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장학적금'을 기억하시나요?

변화된 사회여건으로 '본래의 역할과 기능'에 의문

등록 2000.10.07 00:35수정 2000.10.07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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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우리 사회가 경제 개발을 위해 국가의 모든 기반들을 활용할 때에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국가 경제적으로 학교를 통해 이루어지던 학생 '장학적금'은 그 목표와 의미가 경제적이었으며 나름대로 교육적 효과도 있었다.

80년대 초반까지 장학적금을 타본 기성세대라면, 적은 푼돈에도 큰 이율이 적용돼 초,중,고의 졸업에 즈음하여 만기금액을 탔던 장학적금이 다음 학년에로의 진학에 필요한 것들을 구입하는 데 유용한 몫을 담당했음을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학생 장학 적금이 변화하는 사회 현실 속에서 과거와 같은 역할과 기능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이며 중학교 교사로 학교에서 저축업무를 담당하면서 느낀 학생 저축에 대해, 다음 몇 가지 사실을 근거로 반대 의견을 제시한다.

첫째 현재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학생 저축은 절약과 저축이라는 경제교육적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

학생저축의 목적은 학생으로 하여금 자신의 용돈을 계획성 있게 사용하고 절약, 저축하는 태도를 길러주는 경제 교육의 한 방법일 것이다. 그러나 과연 학생 저축은 그와 같은 목표를 달성하고 있는 것일까? 일반화의 오류를 범할 수도 있겠으나 기자가 근무하는 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구두 설문 조사한 바에 의하면, 학생 저축을 하는 90% 이상의 학생이 자신의 용돈을 절약해서 저축하기보다는 부모님으로부터 저축할 돈을 별도로 받아와서 저축을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응답은 학부모가 자녀를 위한 저축의 한 형태이지 학생이 자신의 용돈 절약과 관리의 방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둘째, 장기 저축인데도 이율이 낮아 경제적이지 못한 적금상품을 학생과 학부모가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보통 초,중,고에서 학생들이 가입하는 적금상품은 1년 이상 3년 미만의 기간으로 이율이 7.5% ∼ 9.0% 정도 수준이다. 이와 같은 비경제적인 상품을 선호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학교에서 실시하는 적금이니까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참여하는 것은 아닐까?

셋째, 개인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사례이다.


물론 학교와 금융기관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일선 학교에서 학교장의 결재를 받아야 학생과 학부모가 자신들의 재산인 적금을 중간해약하고 만기금액을 찾는다.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전학생을 보낼 때도 해당 학생의 적금 중간 해약을 위해 학교장 결재를 받고 그 확인서를 학부모에게 보낸다는 것이다. 개인의 재산에 대해 왜 학교장의 결재가 필요한 것일까?

실례로 열흘 전에 한 학부모가 학교에 전화를 걸어왔다. '내 아이의 적금이 만기가 되어 저축액을 찾으러 해당 금융기관에 갔더니 학교로부터 통보가 안 와서 돈을 못 주겠다는데 이게 무슨 소리냐고?' 다행히 이 일은 학교장 결재 없이도 잘 해결되었지만 그 후에 학생들의 적금 만기일을 알리고 만기 저축액 환불에 대한 가정 통신문과 내부결재를 내야 하는 관행이 이루어졌다. 물론 학교가 중간 매개가 되어 이루어진 학생 저축에 대해 만기 안내를 하는 가정 통신문이야 필요한 것이지만 학교장 결재가 있어야 중간 해약을 하고 만기 저축액을 찾아간다는 것은 엄연한 개인 재산권 침해인 것이다.


넷째, 일부 학교에서는 학생이나 학부모의 의사와 관계없이 일방적으로 학기초(입학초)에 통장을 만들어서 적금에 가입시킨다.

이는 분명 잘못된 것이다. 아무리 저축하는 태도가 좋은 것이고 학교에서 이와 관련된 교육이 필요하다 하여도 당사자의 의사 표현이나 선택 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다섯째, 과연 학생 저축은 학교에서 해야 하는 교육적 활동 가운데 하나이어야 하는가?

교사가 학생들로부터 저축할 돈을 받아서 확인하고, 중간 장부에 기록하고, 금융기관에서 출장온 담당자에게 돈을 건네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가? 이 과정 역시 학교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떤 모습이든지간에 전근대적 저축활동인 것이다. 학생 저축 위원을 두어서 그 학생이 학급 아이들의 돈을 걷어 기록하고 담임 교사가 확인하고, 때에 따라서는 참여율 몇%, 저축액 얼마까지 기록해서 학교장께 제출하기도 하고 금융기관 직원에게 넘긴다. 이에 소요되는 시간과 노력이 과연 교육적일까?

과거와 달리 금융기관은 우리 생활 주변에 많이 있으며 사이버 공간에서도 존재한다. 전화 한 통으로, 인터넷을 통하여 금융업무를 개인이 볼 수 있는 기회와 시간이 많아졌다. 학교라는 매개가 없어도 학생 스스로 금융기관을 이용할 수 있으며 학부모가 원하기만 하면 자신의 통장에서 자녀를 위한 저축쯤은 쉽게 이체하여 해 줄 수 있다. 굳이 전근대적 방법으로 현금을 들고 다니면서 몇 단계를 거쳐 저축하지 않아도 된다.

작년 내 아이가 학교에서 적금 통장을 들고 왔을 때 담임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개인적 선택으로 안 해도 되느냐'고 선생님의 답변은 '곤란하다'는 것이었다. 학교라는 공동체에서 위로부터 지시되어 내려오는 것을 실행하는 중간 입장에서의 어려움을 잘 알기에 아이 편으로 최소한의 저축액과 횟수로 참여하고 있다.

학부모의 입장에서 내 자녀의 저축은 폰뱅킹과 자동이체로 관리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학부모들이 그렇듯이 집에서는 아이가 저금통에 동전이나 용돈을 모으면 1년 단위로 금융기간에 저축하거나 모아진 돈을 필요한 곳에 쓰도록 함으로 담임 선생님께서 코흘리개들의 저축액에 신경쓰는 시간과 노력보다는 아이들에게 눈길 한번 더 주는 교육적 활동이 더 필요하다고 느낀다.

물론 학교에서는 현명한 소비 생활과 절약 저축의 중요성에 대한 경제 교육을 해야 한다. 그러나 그 방법의 하나인 현행의 학생 저축은 그 목표와 방법이 경제교육 본연의 목적에 맞지 않으며 교육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이제 저축하는 일은 학교가 중간 매개로 나서지 않아도 개인과 가정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생활 영역이므로 학교가 나서서 개인의 재산권을 침해하면서까지 굳이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학교에서는 학생 적금보다 정말 더 중요하게 해야 할 많은 일들이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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