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사설 김영삼 옹호를 보고

오늘자 사설 '고대 앞에서 벌어진 反지성'의 논리

등록 2000.10.16 08:12수정 2000.10.16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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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는 10월 16일자 사설에서 YS측를 거들고 나섰다.

사설 제목은 '고대 앞에서 벌어진 反지성'. 지난 13일에 예정됐던 YS의 고대특강이 이 학교 학생들의 저지로 무산된 아쉬움과 노여움이 서려있는 사설이다.

글 첫머리에서부터 이날 YS 강의를 막은 이 학교 학생들을 '총학생회' 세력들로 애써 축소해놨다. 그리고, 성토한다. 학생회의 이날 행동은 대학의 본질을 훼손한 '反지성적' 행동이라고. 또한, 이날 총학생회는 가당찮게도 '실력' 저지를 행사하며 강의에 대한 검열권을 행사했단다.

이날 고대 정문 현장에는 '강의반대 시위' 학생들뿐만 아니라, '대통령학' 강의를 수강하는 행정학과 학생들과 YS를 직접 초청했던 함성득 교수, 학교 총장, 재단 이사장까지 나와 있었었다. 특히 '수강' 학생들과 '시위' 학생들간에는 서로의 '협상안'을 가지고 장시간 토론과 회의를 거듭하며 합의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양측의 논쟁 끝에, "정문만 막겠다. 이게 우리의 마지막 자존심이다. 정치적 의도가 없는 강의라면 후문이나 쪽문을 통해 들어가 강의하라"는 결론을 이끌어내 함성득 교수가 YS측에 전달했었다. 결국은 YS측의 일방적인 거부로 결국 결렬되는 바람에, 강의는 무산됐지만 말이다.

이해관계 당사자인 학생들간의 자유토론을 통한 집단행동이 <조선일보>에게는 '실력행사'로 보였던 모양이다. 그들에게는 지금까지 워낙 '힘의 논리'에 익숙해있는지라 학생들의 자유토론을 통한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도 똑바로 보여지지 못했던 것 같다. 계속해서 사설은 '강의의 학습성'을 강조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학생들은 연사를 향해 질문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니, 이 같은 토론이야말로 아카데미즘의 속성이기도 하다."


갑자기 '아카데미즘'이란 단어가 나왔다. '강의'를 할 수 있는 길이 있었음에도 YS측이 정문에서 '버티기'를 계속 했기에 '강의의 순수성' 여부는 이미 끝난 얘기다. 따라서 여기서 '아카데미즘'이란 말은 어불성설이다. <조선일보>는 정말 이번 강의가 진리(문민정부 공과에 대한 평가)를 향한 치밀한 학문적 분석과 토론이 이루어질 거라고 생각한 걸까? 참으로 순진한 사고방식이 아닐 수 없다.

YS측의 최근 행보를 봐왔다면, 이번 강의를 예상할 때, '아카데미즘'이 아니라 오히려 '폴리틱(politic)'이란 단어가 연상되는 게 정상이었을 것이다. 소위 '시위파' 학생들은 자신의 학교가 그런 정치적 행로의 장(場)이 되는걸 양심상, 혹은 자존심상 받아들일 수 없었기에 '강의 선택권'을 포기한 것이다.


계속해서 사설은 한국 대학의 '아카데미즘 부재' 현실에 개탄하며, 이에 무능력하게 대응했던 고대 총장을 준열히 꾸짖고 있다.

"이는 또한 총학생회가 집단행동으로 수업을 방해했음을 의미하는 것임에도 고대 총장은 김 전 대통령에게 양해를 구한 선에서 사태를 넘기려고만 했다. 이쯤되면 대학을 책임지고 운영하는 주체가 누구인지를 알 수가 없는 노릇이다."

대학을 책임지고 운영하는 주체? 여기서 예의 <조선일보> 사설의 모순된 논리구조를 확인하게 된다. 앞에서 실력저지 운운하며 '힘의 논리'를 비판하던 사설이 단 두 단락을 못넘기고 다시 '힘의 논리에 의한 대학 운영'을 못한 총장을 비판하는 '권위주의적' 발상을 내보이고 있다. <조선일보>는 대학의 주체를 '교수, 교직원, 학생'이 아니라 '총장과 재단'으로 보고 있다는 반증이다.

드디어 맨마지막 단락에서 사설은 논리를 확장하며, 정말 하고싶었던 얘기를 쏟아놓고 있다.

"우리 사회에는 특정한 견해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이나 집단을 무슨 무슨 세력이라고 매도하는 이념적 편향성과, 자신들에 대한 비판을 물리적으로 침묵시키려는 폭력성이 더해가고 있다. 특히 사상의 자유시장이라는 대학이 이런 풍조에 물들어 역매카시즘를 키우는데 앞장선다면 그것은 실로 심각한 일이다."

지면상 축약돼 서술된 윗 글을 알기 쉽게 다시 풀어 써 보겠다. '안티조선운동'에 의해 최근 확산되고 있는 <조선일보> 세력에 대한 비판에 볼멘소리를 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예전엔 안그랬는데, 지금) 우리 사회에는 (남북화해협력과 사회개혁이라는) 견해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이나 집단을 (반통일세력, 수구·기득권세력, 냉전세력, 극우보수세력)이라고 매도하는 이념적 편향성과, 자신들에 대한 비판을 ('안티조선운동'과 같은 방법으로) 물리적으로 침묵시키려는 폭력성이 더해가고 있다."

특히, '특정한 세력을 매도하는 이념적 편향성'이라는 발언에 주목된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조선일보>가 더 했으면 더 했지, 결코 덜하지 않음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언뜻 떠오르는 '최장집 사건' 때의 가공할만한 이데올로기 공세는 그것에 다름 아니지 않는가.

끝으로 마지막 문장에서 사용된 '역매카시즘'이란 단어는 역설적이게도 <조선일보>의 정체성을 선명히 드러내 놓고 말았다. '역매카시즘'을 비판하는 문장에서 냉전시대의 상처, 지성사의 오점인 '매카시즘'과 <조선일보>가 불가분의 관계라는 냄새가 강하게 풍기는 건 왜일까?

관련기사 YS 고대앞 14시간 '농성' 1-24신

덧붙이는 글 | 10월16일자 <조선일보> 사설 전문

고대 앞에서 벌이진 '反지성'

고려대 총학생회가 자기 대학에 특강을 하러 온 김영삼 전 대통령의 학내진입을 막아버린 사건은 대학의 본질을 크게 훼손한 반지성적인 행동이다. 김 전 대통령은 행정학과 전공수업에 특강을 하도록 초청을 받아 왔음에도 고려대 총학생회가 “우리는 당신을 초대한 적 없다”는 피켓을 들고 그의 진입을 막아버린 것이다. 특강을 들을 예정이던 행정학과 3~4학년 학생들이 항의했음에도 학생회측이 실력으로 이를 저지해 버렸다니, 학생회가 일종의 검열권을 행사한 셈이다. 

대학이 외부 인사를 초빙해서 강연회를 열거나 특강을 하는 것도 대학의 중요한 기능이다. 학생들이 다양한 외부인사의 강연을 접하면 현실문제에 대해 폭넓은 시각을 갖게 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선진국 유명대학들이 기금을 조성해서 외부인사 특강을 유치하는 것도 모두 이런 이유 때문이다. 대학이 초청하는 연사 중에는 정치적 견해 등으로 다소 논쟁적인 사람도 있을 것이고, 또 어떤 학생들의 입장에선 그 연사가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과 견해를 달리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중요한 학습과정이다. 학생들은 연사를 향해 질문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니, 이 같은 토론이야말로 아카데미즘의 속성이기도 하다. 

고려대 총학생회가 보여준 태도는 우리의 아카데미즘의 현주소를 잘 보여 준다. 김 전 대통령 집권기에 경제위기가 발생한 데 대해 여러 견해가 있을 수 있고, 또 그의 최근 행보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시각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김 전 대통령은 바로 그런 문제에 대한 설명을 위해 대학에 초청됐을 것이다. 그에 대해 비판적인 학생들은 강연이 끝난 후 질문을 할 수 있었을 것이고, 그를 초청한 교수도 강연보다는 토론에 비중을 두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총학생회는 ‘초청하지 않았다’는 어거지를 이유로 김 전 대통령의 학내 진입을 실력으로 저지해 버렸다. 언제부터 외부인사 강연에 총학생회가 초청을 승인해 왔는가. 이는 또한 총학생회가 집단행동으로 수업을 방해했음을 의미하는 것임에도 고대 총장은 김 전 대통령에게 양해를 구한 선에서 사태를 넘기려고만 했다. 이쯤되면 대학을 책임지고 운영하는 주체가 누구인지를 알 수가 없는 노릇이다. 

고려대에서 일어난 일이 우발적 사건이 아닐 것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우리 사회에는 특정한 견해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이나 집단을 무슨 무슨 세력이라고 매도하는 이념적 편향성과, 자신들에 대한 비판을 물리적으로 침묵시키려는 폭력성이 더해가고 있다. 특히 사상의 자유시장이라는 대학이 이런 풍조에 물들어 역매카시즘를 키우는데 앞장선다면 그것은 실로 심각한 일이다.

덧붙이는 글 10월16일자 <조선일보> 사설 전문

고대 앞에서 벌이진 '反지성'

고려대 총학생회가 자기 대학에 특강을 하러 온 김영삼 전 대통령의 학내진입을 막아버린 사건은 대학의 본질을 크게 훼손한 반지성적인 행동이다. 김 전 대통령은 행정학과 전공수업에 특강을 하도록 초청을 받아 왔음에도 고려대 총학생회가 “우리는 당신을 초대한 적 없다”는 피켓을 들고 그의 진입을 막아버린 것이다. 특강을 들을 예정이던 행정학과 3~4학년 학생들이 항의했음에도 학생회측이 실력으로 이를 저지해 버렸다니, 학생회가 일종의 검열권을 행사한 셈이다. 

대학이 외부 인사를 초빙해서 강연회를 열거나 특강을 하는 것도 대학의 중요한 기능이다. 학생들이 다양한 외부인사의 강연을 접하면 현실문제에 대해 폭넓은 시각을 갖게 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선진국 유명대학들이 기금을 조성해서 외부인사 특강을 유치하는 것도 모두 이런 이유 때문이다. 대학이 초청하는 연사 중에는 정치적 견해 등으로 다소 논쟁적인 사람도 있을 것이고, 또 어떤 학생들의 입장에선 그 연사가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과 견해를 달리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중요한 학습과정이다. 학생들은 연사를 향해 질문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니, 이 같은 토론이야말로 아카데미즘의 속성이기도 하다. 

고려대 총학생회가 보여준 태도는 우리의 아카데미즘의 현주소를 잘 보여 준다. 김 전 대통령 집권기에 경제위기가 발생한 데 대해 여러 견해가 있을 수 있고, 또 그의 최근 행보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시각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김 전 대통령은 바로 그런 문제에 대한 설명을 위해 대학에 초청됐을 것이다. 그에 대해 비판적인 학생들은 강연이 끝난 후 질문을 할 수 있었을 것이고, 그를 초청한 교수도 강연보다는 토론에 비중을 두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총학생회는 ‘초청하지 않았다’는 어거지를 이유로 김 전 대통령의 학내 진입을 실력으로 저지해 버렸다. 언제부터 외부인사 강연에 총학생회가 초청을 승인해 왔는가. 이는 또한 총학생회가 집단행동으로 수업을 방해했음을 의미하는 것임에도 고대 총장은 김 전 대통령에게 양해를 구한 선에서 사태를 넘기려고만 했다. 이쯤되면 대학을 책임지고 운영하는 주체가 누구인지를 알 수가 없는 노릇이다. 

고려대에서 일어난 일이 우발적 사건이 아닐 것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우리 사회에는 특정한 견해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이나 집단을 무슨 무슨 세력이라고 매도하는 이념적 편향성과, 자신들에 대한 비판을 물리적으로 침묵시키려는 폭력성이 더해가고 있다. 특히 사상의 자유시장이라는 대학이 이런 풍조에 물들어 역매카시즘를 키우는데 앞장선다면 그것은 실로 심각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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