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방, 콜라텍이 따로 있었나요

생활 속의 '보리' 이야기(27)

등록 2000.10.06 21:50수정 2000.10.07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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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청소년들의 데이트 장소는 콜라텍, 노래방, 특히 DDR 이라지만, 조금 나이가 들면 통상 커피숍, 호프집으로 통한다.

예전에만 하더라도 농촌에서는 이런 데이트 장소는 꿈도 꾸지 못할 소리였다. 농촌에서야 어디 뾰죽하게 갈 곳이 있었나. 금방 소문날 것은 뻔하지만 그저 통학 길에 남몰래 같이 오거나 하다가 고작 들르는 곳이 근처 보리밭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리밭은 환상의 장소였다. 예전의 그 키 큰 보리. 보리밭 속에서의 청춘 남녀. 맥랑(麥浪)! 보리가 바람에 물결처럼 너울너울 흩날리면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이 된다.

원로 여류 한국화가 '이숙자'는 보리밭을 즐겨 그렸다. 그의 '이브의 보리밭' 시리즈는 한국적인 그리고 낭만적인, 한국적 에로티시즘을 마음껏 발산한다. 그만큼 보리밭은 남녀의 만남 장소로는 그만이었다.

1910년대 보리 장려 품종의 키는 100cm 이상이 대부분이어서 성인의 가슴까지 올라왔다. 키가 큰 만큼 줄기가 약하여 쓰러지기도 쉬웠다. 해방 이후까지도 이 정도의 수준을 유지하다가 최근에는 약 80cm 내외로 작아졌다.

물론 보리가 쓰러지는 것은 막을 수 있는 이점이 있지만 자칫하면 수량이 낮아지고, 키 작은 품종들이 농가에 보급되었을 때는 60cm 정도로 지나치게 짧아지는 경우가 있어 기계 수확에 지장을 가져오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나라 작물시험장 연구팀은 보리의 키 육성 목표를 70∼80cm로 잡고 있다. 최근 개발하여 장려품종으로 등록된 '진미찹쌀보리'는 줄기가 튼튼하고 밥색깔이 희고 밥맛이 좋아 취반용으로 기호성이 아주 높다.


옛 품종들의 키가 이렇게 크다 보니 넓은 보리밭에 들어가 있는들 누가 알리오. 게다가 바람이라도 살랑살랑 불어오면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저녁에 집에 들어오면 어머니는 금방 눈치를 채신다. '얘야, 바지가랑이에 왠 보리 까락이냐?'

지난 여름 한국맥류연구회의 학술대회에 다녀 왔다. 충남 연기의 보리 시범포, 충남 아산의 우리밀 재배단지 등 금년 같은 가뭄에도 생육이 좋아 한결 마음이 뿌듯했지만 역시 보리 키는 작아 보였다.

이제는 보리밭 안에 들어간들 한눈에 띄고 만다. '보리 밭 사이 길로 뉘이 부르는 소리 있어 나를 멈춘다' 의 낭만은 이제는 없어진 것 같다.


학생들의 DDR만 요란스럽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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