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이 '인권대통령'인지는 자못 숙고해볼 일이지만, 어쨌거나 그렇게들 부르는 통에 딱히 할 말을 잃어버려 우선 잃어버린 말부터 찾는 게 급선무라 여겼다. 게다가 올해 노벨평화상엔 그가 유력한 후보로 꼽히고 있다니 평화에 기여한 인권대통령의 이미지는 이유 여하를 묻지 않고 호불호를 떠나서 오래도록 각인될 성 싶다.
하지만 그가 가장 존경해마지 않는다는 정치인 중 하나인 김구의 말을 빌리자면 첫 판부터 모양새가 어긋나기 시작한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특히 자신의 족적이 뒷사람들에겐 길이 될 거라는 소신을 가졌던 김구와는 달리, 김대중은 예의 '정치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라는 말로 스스로 운신의 폭을 규정하였다.
그런데 그런 규정이 실은 마키아벨리의 어록에서 심심찮게 보이는 까닭에 아무래도 김대중의 정치 철학이 미덥지 못하다는 점이다.
마키아벨리의 말을 들어보자. "항상 선한 것만을 하려는 사람은 선하지 않은 많은 사람들 속에서 망해 버릴 것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자기를 유지하려는 군주는, 선하지 않게 행동하면서 사정에 따라서만 선한 것을 행하고 허용하는 상태에도 있어야 한다"
말 속에 뼈가 있다는 사실을 유의하면서 이 말 속에서 골계미를 찾는다면 선하지 않은 사람들 틈에서 김대중이 걸어온 정치역정이 어떤 평가를 받았느냐를 따져보면 된다.
그러나 알다시피 박통부터 노통에 이르는 역대 대통령들에겐 이승만을 위시하여 독재자라는 평가가 내려져 있다는 점이고, 이것은 김대중의 정치역정에서 두드러져 보일 수도 있는 부분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는 한가지 사실을 유념할 때만 의미가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그러니까 선하지 않은 전직 대통령들 틈에서 현직 대통령 이전에 그가 걸어왔던 정치 인생이 때로 살기 위해서, 망하지 않기 위해서, 자기를 유지하기 위해서 등의 이유로 선하지 않게 행동하지는 않았는지와 사정에 따라서만 선한 것을 행하고 허용하는 상태에 있지 않았느냐를 따져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그가 한 말이 이 경우에 해당되지는 않았는지도 관심을 갖고 지켜보아야 할 부분이다.
그렇다면 선하지 않은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생존에 필요한 것들을 자양분으로 삼아 결국 대통령의 자리에까지 오른 그의 필요충분조건을 따져봐야 하지 않을까?
이를테면 정경유착이라든지 권언유착과 같이 묵직묵직한 일들은 제 2인자로서도 쉽게 넘볼 수 없는 권력형 비리의 양산처라는 점에서 오랫동안 야인 생활을 거쳤던 그가 넘볼 수 없는 권력이라고 치부한다 해도, 보스를 정점으로 한 똘마니들의 모습과 별다를 것 없는, 그래서 텃세에 기대어 군중 심리를 자극할 수 있었던 여론 정치에서 양김은 자유로운가 하는 점이다.
이중에서 이미 김영삼의 정치 실험은 실패로 끝났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한데, 하나는 궁극적으로 여론을 지나치게 의식해서 선심성 정책과 공약 등을 남발하면서 결국 이해관계에 얽매인 여론정치를 했다는 점과 스스로의 도덕성에 대한 검증은 뒷전인 채 문민독재라는 숙제를 남기면서 퇴장했다는 사실이다. 특히 후자의 경우에는 상도동계를 중심으로 한 보스정치에서 한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했다는 점이 뼈아프다.
그런데 작금의 상황은 문민정부의 모습과 닮아 가고 있다는 우려를 낳게 한다. 위에서 아래까지의 총체적인 시스템의 문제인지 아니면 단순히 헤드쿼터가 없어 그런 것인지는 좀 더 따져보아야 할 일이지만, 요는 대통령 일인을 대신할 만한 인재가 없다는 점과 역설적으로 인적구성이 가신들 위주의 인의 장막에 둘러싸여 과거에도 그랬듯이 대통령이 더 이상 대통령이 아닌 보스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이다. 동교동계와 더불어.
또 한가지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스스로 도덕성에 대해 자만하고 있다는 점이다. 민주화를 위해 노력했다는, 국민의 직접투표에 의해 뽑혔다는, 그래서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안고 맡은 바 직무를 가장 잘 수행할 수 있는 대통령이라는 생각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는 국민들 위에 서서 친절(?)하게도 직접 가르치려 든다. 나로서는 불쾌할 뿐이지만.
그가 가르치려 드는 것은 역설적으로 마키아벨리즘으로 보인다. 국민의 정부에 국민은 없고 동교동계만 득실대는 상황이 그렇고, 그가 여전히 보스에 다름 아니라는 점이 그렇고, 개혁은 없이 잇따라 터져나오는 권력형 추문과 비리에서 그가 항상 선한 것만을 말하고 행하려 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적어도 반사이익으로 빛나 보인 부분에 대한 냉정한 평가와 업적이 따라야 할 시점에 와 있다고 보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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