이 깨면 한 여인이 내 옆에 있는 일이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선녀 같고 천사 같이 고운 이런 색시가 어떻게 내게 왔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행복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내 곁에 고운 숨 쉬는 그녀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출근길에 도시락을 싸 들고 담배 한 갑 값과 버스 값으로 500원을 받아들고 나서는 걸음은 부자가 부럽지 않았습니다.

한 여름 문간방 부엌에서 서로 물 뿌리며 등 밀어주고 석유 풍로의 연기에 매워도 우리는16인치 흑백 TV의 사치가 황홀했었습니다.

결혼 10년째 되던 해. 12월에서 다음해 2월까지 아내는 고덕의 기술학교에서 홈패션을 배웠답니다.

재봉이라도 돌려 보겠다는 각오로.
"어, 대단하십니다. 양장점 사장님이 되시려고?"
나는 아내가 부업을 생각하는 마음가짐이 반갑고 미안하기도 했답니다.

밤 9시가 넘어서 끝나면 아내는 어둡고 좁은 길을 요리 조리 지나서야 집에 올 수 있었고 나는 아내가 올 시간에 맞춰서 학교 앞에서 동동 떨며 기다렸지요.

아내가 나오면 추위에 약한 아내의 손을 내 손에 감싸서 비벼주곤 했습니다. 맞선 볼 때 생각이 나곤 했지요.

바람이 부는 날이 있었고 눈이 오는 날도 있었네요. 보리가 섞인 밥이고 찬은 별로 없어도 저녁을 연수원에서 먹은 얘기를 하며 아내는 어찌나 밝고 명랑했던지.

석 달 과정의 교육이 끝나 가고 있었고 이틀만 있으면 자격증 시험을 볼 참이었던 그 이틀 후. 아내는 교통사고로 거의 1년을 눕게 됩니다.
택시를 타고 가다가 당했지요. 택시 기사는 죽고. 가해차량의 상대방은 너무 멀쩡하고.

중환자실에 있을 때 아내는 머리는 움직일 수 있으되 다른 곳은 전혀 꼼짝을 못하고 몸은 묶여 특수 병상 생활을 하게 되었으니 어찌 그런 일이. 나는 이게 현실인가 꿈인가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답니다.

중환자실에서는 수시로 환자들이 죽어 나가고 아내 옆에는 죽은 이들이 나가는 저승 쪽문이 있었으니 얼마나 무서웠을까?

하루 세 번 면회에 나를 보면 아내는 "나, 무서워. 입원실로 보내줘"해서 중환자실을 나오니 20일 만이었지요.

남편의 그늘 아래 있으니 편키는 했으나 남편의 노고가 맘에 걸려 다시 중환자실에 가겠다고 떼쓰던 아내. 장미 같은 아내는 가시조차 없었구나.

지금은 2급 장애자가 되어 목을 제대로 돌리지 못하고 한 손 한 발을 제대로 못쓰는 아내의 몸에 근육이 굳고 남편이라고는 생각날 때만 굳은 살을 만져주며 더러 장미꽃 몇 송이로 아내의 아픔을 지워주려 하지만. 아내 자신은 장미보다 더 밝게 웃네요.

장미여. 너는 가시라도 있지만 내 각시는 가시대신 향기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흑단 같던 머리칼 사이 사이에 흰머리가 자욱하게 솟아나는 걸 보고 내 무릎에 머리를 뉘고 집게로 하나씩 뽑아주면서 세월이 한꺼번에 다가온 듯한 놀램과 이제 함께 살아온 만큼 더 살까 하는 아득한 기분도 함께 입니다.

이제 살아온 세월의 고통보다 다가 올 고통이 어떻다손쳐도 내가 자기의 다리 되고 손이 되는 세월을 살 참입니다.

한 사내의 지어미로서 목숨 바칠 세월을 살아온 아내에게 나는 다만 눈으로만 말합니다. 말로는 못해 본 '당신'이라는 소리.

당신은 내 빛이요, 나의 영혼이요, 나의 천년 사랑이오. 당신을 위해 나는 당신의 그림자 되고 당신의 영혼이고 싶소.

우리는 지금까지 겸연쩍고 수줍어서 '여보, 당신' 소리도 못하는 신혼 23년째랍니다.

아직도 아침에 일터로 나가는 내게 아내가 입맞춰 주면 나는 아내의 향기로 하루를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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