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취미는 설거지입니다

그릇 닦을 때처럼 사람을 대한다면...

등록 2000.10.03 20:29수정 2000.10.04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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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전 설거지 하는걸 좋아합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유리나 사기그릇을 닦는걸 좋아해요. 기름기 잔뜩 묻은 그릇을 세제 묻힌 수세미로 슬슬 닦아 찬 물에 두어번 흔들면 뽀독뽀독 소리나게 깨끗해지는게 좋아서죠.

그에 비해 다른 그릇, 그러니까 나무로 된 그릇이나 플라스틱, 스테인리스로 만든 그릇은 그런 '쾌감'이 적고, 닦고 나도 말갛게 비치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종종 쌓인 설거지 그릇 중에서 천대받곤 하죠. 물론, 저에게.

잔치나 제사 다음에 엄청나게 쌓이는 뒷설거지를 해본 분들이라면 우리집에 이런 그릇도 있었나 할 정도로 낯설고 평소땐 안쓰는 예쁜 그릇을 설거지통에서 보곤 하죠.


저는 그런 그릇을 천천히 씻을 수 있다는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 일부러 뒷설거지를 자청하곤 합니다. 그러면 으레 '네가 웬 일이냐'라는 어머니의 가벼운 핀잔과 '그렇게 느릿느릿 해서야 하루종일 설거지하겠다'라는 타박을 듣지만 그래도 그릇을 닦는 즐거움을 조금 연장시켜보려는 내 노력을 어머니도 어찌하시지는 못합니다.

그저 맨손으로 설거지하길 즐기는 제 손에 꼭 고무장갑을 들려주시며 '나중에 손 못난게 엄마탓이라 하지마라'하시는게 다죠. 전 고무장갑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미끄덩거리는 감촉도 그렇지만 손에 배는 고무냄새가 싫어서죠. 또 맨손에 닿는 그릇의 감촉을 느낄 수도 없으니까요.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어머니가 저렇게 뒤에서 감시하시니 장갑을 껴야죠. 투덜투덜...

느릿느릿 그릇을 닦으며 생각하는게 있습니다. 이렇게 더러운 것이 묻은 그릇이 물과 세제거품 조금으로 다시 깨끗해지는 것처럼 흐트러진 다른 것들도 다시 가지런히 골라놓을 수 있다면 좋을텐데 하는 것이지요.

조심스럽게 다뤄야하는 그릇을 닦을때처럼 다른 사람을 대할 때 그렇게 조심스럽게 행동한다면 쓸데없는 오해와 미움으로 상처받는 일은 없겠지요. 그릇은 부서지면 다시 같은 것으로 사면 그만이지만 사람의 마음이란게 어디 그런가요.

자, 깨끗해진 그릇은 물기를 빼야하니 차곡차곡 식기건조대에 쌓아 놓아야죠. 야... 바로 지금, 그릇에서 나는 뽀드득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그릇을 쌓아두는 이 순간이 제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입니다.


내일은 저 그릇에 어떤 음식이 어떻게 담겨 상 위에 오를까 미리 생각해보며 개수대를 닦고 행주를 빨아놓고 속이 눅눅해진 고무장갑을 뒤집어 말리고 고무냄새 밴 손을 비누로 닦지요.

제 맘 내킬 때에 할 수만 있다면 설거지도 훌륭한 취미가 되는거죠. 어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즐길 수 있는 좋은 취미요. 비극은 대부분 여성들의 경우, 취미로 그릇을 닦지 못한다는데서 시작되는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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