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도 북한신문과 교환되나

'국보법 수호'와 '신문 북송 건'이 양립하려면...

등록 2000.10.04 06:10수정 2000.10.04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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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은 안되고 신문은 괜찮나?

10월 2일부터 남북한 신문이 서로 교환되기 시작했다 한다. 지난 8월 남한 언론사 사장단이 북한을 방문하여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났을 때 나온 이야기가 이제 성사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드는 의문이 있다. 북한으로 건네준다는 '종합일간지 10종, 경제지 4종(부수는 총 70부)'중에 <조선일보>와 같은 신문도 포함되어 있을까? 빠졌다는 소리가 없는 걸 보니 아마도 포함되어 있는 것 같다.

신문 교환하는 게 뭐 어때서? 아니다. 그렇게 간단하게 볼 문제가 아니다. 적어도 국가보안법 개폐 논의의 필요성 자체를 부인하는 신문에 대해서라면 말이다. 신문에는 얼마나 풍부하고 생생한, 정치·경제·사회·문화 각 분야에 걸친 매일매일의 정보가 담겨있단 말인가? 대북 지원 식량이 군량미 창고로 들어간다면, 남한 신문에 담긴 정보는 인민군 군사기밀실로 들어가지 않겠는가? 현대 군대에 있어 정보가 차지하는 중요성이 식량보다 못하다는 걸까. 또, 북한에서 오는 신문은 종류도 2종(<로동신문> <민주조선>) 밖에 안 되거니와 지면 분량도 남한 신문에 비해 훨씬 적을 텐데, 이런 상호주의 위배는 용납된단 말인가?

민간 정보가 뭐 그리 대단한 기밀이라도 되느냐고? 큰일날 말씀. 이런 '안이한' 안보정신에 죽비 노릇을 하는 게 우리의 국가보안법이 아니던가.

국가보안법상 '국가기밀'

잠깐, 현행 국가보안법(1991년 개정)의 '국가기밀' 조항을 살펴보자.

제4조 ①항 2호. 형법 제98조에 규정된 행위를 하거나 국가기밀을 탐지·수집·누설·전달하거나 중개한 때에 다음의 구별에 따라 처벌한다.
가. 군사상 기밀 또는 국가기밀이 국가안전에 대한 중대한 불이익을 회피하기 위하여 한정된 사람에게만 지득(知得)이 허용되고 적국 또는 반국가단체에 비밀로 하여야 할 사실, 물건 또는 지식인 경우에는 사형 또는 무기징역에 처한다.
나. 가목 외의 군사상 기밀 또는 국가기밀의 경우에는 사형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일견 꽤 엄격한 규정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에 주눅들 역대 법조기관이 아니었다.

"수십년간 계속된 대법원 판례는 제4조 제1항 제2호의 '국가기밀'의 해석에 관하여 '국내에서는 신문, 라디오 등에 보도되어 공지의 사실이라고 하여도 북한을 위하여는 유리한 자료가 될 경우에는 국가보안법상의 국가기밀이 된다'고 하고 또한 '사상의 기밀 뿐 아니라 정치·경제·문화·사회 등 각 방면에 긍하여 적에게 알려서는 우리나라에 불이익을 초래하는' 모든 사실이 국가기밀이라고 해석하였다."(박원순 변호사, <국가보안법연구 3>) 또 "현재와 같은 대공정세하에 있어서는 군사상의 기밀과 국가 일반정책하의 기밀의 한계는 이를 확연히 구별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례(1957년) 구절도 있다. 그러한 해석이 수십년간 불변·부동이었다는 것이다.


신문 기사라도 피해갈 수 없다

그래서 실제로 어떤 중대한 사실들이 '국가기밀'이 되었던가.

"우리나라 대통령선거가 어떻게 실시되어 누가 몇 표로 당선되었고 개각이 단행되어 몇몇 장관이 경질되었다는 공지의 뉴스를 수집하는 것도 국가기밀 탐지가 되었고, 하다못해 우리나라 농촌에 텔레비전, 냉장고가 널리 보급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행위까지 국가기밀 탐지의 간첩행위로 처벌…."(박원순, 같은책)


"서울의 서민생활상, 중앙청의 위치, 시설규모, 경부고속도로의 건설상, 도시와 농촌의 생활수준, 학생동향, 신문지상에 보도된 조세관계, 정치·경제정세 등의 국가기밀을 탐지·수집한 사실을 인정하고 이를 간첩죄로 처단하였음은 옳다."(1976년 대법원 판결)

"반국가단체의 구성원에게 대한금융단의 각 은행장 명단 및 전국체육회의 시·도 지부장을 겸하고 있는 전국시장·도지사의 명단과 체육계의 각종 근황이 게재된 <일간스포츠 한국> 10월호를 제출하였다고 하더라도 국가기밀을 누설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1973년 대법원 판결)

"남한에서는 쌀값은 시시로 변하고 농촌에서도 돈만 있으면 물건은 얼마든지 살 수 있고 돈 있는 사람은 잘 살고 돈 없는 사람은 못산다 라고 말한 것은 비록 자유경제를 취하는 대한민국에서는 자명하고도 당연한 경제질서의 기본원칙을 말한 것에 불과하다 할지라도 이것이 북괴를 위하여 유리한 것이 되고 우리에는 유리한 것이 되지 못할 때에는 위와 같은 사실도 죄가 된다고 할 것이다."(1967년 대법원 판결)

신문기사를 보고 이야기해주는 것만 해도 '국가기밀 탐지·수집·전달'이거늘 아예 신문을 통째로 넘겨준다? 오호, 장차 이 일을 어찌하리오.

'국보법 수호'와 '신문북송 건'이 양립하려면

이른바 보수세력이 금과옥조로서 지키고자 하는 국보법의 실제는 바로 이상과 같은 것이라고 본다. <조선일보>는 한 사설에서 "우리는 본격적인 남북화해는 고사하고 이제 겨우 정상회담 한번 한 것뿐인데 벌써부터 우리 체제수호 근간 중의 하나인 보안법을 폐지하자는 주장이 국회에서 나오고 있다(7월 20일자 '보안법이 유례없다니' 중에서)"고 우려와 개탄을 한 적 있다. 그런데 정말이지 '정상회담=반국가단체 수괴와의 회담과 공동선언'만큼 국보법의 전제를 결정적으로 무너뜨려버린 사건이 더 있을 수 있을까. 사실상 '헌법변천'의 상황이라고 볼 수도 있을만큼, 국보법 조항들은 지금 현실과의 엄청난 괴리 속에서 사문화되어가는 판이다. 이번의 남북한 신문교환도 그러한 괴리의 심화에 일조하는 일일 것이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보안법 개폐논의는 지금으로서는 소모적일 뿐(같은 사설)"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좋다. 그런데, 그렇다면 신문 북송과 관련해선 다음 두가지 길밖에 없는 것 같다. 들어보시라.

하나는, 국보법 및 상기한 판례 정신에 입각하여, 북으로 전달될 앞으로의 지면에는 일체의 중대한 국가기밀을 싣지 않는 것이다. "이제 겨우 정상회담 한번 한 것 뿐인데" 국가기밀이 마구 북으로 흘러가면 어떻게 되겠는가? 예컨대 행여 선거결과나 개각 소식 같은 건 보도하면 안 되겠다. 그래도 정 쓰고 싶다면? '사형 또는 징역 7년'과 저울질을 해본 다음 글을 쓰시길.

둘은, 북으로 신문을 보내지 않는 것이다. 글 맨 처음에도 질문을 던졌던 것처럼, 북으로 가는 14종의 신문 중에 <조선일보>가 과연 포함되어 있는 건지 아닌지 지금도 궁금하다. 만약 보내고 있다면 왜일까? 신문협회가 강제라도 하는 것일까? 또, 부수확장에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지도 않은데. 혹시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그렇게 된 것이라면, 이제라도 '언론사 사장 방북단'에 불참하던 그 정신으로 과감히 빠져나와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국가기밀 누설도 막고 또 '길들여지지 않는 신문'으로 남는 길이기도 하지 않을까.

제 말이 맞지 않나요?
<조선일보>여, 어떤 길을 택하시렵니까?

덧붙이는 글 | 사족: 이런저런 모순을 꼬집어보려고 쓴 겁니다. 너무 진지하게,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그건 제 의도가 아닙니다.... ^_^

덧붙이는 글 사족: 이런저런 모순을 꼬집어보려고 쓴 겁니다. 너무 진지하게,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그건 제 의도가 아닙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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