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어렸을 때 흔히 하는 놀이 중에 술래놀이라는 놀이가 있지요? 술래잡기라고도 하는 것 같은데 술래놀이가 맞습니다. 왜냐하면 술래라는 말은 순라에서 나온 말입니다. 순라는 조선시대 야간에 순찰을 하면서 도둑을 잡는 오늘날로 따지면 경찰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술래놀이는 경찰이 도둑을 잡는 놀이인 것입니다. 그러니 술래잡기(?)라는 말은 어폐가 있는 거지요.
이렇게 경찰이란 존재는 우리에게 친숙하지만 우리는 경찰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극히 일부 경찰관의 비리 때문이기도 하나 그 맡은 업무특성도 이유 중에 하나가 되는 것 같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저번 국회의원 박상천 의원의 도로 역주행사건을 접하고 적지 않은 실망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전 경찰에 대해 아주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어떤 계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몇 년 전 저희 반에 칠성이란 아이가 있었습니다. 부모가 장사를 하느라 아이들과 떨어져 살았기 때문에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칠성이는 그만 많이 엇나가고 말았습니다.
또 칠성이의 부모님은 독자에다 장사를 하느라 가까이서 돌보아 주지 않은 미안함 때문이었는지 칠성이의 말이라면 뭐든지 들어주는 상황이었습니다.
오토바이 좋은 운동화 뭐든지 사주고 부모가 간섭을 전혀 안하니 칠성이는 사회의 시선으로 보면 철없고 아주 못되고 대책 없는 아이가 되었습니다.
그 녀석이 학기가 시작되고 한달후 전학이 허용되는 마지막 날인 3월31일날 전학을 왔습니다. 과연 녀석은 못된 짓을 많이 하더군요. 전학온 일주일 만에 술을 잔뜩 마시다 들키고, 오토바이를 타고 시내를 질주하고, 학교도 잘 오지 않고...
부모님이랑 상담을 많이 해봤지만 그 부모는 17살 아들에게 그 어떠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지 않더군요. 오히려 아들의 훈계나 지도를 선생님께 부탁하는 입장이었습니다. 아들에겐 겁이 나서 싫은 말도 할 수 없었던 거지요.
전 좋은 말도 해주고 꾸짖어도 보고 회유(?)도 해 보았으나 그동안의 삶의 방식을 바꿔주기는 참 힘들었습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칠성이가 한참을 가출을 해서 학생부장이 꾸짖으면 녀석은 곧 바로 학교를 뛰쳐나가는 스타일이었던 겁니다.
그러면서 그 녀석이 부모에게 하는 말은 이렇습니다.
"웬만하면 학교에 다녀 줄라고(?) 했는데 선생이 괴롭히니 학교에 못다니겠다"
자식이 그런 말을 하니 부모의 심정이야 오죽했겠습니까? 그래서 뭐라고 해도 안되고 아주 답답한 심정에 경찰에 연락을 한 모양입니다.
자식이 학교에 다니지 않겠다고 해서 부모가 경찰에 연락을 한 것입니다. 경찰관의 도움을 얻고자 한 거지요. 더구나 그 어머니는 심장이 안 좋아서 호흡곤란을 자주 일으키는 분입니다.
경찰입장에서야 참 황당한 사건이었을 겁니다. 여하튼 전 칠성이가 경찰서에 있다는 소리를 듣고 경찰서에 뛰어갔습니다. 칠성이와 훌쩍이는 어머니가 경찰서 한 구석에서 앉아 있더군요.
다른 민생치안으로 바쁜 경찰입장으로서는 참 황당한 사건임에 틀림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한 젊은 경찰관이 칠성이를 아주 열심히 그것도 다정하게 타이르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아주 오랜 시간동안... 전 정말 놀랬습니다.
저렇게 못된 녀석을 친 동생보다 더 다정하게 열심히 설득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사실 그 녀석의 담임선생인 내가 부끄러울 지경이었습니다.
그러나 칠성이는 담임과 경찰관의 설득, 어머니가 호흡곤란을 일으켜 기절할 지경인데도 학교를 다니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한 두 시간을 설득했더니 정말 지치더군요. 그런데도 그 친절한 경찰관은 칠성이가 계속 학교에 다니지 않겠다는 고집을 굽히지 않았는데도 얼굴 하나 찌푸리지 않고 이리 저리 데리고 다니면서 설득을 하더군요.
그래도 녀석은 고집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경찰관과 전 일단 칠성이를 집으로 데려다 주고 기다려 보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경찰서를 나섰습니다.
학교로 돌아가려다 문득 뒤돌아 보았더니 그 경찰관은 다정한 친구처럼 칠성이 어깨에 손을 얹고 칠성이에게 뭔가 열심히 얘기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순간만은 부모나 담임선생보다 훨씬 나은 존재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 날 아침 한 낯선 사람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여보세요. ** 경찰서 아무개인데요. 칠성이가 학교를 다시 다닌다고 했거든요. 선생님 죄송하지만 칠성이가 내일부터 학교에 나가면 학교에 다시 다니게 좀 해주세요"
아 결국 그 경찰관은 칠성이를 설득시키는 데 성공한 것입니다. 전 물론 "되고 말고요, 뭐라고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라고 했지요.
그러나 결국 칠성이는 그 경찰관의 정성어린 설득에도 불구하고 결국 학교로 다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우린 간혹 남의 정성어린 친절을 깜박깜박 잊고 삽니다. 한동안 그 경찰관의 친절을 잊고 지냈습니다.
그렇습니다. 일부 비리 경찰관이 있지만 나머지 대다수 경찰관들은 이렇게 시민의 어려움을 자신의 어려움처럼 생각하고 돌봐주는 훌륭한 경찰관임을 믿습니다.
칠성이는 가끔 아니 한번이라도 진심으로 그 경찰관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살까요? 만약 그렇다면 녀석은 아마도 자기 밥값은 충분히 하는 한 시민으로 살아가지 않을까요?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