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향리 대책위 전만규 위원장 인터뷰

"내 인생 다할 때까지 끝까지 투쟁할꺼야"

등록 2000.10.04 00:44수정 2000.10.04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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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향리 토박이. 4대째 폭격소리를 들으며 살아가는 이. 13년동안 '매향리 폭격장 패쇄'만을 주장하며 세 자녀의 아버지이기를, 한 가정의 가장이기를 거의 포기하며 살아야 했던 이가 바로 전만규 매향리 주민대책 위원장(44)이다.

그가 미공군 폭격장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한 것는 78년 마을 무기고에서 방위병으로 근무 할 때부터라고. 한 일간지의 '항공기 소음에 관한 연구 결과 항공기가 이착륙하는 인근 지민들은 타 지역보다 성격이 포악하고 자살률이 높다'는 기사 때문이었다.

폭격소리를 떠나 고향을 떠나기로 결심한 그는 쿠웨이트로 돈을 벌러 가기도 했다. 그러나 그를 기다리는 것은 '아버지가 목을 매 자살했다'는 소식. "충격속에서 보냈다"고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어린아이들이 폭격소리에 놀라 잠에서 깨 새파랗게 질리는 모습을 보며 저 놈의 폭격장 언제 없앨 것인가 다짐했던 게 한두번이 아니다"고 밝혔다.

'폭격장 폐쇄' 를 꺼내면 빨갱이로 몰려 잡혀갈까 반상회에서조차 거론되지 못했던 매향리에 민주화의 물결이 몰려온 87년 이후, 마을 청년회가 주축이 돼 사격장 주변 8개마을 '합동소음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구성으로 본격적인 그의 활동은 시작됐다.

"국내 신문은 관심조차 없었어. 올해 5월 8일 오폭 사건도 몇일이 지난 후에 신문에 실렸을 정도니까"라며 전 위원장은 오폭사격으로 놀란게 아니라 언론보도로 놀랐다며 "매향리를 정치적 상품가치로 언론에서 다룰게 아니라 민족 자존의 문제, 민족 생존의 문제로 다뤘으면 한다"는 바램을 보였다.

그는 두 번 감옥을 갔다. 89년·2000년 6월 2일. 공교롭게도 날짜가 같다. 첫 번째는 그의 논에 자갈과 흙으로 매립한 미군에 맞서 주민들과 항의하다, 두 번째는 오폭 사건으로 폭격을 중단했던 미군의 폭격 재개를 막기위한 집회를 하다 폭격을 알리는 주황색 깃발을 찢었다는 이유로.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밉다'고 반민중적 행위도 나쁘지만, 그런 행위를 보호하는 공권력이 더 안타깝다"며 국방부가 발표한 종합대책에 대해 "국방부는 매향리 주민들뿐 아니라 전국민을 기만했다. 일시적 기총 사격이 아니라 농섬에서 즉시 철거해 바다어장과 토지를 되돌려 받는 근본적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내 인생이 다할 때가지 끝까지 투쟁할거야"라는 전만규 위원장. 그는 학생들에게 "청년학생들의 뜨거운 가슴으로 구호가 아닌 행동으로 실천으로 보여줬으면 해. 필요하다면 미8군기지 장벽을 망치로 깨부수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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