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건강보험공단에 공적자금을 투입하라

정부는 국민의 건강을 더 이상 볼모로 잡지 말아야

등록 2000.10.04 19:43수정 2000.10.05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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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의사들이 지금도 열심히 협상을 하고는 있지만, 타결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약사들의 대체조제와 임의조제를 금하는 약사법 재개정과 국고 지원금 확보 등과 관련한 핵심사항에 대해 쉽게 이견접근이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협상을 두고 각 언론들은 의사들의 협상태도를 문제삼았다. 협상 첫날에는 경철청장의 사과와 관련한 문제로 협상장을 나가고, 그 다음엔 실무자 문책 등을 협상의 전제조건으로 요구한 의료계의 협상태도를 문제삼아, 의사들이 과연 협상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했다. 또 정부가 의사들의 집단이기주의에 굴복했다고도 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분명 의사들의 협상초기 태도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의사들보다는 정부의 협상의지가 있는지 더 의심스럽다. 또한 정부가 굴복한 게 아니라 잘못된 정책에 대한 비판을, 그것도 총폐업을 동반한 아주 강력한 비판을 당하고서야 수용하기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의약분업, 그 취지는 분명 좋다. 국민들의 약 오남용을 막아 건강을 지키고 병원 경영을 투명하게 하는 등 아주 좋은 제도다. 그러나, 정부의 그 취지가 정말 순수한지 의심스럽다. 지역의료보험과 직장의료보험을 통합해 발족한 국민건강보험공단은 막대한 적자를 안고 있는데, 이 적자는 대부분 지역의료보험에서 발생한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두 개를 통합해 재정의 건전성을 도모하고, 의보적용이 되는 약의 종류를 대폭 줄여 공단지출을 최소화하겠다는 불순한 의도가 있는 건 아닌지 말이다.

직장의료보험공단은 회사원들이 보험료를 내는 만큼 기업체가 보험료를 더 내지만, 지역의료보험료는 일반인들이 보험료를 내면 그걸로 끝나기 때문에 지역의보의 적자가 발생했고, 이런 문제로 직장의보에서 통합을 강렬하게 반대하기도 하지 않았나? 또 의약분업 이전 의보수가 적용을 받는 약의 종류는 무려 1만6천여가지였으나, 지금은 딱 6백개이지 않는가?

저수가 정책을 유지하기 위해서 정부는 그동안 의료서비스에 대한 비정상적인 가격체계를 유지해 왔다. 하다못해 병원에서 감기 진찰받고 약받아 먹는데, 커피숍에서 커피 한잔 먹는 것보다 쌌으니... 비정상적인 가격은 정부 지원금을 최소화하고 기업체의 부담을 최소화하려는 의도에서 이뤄졌고 그에 따라서 본인부담금 역시 그리 크지 않았다. 때문에 그동안 의사들은 허위청구 등을 비롯한 각종 편법과 약과 관련한 리베이트(몇년 전의 이야기임, 김대중 정부 이후 이 리베이트는 제도적 보완으로 인해 없어졌다고 함) 등으로 수입을 보전했고, 의약분업 이후 이게 불가능해졌다. 이것 때문에 정부와 언론들은 의사들의 집단이기주의 어쩌고 저쩌고 하며 난리를 치지 않았는가?

이에 대한 대책을 보면 의사들은 확고한 반면, 정부는 그동안 줄곧 땜질식 처방으로만 일관했다. 의사들은 국고지원금을 늘려라는 주장을 한 반면, 정부는 본인부담금을 늘리는데만 주력했기 때문이다. 국고에서 의료보험을 지원하기로 한 약속은 10여년전에 이뤄졌으나, 정부는 그 약속을 거의 지키지 않아 적자를 방치했다. 의료보험의 적자는 병원에서 청구하면 최소 6개월이 지나야 지급될 정도이다. 하다못해 기업체에서 발행하는 어음도 길면 4개월인데, 6개월이나 지나야 지급하다니 정말 한탄스러운 일이다.


우리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는 의료보험공단의 재정이 이거밖에 안된다면 어떻게 마음놓고 건강을 맡길수 있겠는가? 재정이 부실하면, 의사들의 정당한 보험 청구에도 이런저런 말도 안되는 규정들을 만들어 인정하지 않아 과잉청구니 뭐니 하며 몰아부칠 수밖에 없고 의사들은 또 자신들의 수입을 보전하기 위해 편법을 쓰지 않을 수 없는 구조니 말이다.

국고 지원과 달리 본인부담금은 재정의 건전화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본인부담금이 늘어나더라도 병원에서는 지속적으로 보험 청구를 할 것이고, 재정이 부실하다면 지금까지와 같은 상황이 또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의 구조조정을 위해 앞으로 조성될 공적자금까지 무려 160조원이나 소요된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 그 많은 돈을 쏟아 부으면서도 왜 국민건강을 위해서는 전혀 돈을 쓰려고 하지 않는건지 정말 이해하기 힘들다. 보건복지부는 예산부족을 이유로 들고 있지만, 정말 국고에서 지원할 생각이 있다면 내년도 예산에 편성하면 되고 또 그것도 여의치 않다면, 국회의 동의를 받아 특별예산을 편성하면 되는 거 아닌가?

대체조제와 임의조제의 문제 역시 그렇다. 약사가 약을 조제하고 또 의사의 동의없이 마음대로 대체조제를 하는 나라는 세계에서 찾아보기 힘들다고 한다. 현재 의사들은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되는 6백개 이내에서 처방을 해야 하지만, 약사들은 6백개 외의 다른 약품을 이용해 얼마든지 임의조제를 할 수 있다. 더구나 기존에 의료보험에서 인정한 약품수가 무려 1만6천여가지가 된다고 하는데, 의사들에게 단 6백개로 처방하라니, 이건 도무지 말도 안된다. 약이란 게 동일성분의 동일한 효능을 지녔더라도 사람의 몸에 따라 맞는 약이 따로 있기 마련인데 어찌 6백개로 처방하라고 하는지, 그리고 약사들은 나머지 약을 가지고 조제할 수 있다니 정말 이해하기 힘들다.

두통이 있을 때 어떤 사람은 펜잘이 잘 듣지만, 또 어떤 사람은 펜잘은 전혀 듣지 않고 사리돈이 잘 들을 수도 있는데, 정부는 어찌하여 의사들에게 펜잘이면 펜잘, 사리돈이면 사리돈 하나로만 처방을 하라고 하는가? 의약분업 실시 후에도 실제로 약사들은 6백개에 포함되지 않는 약을 이용해 수없이 많은 조제를 해오지 않았는가?

의사들은 약사들은 의료인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단지 약에 대한 전문가라고 주장한다. 환자의 상태에 대해 진단할 만한 의료 지식을 갖추지 못했고, 약대에서 배우는 것 역시 거의 대부분 약의 효능과 성분 등에 관한 것이지 임상 등을 비롯한 의학지식과 관련한 내용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7월 개정된 약사법은 약사를 의료인으로 규정하고 있다. 세계 어느 나라도 약사를 의료인으로 규정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약사들은 자신들도 알 건 다 안다고 주장하겠지만, 약사들은 뭐 천재이고 전지전능한 신이란 말인가? 양약, 한약에 환자의 몸을 진단할 수 있는 지식까지 약대 4년 동안 다 배우고 소화한단 말인가? 의사들은 환자들의 몸을 진단하고 어떻게 처방할 것인지에 대해 6년을 배우고도 모자라 인턴에 레지던트를 거쳐야만 하는데... 의사들이 의약분업으로 인해 약에 관한 모든 것을 포기했다면, 약사들도 당연히 의사들의 전문분야인 진단과 처방에 관련한 일체의 것(임의조제나 대체조제 등)을 포기해야 하지 않겠는가?

요즘 정부와 의사들의 협상장에서는 브리핑이 자주 이뤄진다고 한다. 의사들의 주장에 대한 브리핑인데, 협상이 하루종일 브리핑만 하다가 끝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김대중 대통령이 너무 쉽고 안일하게 생각한 것을 후회한다고 했고, 최선정 보건복지부 장관 역시 유감을 표명했지만, 또 의약분업의 기본안을 만든 국장급 등 몇 명이 다른데로 옮겼다고는 하지만, 정부의 대안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또 이전과 바뀐게 거의 없다는 게 의사들의 생각이다.

정부는 지금까지 의사들이 국민의 생명을 볼모로 데모를 한다고 했지만, 정부는 의사들이 데모를 할 때까지 뭘 했으며 또 데모를 하는 도중에는 뭘 했는지 진지하게 반성해야 한다. 정부 역시 국민들의 건강을 볼모로 의사들을 집단이기주의로 매도했고, 잘못된 정책을 강행했기 때문이다. 의사들의 집단 폐업이 결코 달갑지는 않고 이를 절대 용납할 수도 없지만, 의사들을 그렇게까지 내몬 정부는 더 용납할 수 없다. 정부는 과연 뭐가 문제인지부터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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