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는 연세대와 고려대가 매년 해왔던 교류 축제인 이른바 '연고제, 고연제 기간이었다. 시드니 올림픽 경기때문인지 언론은 그리 많이 타지 못해 양 학교 당국이나 동문들은 많이 안타까웠겠지만 학교 후배들의 축제에 들떠 활기에 찬 모습은 기자의 가슴도 설레이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한창 역사의 변동기에, 전두환 노태우 퇴진을 외치며 고대 아이들과 거리로 달려 나갔던 일, 고대 국문과와 이한열 기념비에서 젊음의 순수함이 무기력함으로 환원되는 것을 탄식하며 빈가슴 민가슴을 눈물탄 소주와 막걸리로 잔을 기울이던 기억, 연고제 기간의 차가운 밤이슬을 학교 근처 철거촌에서 뜬 눈으로 보내고 선배등에 업혀 졸면서 응원전을 했던 기억 - 목발을 짚었던 나에게 선배들이 내 다리가 되어 주었다- 96년 연대 한총련 항쟁으로 연고제가 무산되었던 기억, 그런 것들의 내 기억속의 연고제의 단편들이다.
분명히 우리때와 지금과는 많이 달라졌다. 달라질 수 밖에 없고 달라져야 한다. 진중한 것이 가볍고 발랄한 것으로, 엄숙하고 암울한 것이 즐겁고 밝은 것으로 바뀔 수는 있다. 그러나 하나 달라질 수 없는 것은 연고제는 분명 '교류'와 '대동'을 위한 축제라는 점일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 내가 본 대부분의 연고제는 연대생에게 있어서는 교류와 대동을 위한 축제 자리였다기 보다는 그냥 연고제 자체를 누리고 연대생이니 연고제를 해야 한다는 이른바 특권 의식이 강하지 않나라는 인식을 지울 수 없다.
연고제에 대해 올바른 고민과 인식을 주기위한 선후배간의 첨예한 논쟁도, 연대 고대의 교류에서 발생하는 차별성으로 인해 발생하는 격렬한 토론 역시 그리 많이 눈에 띄지 않는다.
물론 즐겁게 놀고 어울리는 것이 무작정 나쁘다고 폄하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내가 치르는 이 연고제가 이 축제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주위 다른 이에게는 어떤 영향을 주는지, 나는 어떤 가치관과 기준을 갖고 즐길 것인지 등과 같은 것에 대한 인식적 노력이 선행된 것이야말로 진정한 유희가 아닐까?
내가 활동했던 동아리 역시 '장애인 인권'이란 동질성을 가지고 고대 다른 동아리와 교류한다. 둘다 대학가에 있는 기타 수많은 장애인관련 동아리가 갖고 있지 않은 장애운동이란 정체성으로 인해 과거에는 그 교류가 상당히 끈끈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교류는 항상 전국 유일의 장애운동 동아리란 정체성을 기준으로 진행되곤 했다. 우리마저 장애인 현실에 대한 고민의 끈을 놓아버리면 누가 하리?라는 약간의 자기 만족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런 과정 속에서 대학생, 지식인이 또한 '나는 장애인권운동을 한다'라는 동아리 명찰앞에서 가져야 할 최소한의 부끄러움과 자책은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 최소한의 부끄러움과 자책이 유효할만큼 한국 사회에 장애인의 현실은 충분히 냉혹하다. 취업이 안되어 지하철에 뛰어 들어 장애인이 자살을 하고 장애 자식이 왕따인것을 비관에 엄마가 장애 아동을 죽이며 아직도 우리나라 대부분의 장애인들은 시설에서, 집에서 갇힌채 살아간다.
사실 나의 이런 칙칙한 설교에 대부분의 후배들은 연고제까지 그런 고민을 해야 하나요 라는 반문을 보내왔다. 그러나 장애인권운동을 한다는 너희마저 이런 현실을 고민하지 않는다면 누가 하니?라는 나의 속앓이를 후배들은 들을 수 있었을까?
나는 선배들에게 대학생의 가장 위대한 특권이자 의무는 '순수'를 현실화하려는 의지와 노력이라 들어왔고 그건 분명 설득력있는 명제였다.
그러나 이제 그 명제를 대학생이 소유하기엔 역부족인듯 하다. 그 주간에 명동에서 펼쳐진 갖가지 인권에 대한 중고생들의 서명운동에서 학교 선생님이 국가 보안법으로 억울하게 잡혀 갔다면서 울먹이는 여고생앞에서, 난 행여 대학가에 중고생들의 대학생 형 오빠에게 쓰는 대자보가 붙지 않을까 하는 섬뜩함마저 느껴야 했다.
올해 나의 동아리 후배들은 정말 원없이 줄겁게 놀았다. 함께 어울렸던 고대 후배들도 참 즐거웠을 것이다. 아름다웠고 대견스러웠다. 하지만 동아리 정관에 있는 '장애인에게 책임을 진다'느니 '장애 해방을 꾀한다'느니 하는 조항들이 혹시 사문화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면 졸업생의 지나친 노파심이었을까?
그렇지만 동아리 활동을 하지 않는 어느 장애인 후배가 술에 취해 울먹이며 당신들마저 그러면 우리들의 축제는 어디에서 찾습니까? 라고 자꾸만 묻던 그 목소리가 여전히 귓가에 맴돈다.
정말 그 후배가 말한 우리들의 축제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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