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00.10.03 20:47수정 2000.10.04 14:50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여주 읍내에서 한 삼십 분쯤 '도전리'행 버스를 타고 가면, 사회 복지시설 '라파엘의 집'이 나온다. 집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카톨릭에서 운영하는 곳이고, 맹·중복 장애인들이 살고 있다. 맹·중복이 뭐냐고 언뜻 접수가 되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앞이 전혀 보이지 않거나 조금 희미하게 보이면서 지능지수가 보통사람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발달지체를 겸하고 있는 사람들을 말한다. 물론 몇몇 사람은 보이지만 않는다 뿐이지 말도 잘하고 기억력도 좋다.
그곳에 나리가 산다. 나리는 한번도 제 힘으로 앉아 본적이 없다. 지금은 몸이 많이 불어서 요령없이 들면 허리를 삐끗하기 십상인데, 나리는 태어날 때부터 쭈욱 그렇게 누워서 지낸다. 편마비라서 몸 한쪽은 다른 쪽보다 많이 뻣뻣하다. 물리치료를 등한시하면 나머지 한쪽마저도 뻣뻣해질 것이기에 하루라도 물리치료를 게을리 하면 안 된다.
매일 매일 부지런히 물리치료를 해줘도 의자에 앉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다. 기껏해야 특수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보거나, 보육사들 가슴에 안겨보는 것이 전부다. 나는 나리를 또 한명의 보육사와 함께 한 2년 돌보았다. 아니, 돌보았다기 보다 나리와 그리고 열 명 남짓의 아이들을 씻기고 먹인다는 핑계로 그들에게 기생하고 있었다는 것이 옳겠다.
나리를 처음 보았을 때의 느낌은, 정말 이름 그대로 나리 같다는 것이었다. 눈은 한쪽만 있고 한쪽은 안구가 없어서 늘 감고 있었다. 그러나 뜬눈은 뜬눈대로 새까맣게 예뻤고 감은 눈은 오히려 감았기에 더 많은 것을 보고 있는 듯 해서 좋았다.
우리는 망설임 없이 나리의 별명을 개나리로 불렀고, 개나리처럼 아름다운 그녀에게 개나리 이파리처럼 싱그러운 빛깔의 옷들을 자주 입히곤 했다. 하루 종일 나리가 하는 일이라고는 삼 세끼 밥을 졸면서 겨우 먹으며 오줌 몇 차례 싸고, 며칠 걸러 똥 한 뭉태기 누는 것이 전부였다.
가끔 혹은 집중적으로 경기를 하는 것만 빼면 그런 대로 돌 볼 만 했다. 그러나 언제 경기를 할지 모르기 때문에 항시 불안하였고, 늘 그녀의 상태를 살피는 일을 게을리 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동안 조용하던 나리가 경기를 하였다. 저녁밥을 먹이는데, 하나 있는 눈의 눈동자가 자꾸만 보이지 않는 눈거풀 저쪽으로 사라졌다. 아무리 흔들어 깨우고 꼬집어도 나리는 반응이 없었고 입에 넣은 밥알은 삼켜지지 않았다. 서둘러 간호사와 함께 읍내의 병원으로 갔으나, 코마(혼수상태)라고 하며 다른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했다.
할 수 없이 나리의 고향(?)인 시립아동병원으로 앰블런스를 타고 갔다. 앰블런스가 워낙 속도를 내었기 때문에 나리가 충격을 받아 어떻게 되는 것은 아닌가 조마조마 하며 시립 아동병원에 도착했다. 그러나 나리를 맞은 시립아동병원 의사선생님이 너무도 따뜻하게 맞아 주셔서 가뿐한 마음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나리는 그렇게 시립아동병원으로 가면 한달 혹은 두 달 씩 있다가 왔다. 원래 나리가 시립아동 병원에서 라파엘의 집으로 왔기 때문에 그곳에는 나리를 익숙하게 돌보는 간호사와 보모가 있어 안심하고 맡길 수가 있었다.
나리로 인한 수고가 없기에 처음 얼마간은 쾌재를 부르다가 시간이 흐르면 서서히 나리가 보고 싶어지기도 하고, 막상 나리를 데려가라는 연락을 받으면, 그동안의 나리에 대한 직무유기를 만회하고 싶은 마음에 설레이기 까지 했다.
나리를 퇴원시키라는 연락을 받고 시립 아동병원에 갔을 때의 일이다.나리가 입원한 3층 병실로 갔다가 나는 그 병실의 풍경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아무 것도 차고 있지 않은 것은 나리 혼자뿐이고 모두들 코에 산소호흡기 아니면 호스를 끼고 있었고, 다리에는 링거 바늘이 꽂혀 있었다.
움직이지도 못할뿐더러 말도 할 수 없는 아이들이 병실을 꽉 채우고 있었다. 대두증인 아이들도 여럿 보였고, 또 많은 아이들이 욕창으로 고생하고 있었다.
나는 혼란이 왔다. 도대체 살아있다는 것이 무엇인지.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보라!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인간들이 말도 안 되는 복에 겨운 투정들을 하고 있는가. 인간 같지도 않은 삶을 사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꽃답게 한번 피어보지도 못하고 아니 그것까지는 바라지 않을지도 모른다.
링거 없이, 산소호흡기 없이, 한번 살아보고 싶어할지도 모르는 '젊은삶'이 있다는 것을 시립 아동병원을 가보기 전에는 몰랐다. 그에 비하면 나리의 상태는 심각한 축에도 끼지 못하였다.
나리를 돌본 간호사들은 섭섭하긴 하지만 또 오지는 말아라, 라고 했어도 나리는 시립아동병원을 친정 들르듯이 잊을만 하면 한번씩 찾고는 했다.
........
요즈음의 나리는 처녀가 다되었다. 옛날의 그 가냘프고 여리던 모습은 온데 간데 없고 펑퍼짐하게 몸이 불었다. 그래서 모습이 많이 미워지긴 했지만 그래도 나는 나리가 좋다. 처음엔 나리라는 존재를 보았을 때 도대체 저렇게 살아서 뭐하나 싶었다.
그러나, 지금은 안다. 나리가 나보다 훨씬 존재의의가 있고, 또 값진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나리를 보고 가는 사람들은 자기 삶의 태도를 얼마간은 수정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
이번 크리스마스엔 나리를 보러 가야겠다.
덧붙이는 글 | '라파엘의 집'에 관심있는 분들은 아래 전화 번호로 연락하세요.
그곳을 다녀갈 마음이 있다면, 당신은 이미 축복 받은 사람입니다.
031,883-6637(친절한 목소리로 맞아 줄꺼예요.)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순간이라는 말이 좋습니다.
이 순간 그 순간 어느 순간 혹은 매 순간 순간들.
문득 떠올릴 때마다 그리움이 묻어나는
그런 순간을 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