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햇살에 반짝이기 위해

서점에서 미식미식거린 이유

등록 2000.10.02 23:23수정 2000.10.03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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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밀면서 밀려가고 있었다. 월요일 정오가 되지 않은 이른 시간 제각기 바삐 가는 길 위에 잠시 서본다. 하늘은 금새라도 비가 내릴 듯 구름도 추욱 쳐져 있고, 사람들 빛깔이 어둑하다. 딱히 생각 없이 지내는 요즘. 마음을 가라앉힐 만한 것이 있을까 하여 서점에 들렀다.

북적북적한 서점 입구에 수염을 곱게 기른 서양 남자의 앉음새가 텅빈 바위가 터억 놓여있는 듯하다. 그 곁을 지나는 사람들은 그의 바위를 걷어차며 눈도장만 열심히 찍어대고 가버린다.


회전문을 통과한 바람들을 비집고 확 새것 냄새가 안긴다. 어디 날 한 번 유혹해봐라. 코너별로 잘 짜여진 대형 서점. 비좁은 통로를 비껴가며 저마다의 독서열에 가득 찬 사람들.

무엇을 하러 왔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사람들은 그냥 나갈 수 없다는 듯, 하나둘씩 누우런 종이가방을 들고나서며 제법 시원한 미소를 짓고 나간다.

베스트푸드 점으로 향하는 계단을 내려가며 교복을 입은 여고생 셋이서 " 왜 있잖아. 그 유명한 사람. 그런 사람 책은 순식간에 팔린대. 그래서인지 다 유명해질려고 난리들이잖아. 너두 유명해져. 그리고 책 써. 그러면 또 알아? " 깔깔거리며 뱉는 말에 분명 가시는 있다.

이름이 있으나 누구의 손 때 한 번 묻혀지지 않은 책들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자신의 의사가 있든 없든 서점 한 귀퉁이에서 먼지와 생활하며 높다란 키를 줄이지도 못하는 책들. 그것처럼 사람도 쓰임새 없이 홀로 바보가 되어 지내는 이가 얼마나 많을까.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만 하다가 결국은 책에까지 굽실거리고 있는 나를 본다. 찾던 책이 없어 잠시 차 한 잔 하고 왔더니 그 새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많은 사람들, 많은 책들을 보며 미식미식해지는 걸 느낀다. 답답하다. 베스트셀러라는 곳에 꽂힌 책들조차 얼마나 버거운가.


쉽사리 사야할 책을 정하지 못하고 겉표지만 열심히 보다가 식은 땀이 나버린다. 보는 것만으로 체해버린 것이다. 와르르 무너질 것만 같은 빽빽한 책꽂이와 누워있는 책들을 보며 급히 지나버린다.

마음의 쉼터를 만나러 왔다 오히려 질리고 가는가 싶다. 미식미식거리는 배를 싸안으며 회전문을 나선다. 후우 한숨을 몰아 하늘로 뿜는다. 어느새 내 손엔 ' 내 영혼이 따듯햇던 날들 '이란 책이 쥐어져있었다. 그래도 들어가서 무엇인가 하고 나왔다는 사치스런 가슴뿌듯함을 몰래 갖고서 말이다.


비둘기빛 짙은 깃들이 뱉어지는 보도 블록에서 헉헉거리는 사람들을 본다. 저어기 회전문을 열고 들어가 봐요. 나오는 길에 가려는 곳은 잔디밭으로 변할거고 흠흠거리며 나무들이 내뿜는 숨들을 달게 마실 수 있을 테니.

책 없이 나를 닦아내고 빛낼 수 있을 테지만 오늘은 묵은 숙제를 한 마음이다. 여전히 책들은 거기 쌓여 누구를 기다리고 있을 거고, 가끔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위해 그것들을 품에 안고 돌아올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의 자궁 속에 몰래 숨겨 놓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발밑을 보라. 데구르르르 낡은 생들이 부서지고 있다. 다시 햇살에 반짝이기 위해 세상에 스며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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