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보를 기다린다-홍석천에게

홍성식의 百日詩話 86

등록 2000.10.07 12:06수정 2000.10.09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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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보를 기다린다-홍석천에게

밥상머리에서 개처럼 투정하는
늙은 내 입 속에 랭보가 돌로 씹힌다
"가난한 자가 키울 것이라곤 굶주림이 전부인 것을"


술집엘 간다
쫓아온 랭보가 귓전에 속삭인다
"애초에 있지도 않은 권위는 입구에 두고 가라"

낯선 여자를 안는다
하얀 몸 얽힌 침대 머리맡 랭보가 서있다
"진리는 너의 성기 속에만 있다"

길거리에 넝마를 걸친 랭보가 있다
동전 몇 닢으로 무시무시한 경구를 듣는다
"돈이 없는 생은 빈한할 뿐이다
그러나 헛될망정 욕망 없이는 생이 없다"


2000년 10월5일

시작 메모


누구에게도 열 아홉 시절은 있기 마련이다. 박일문 식으로 표현하자면 "음악과 영화, 이데올로기 없이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 열 아홉 살.

시는 바로 그 열 아홉의 내게 와서 아직도 나를 살아있게 하고, 죽고싶게 만드는 꿈이요, 미망(迷妄)이요, 절망이고 환멸이다. 나는 왜 시를 읽었을까?


내가 시 같잖은 시를 겨우겨우 끄적이기 시작한 열 아홉 살에 랭보는 "이제 나는 더 이상 시에서 이룰게 없다"라 공언하며, 아프리카로 떠났다. 그가 밤새 '하시슈'와 아프리카산 토속주에 취해 있다가 맞았을 새벽 미명. 나는 랭보에게 쏟아졌을 그 햇살조차도 부럽다.

진초록의 '압생트 주'를 랭보와 나눠 마시고, 그에게 세계와 인간의 대한 진실과 허위를 듣는다면 이성애자인 나조차도 랭보를 향해 정말이지 홍석천처럼 '커밍아웃' 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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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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