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오전 (현지시간) 캐나다 몬트리얼의 노틀담 대성당.
새벽부터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하더니 정오를 즈음해서는 1만 명 이상의 인파가 성당 주변을 에워쌌다. 이들은 지난달 28일 세상을 떠난 트뤼도 전 캐나다 수상의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들. 3천 석 규모의 성당은 이미 사람들로 꽉 찼지만, 사람들은 성당 밖에서 트뤼도의 마지막 가는 길을 보기 위해 자리를 뜰 줄 모른다.
피에르 엘리어트 트뤼도(1919-2000). 프랑스계 백만장자의 아들로 태어나 26세에 변호사 자격 취득, 다시 2년 후 하버드 대학에서 석사 학위 취득. 정계 입문 3년만에 캐나다의 수상으로 선출되어 이후 68년부터 84년까지 16년간 집권. 52세 나이에 30살 연하의 부인과 결혼. 영어, 불어, 스페인어의 3개 국어에 능통하고, 형식과 체면에 매달리지 않는 자유분방한 태도와 유머 감각으로 대중적 인기를 끈 그는 20세기 후반 캐나다를 이해하는 '아이콘'이었다.
미국의 변방에 위치한 인구 3천만의 '소국' 캐나다를 G7의 일원으로까지 끌어올린 트뤼도는 국민들에게 '캐나다의 케네디'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를 기념할 가장 큰 업적은 '퀘벡 문제'의 해결이다.
캐나다 동부의 퀘벡 주는 17세기 초 프랑스계 이민들이 개척한 땅으로, 프랑스계 주민들이 주 인구의 82%를 차지하는 지역이다. 이 같은 독특한 배경을 가진 퀘벡은 영 연방의 일원인 캐나다로부터 수차 독립을 시도했고, 60년대에는 분리독립주의자들이 대 정부 테러를 감행하는 등 독립 열기가 절정에 달했다. 그러나, 퀘벡 태생의 프랑스계 수상이었던 트뤼도는 이 같은 지역정서에 동조하지 않고, '영어권과 불어권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새로운 연방체제의 수립'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69년 '공용언어법'을 도입함으로써 영어와 불어를 동등한 언어로 취급, 지역 민심을 달랬다. "캐나다가 영국풍 일색"이라는 비판에 대해서는 해외 이민자들을 대폭적으로 수용, 다민족문화주의를 꽃피웠고, 82년에는 신헌법을 제정, 영국으로부터의 완전한 주권을 회복했다. 이 같은 노력에 힘입어 80년에 처음 실시된 분리여부를 묻는 퀘벡 주민의 찬반투표는 60%의 반대로 부결되었고, 95년에도 재차 부결되어 캐나다는 나라가 둘로 쪼개지는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이 같은 트뤼도의 '국민통합 행보'는 68년 집권부터 84년 정계은퇴까지 그의 정치역정 전반을 관통한다. 젊은 시절 그의 고향 친구들이 '퀘벡 공화국'을 꿈꿀 때, 그는 "퀘벡 독립이 높은 실업률에 허덕이는 고향의 위기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합리적인 결론으로 기울고 있었다. 집권기간동안에는 '배신자'라는 소리를 듣는 등 고향 사람들의 냉담한 대우에 시달렸지만, 세상을 떠난 지금 그는 '퀘벡의 지위 향상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인물'로 존경받고 있다.
퀘벡주는 60년대 이후 전통적으로 가장 급진적인 분리독립주의자가 주 수상에 당선, 지역 주민들의 살림을 맡아왔지만, 이들은 하나같이 캐나다 전체를 아우르는 정치 거물로 성장하지 못했다. 어쩌면, 퀘벡 주민들은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편협한 정치꾼들은 퀘벡을 떠나 고향 망신을 시켜서는 안된다"는 묵시적인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지역 정서를 거슬러 "국민통합을 위해 분리독립 요구를 철회해야 한다"는 일관된 주장을 펼친 그의 정치 역정이 돋보이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곧바로 등치시킬 수는 없지만, 이 같은 '트뤼도식 고향 사랑'은 한국의 정치 현실에도 시사하는 점이 많다. 60년대 박정희 집권시기 불거져 나온 한국의 지역감정은 8, 90년대 대통령 선거를 거쳐 지난 4월 총선에서는 영, 호남 지역 특정정당들의 '완벽한 지역 싹쓸이'로 극에 달한 상황이다. 특히 야당은 98년 김대중 정권 출범이후에는 정치적 위기에 봉착할 때마다 영남 지역을 방문, 장외집회를 열어 지역감정을 자극, 이를 차기 집권에 이용할 생각을 하고 있다.
여권의 고위 인사가 '권력의 단 맛'에 취해 이권에 개입했다는 '한빛은행 스캔들'을 '국민의 힘'으로 규탄한다고 하지만, 그 지역 선정이 영남에만 국한된 의도가 불순해보인다. 속셈이 얼마나 노골적이면, 지역민들의 '박정희 향수'에 힘입어 재선의원이 된 박근혜 부총재가 집회 참석을 거부했겠는가. 삼성자동차의 해외 매각이 거론될 때, 부산을 찾아가 '지역경제 다 죽인다'고 입에 거품을 물던 야당인사들이 대우자동차의 매각이 무산되어 민심이 뒤숭숭한 인천을 찾았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이러고도 "지역감정으로부터 자유롭다" "집권하면 국민통합을 이루겠다"는 입에 발린 공약을 할 수 있겠는가?
즉자적인 지역감정에 기대어 금배지를 달고, 내친 김에 대권도 쥐어보자는 얕은 계산을 접어두고 의석이 날아가더라도 고향 사람들에게 "우리만 어려운 게 아니다. 다른 지역 사람들도 생각하자"고 읍소하는 리더쉽이 아쉽다. 트뤼도 개인의 정치노선에 대한 지지 여부를 떠나서 그가 죽음을 맞은 지금, 고인의 깊은 뜻을 헤아리고 그를 추앙하는 아량을 가진 '캐나다식 지역감정'의 합리성이 돋보이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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