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고 맑은 청명한 하늘, 선선한 바람 그리고 낙엽들... 이것은 쓸쓸한 남정네를 안달케 하는 유혹 그 자체이지만, 그 유혹의 손길은 요즘 나에게 먹히지 않았다. 인하대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인 필자는 다름 아닌 졸업을 얼마 남겨두고 논문을 준비하기 때문이다. 정확히 10월 4일 오후 8시까지는 그랬다.
그날도 어김없이 도서관에서 논문자료수집과 집필작업을 하고 정리하기 위해 집으로 향하던 중 학교 일대가 크게 술렁거림을 느낄 수 있었다. 다름 아닌 '후문가 거리축제'.
이것에도 애써 눈길을 주지 않고 시큰둥하게 지나가려 할 무렵, 마치 내 자제력을 시험하려는 듯이 후문 바로 앞에서 지역주민도 참가하는 가요제 예선이 진행하고 있었다.
잠깐 걸음을 멈춘 필자는 자신을 토닥이며 어렵지 않게 가뿐히(?) 제 1관문을 통과했다. 하지만 후문을 나오자마자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제 2관문이 등장하는데 후문 중앙거리에서 차량도 통제한 채 대형 음악무대가 펼쳐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곳도 겨우겨우 빠져 나오면서 '어떤 유혹도 학문에 대한 열정을 가로막지 못한다'하고 자만에 빠지던 순간, 복병을 만나고 말았다.
후문거리를 벗어나기 일보 직전, 몇 미터 안 남겨두고 갑자기 Jazz 선율이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지켜보다가, 이내 공연장 안으로 발걸음이 옮겼고 , 결국 객석에 앉아버리고 말았다. '아!~ 내가 졌다' 하는 순간이었다.
장소는 학교 근처에 있는 용현성당의 주차장. 여기서 이른바 '단풍이 어우러지는 작은 음악회'가 리허설 중에 있었다. 어렵지 않게 팜플렛을 500원 주고 사서 보니 다양한 레파토리가 준비되어 있었다.
8시 30분, 드디어 공연이 시작하고, 방송국에 다닌다는 졸업한 선배가 나와서 이번 거리축제의 의미와 이번 공연의 주제에 대하여 짧게 설명했다. 요약해 보면, 요즘의 대학문화-축제가 어딘지 모르게 술파티나 대학 안에서의 닫혀진 공간에서의 단절된 축제로 굳어져 가고 있는 현실에서, 그것을 탈피하기 위해 대학문화와 지역문화를 화합하고 대학과 지역주민의 동화를 촉진하며 그로 인하여 새로운 대학문화를 창출하려는 시도에서 이번 '후문가 거리축제'가 기획되었고, 그래서 이번 공연의 주제는 '和(화)'라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장소가 성당 안이며, 주위에는 6살 짜리 꼬마에서 60대 할머니들까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여러 사람들이 있었고, 공연 레파토리도 클래식에서 째즈까지, 민중가요에서 헤비메탈까지 여러 장르가 있었다.
사회자의 멘트가 끝나고 드디어 본 공연이 시작되었다. 첫 번째 무대는 인하대학교 관현악 동아리인 '인하관현악회'가 연주하는 파헬벨의 '캐논'이었다. 몇 곡을 더 연주한 후 이번에는 인하공전 동아리인 ASA의 노래가 이어졌다.
그 다음 순서에서는 유명한 민중가요인 '바위처럼'의 작곡가 유인혁 씨,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모태가 된 노래모임 새벽의 정윤경 씨, 완성도 높은 민중rock의 새로움을 보여준 MAYDAY의 고명원 씨 등 3인이 결성한 '유.정.고'밴드가 삶의 애환과 대포집의 국물냄새가 짓게 배인 노래들을 선사하여 열렬한 호응을 받았다.
그 다음 남성4인조 싱어송라이터 밴드인 '바람'이 메탈을 선사했다. '바람'의 노래와 무대 매너도 매우 훌륭했지만 필자를 더욱 감동케 한 것은 할머니, 할아버지, 아줌마, 꼬마아이 할 것 없이, 조금은 생소하고 거북한 rock에 흠껏 빠져 들며 박수치고 춤을 추고 즐거워 하였다는 것이다.
클래식은 교양 있는 사람들만 좋아하고, 락은 젊은이만 좋아하고, 노인들은 트로트만을 좋아한다는 식의 고정관념으로 문화계층을 나누고 구분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위험한 생각인지를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번 공연의 주제인 '和'가 가슴 깊이 새겨지는 시간이었다.
그 다음 순서는 문화의 불모지라고 불리는 인천에서, 사라진 인천의 옛 이름인 '미추홀'이라는 Jazz밴드가 나와서 완성도 높은 음악을 선사하였다. 그 중에 가장 인기 있었던 부분은, 공연을 기획하는데 참가하였던 국문과 97학번 이상희 씨가 기존 가수를 대신하여 대타로 나와서 밴드의 반주와 함께 'fly to the moon'을 부르는 순서였다. 정말 감미롭고, 부드럽게 노래를 불러 가을정취가 물씬 느껴지는 명연이었다고 평하고 싶다.
밤 10시 30분, 모든 순서가 끝나고, '단풍이 어우러지는 작은 음악회'가 막을 내리게 되었다. 다음 행사로 영화제가 있었지만 버스가 끊기는 11시를 넘기 전에 서둘러 가야 하는 필자는 아쉽게도 자리를 뜰 수밖에 없었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필자는 유혹에 무너지고 난 뒤의 허무감이 아닌 깊은 감동이 마음을 채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또 이 좋은 것을 나만 알고 지내기 아깝다는 생각에서, 비록 음악과 사진을 올리지는 못해도 이번 거리축제의 행사를 매일 지상중계하며 즐거움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또한 이번 지상중계가 올바른 대학문화를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본다.
마지막으로 이번 '후문가 거리축제'에 대하여 간략히 소개한다면 기간은 10월 4일부터 6일까지이다. 이 기간동안 씨름, 가요제, 장승깍기(퍼포먼스), 시립교향악단 연주, 사물놀이와 굿판 등 다채롭고 많은 행사들이 있으니 연인끼리 가족끼리 동반하여 오는 것도 좋을 듯하다.
참고로 10월 5일 목요일에는 오후 1시부터 밤 11시까지 후문가에서 음악축제가 계속되는데 참가하는 면면들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소요산 락 페스티발에서 은상을 수상한 상명대 학생들로 구성된 Teamgen21, 2000년도 강변가요제 대상을 수상한 Synergy(新於之), 2030락 페스티발에서 대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굉장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 ZowiE('와' 소리지르다는 뜻의 영어),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닥터코어 911과 노브래인, 시나위 등 이외 많은 팀들이 높은 완성도의 음악을 여러분께 선사하리라고 확신한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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