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닮아 빼빼 마르고 거무튀튀한 감나무

나즈막히 아버지를 부르고 싶습니다

등록 2000.10.04 00:47수정 2000.10.04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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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무섭고 슬픈 것은 홀로 그 머나먼 길을 떠나게 하는 죄로 수없이 이름을 불러도 그 답을 들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버지를 닮은 빼빼마르고 거무튀튀한 감나무를 보게되면 가슴이 울컥해지며 뜨거운 눈물이 나는 것도 소리내어 부르지 못하는 답답함과 죄스러움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침 창문을 열며 대추나무 아래로 희미하게 새어 들어오는 햇살을 모으며 집에 있을 감나무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잘 여물어 말랑말랑해진 것은 홍시로 곱게 놓아두고 조금 단단한 것은 갈라 터졌지만 고운 당신의 손으로 깎아져 곶감이 되는 그림 한 장. 찌그러진 얼굴빛도 감빛에 우러나 작게라도 웃고 있는 듯 보이는 아버지 얼굴. 어깨를 터시며 하늘을 올려다보시면 감잎 사이로 비추이는 하늘과 굴렁쇠를 굴리며 놀던 기억, 동네 노래자랑 나가서 부르던 노래가 생각난다시며 낮게 콧노래를 흥얼거리시던 당신.


엊그제 사온 허브 세 분을 놓고 왜 이리 코끝이 매운지. 아버지 가신 지 벌써 1년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살랑살랑 바람이 헛 붑니다. 아시는지요. 올핸 감이 많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와의 전화 속에서 겨우 서른 알 정도 곶감으로 만들어놓았고 대여섯 알의 홍시를 아버지의 외손자와 나눠 드셨다고 합니다. 이번엔 어머니의 손으로 깎아 만드셨답니다. 말씀이 없으시다가도 곶감을 깎으실 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셨지요. 감 껍질도 따로 말려 먹으면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다며 한 곳에 말리시던 당신 생각이 많이도 납니다. 그 어느 곶감보다 달고 그 어느 홍시보다 연하고 달작지근한 아버지의 손 사랑.

유난히 아버지를 많이 닮았다는 걸 아시지요. 빼빼 마른 데다가 거무잡잡한 뼈대를 가지고도 강한 모습으로 하늘을 향해 얼마나 꼿꼿했습니까? 아아...아버지 묘 앞에 감나무 한 그루 잘 있지요? 생전에 그리 좋아하시더니 묘자리 고르는 데 생각지도 못한 감나무가 앞에 터억 있었지요. 참 신기한 일이라고 우리 모두 좋아했습니다. 외롭지 않으시겠다구요. 아마도 그 감들은 다른 이들이 하나 둘씩 따 갔을테죠. 그 모습 보며 얼마나 흐뭇해하셨습니까.

아침이면 그 감나무를 보며 기지개 펴시고 낮엔 사람들의 오고감을 보고 다시 밤이 오면 녀석과 함께 잠이 드실 당신. 아침 저녁으로 쌀쌀한 계절입니다. 속에 얇은 반팔 티를 입고 그 위에 남방 하나 걸치고 나가면 낮엔 한 꺼풀 벗고 밤이 되어 돌아오는 길에 약간 싸아하다는 생각이 들지요. 아마 제 모습을 보시면 또하나 더 챙겨 입으라 마구 야단치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쩜 그 말씀이 더 그리워 헐렁하게 입어보기도 하는 지 모릅니다.

아버지 계신 곳은 어떤가요? 여기처럼 계절이 구분되어져 있는지요. 유난히 몸이 약해 병치레가 많을 줄 알았는데 잔 병 몇 번 없이 잘 사시더니 끝내 커다란 병을 안고 가셨습니다. 마지막 병상을 지키던 몇 날 새벽을 다른 이들이 깨어날 시간에서야 잠이 드신 것을 기억하십니까. 오른쪽에 구멍을 내어 제대로 눕지도 못하시고, 앙상하게 마른 하얀 다리를 굽혔다 폈다하시던 모습. 아무리 주물러도 시원타 못하시고 엷게 웃으시기만 하시던. 참으로 많은 시간을 주셨는 데 저는 아버지를 사랑한다는 말 한 마디 제대로 못 했습니다. 그저 멀뚱멀뚱 바라보면 눈물이 가슴으로 달려들 뿐. 아침이 되어 신발이 어딨냐며 신발을 신고 집으로 가자고 하실 때 아버지는 아셨던 것이죠.

신새벽 못내 아버지를 불러보고 싶은 것은 몰래 아버지의 골목에서 홀로 피워 올리시던 담배연기가 그리워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병약해졌을 때 그 좋아하던 담배 한 대 피우시겠냐했더니 고개를 살레살레 흔드시는 걸 보았을 때 얼마나 막막했는지요.


건너편 집에서 흘러드는 불빛에 뽀얗게 피어나는 것이 꼬옥 아버지가 자주 피우시던 그 담배연기 같습니다. 거기에 술이라도 한 잔 하실라치면 못하는 술이시라 한 잔에도 노랫가락이 금방 흘러나오셨지요. 누구하나 제대로 들어주지도 않는 노래를 외롭게 부르시다 잠이 드시곤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 아침이면 실골목에 한 곳에서 담배꽃을 피우셨지요.

어머니가 그러시더군요.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아직까지도 나오고 있는 건 여기저기 숨겨놓으셨던 담배들이라구요. 아마도 저를 보면서 맛나게 피워 올리시는 건 아니신지요. 담벼락을 타고 귀뚜라미가 오고 있습니다.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가 점점 더 커지고 하나둘 불빛이 옅어갑니다. 하늘엔 별들이 순하게 깜빡이고 그만 그리워하라 합니다. 아껴두어야 또 다시 아버지를 초대할 수 있다구요.


아버지~ 언제고 그리울 아버지. 감나무 하늘과 담배연기와 서성거리시던 실골목을 기억합니다. 늘 제 가슴에서 따스하게 품고 있다 아버지라 부르고 싶을 때 아주 조금만 눈물 삼키고 꺼내보렵니다. 그리고 더 보고플 땐 마구 아버지를 부를겁니다.

아버지~ 제 말이 들리시거든 작은 미소와 거친 손이라 해도 등을 토닥여 주세요. 그 미소와 손길이 아침 햇살 속으로 타 내려와 제 가슴으로 안길 수 있도록 말입니다.

아버지~ 자주 못 드렸지만 내내 애잔함으로 불러봅니다. 사랑합니다.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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