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는 섬 전체가 문화재이자 유적지이다.
강화도는 자연경관이 뛰어나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선사시대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강화도는 영욕에 찬 역사를 품고 말없이 그 자리에 있다. 역사물, 문화재, 불교문물, 유적지, 종교 유적 등을 간직하고 있다. 강화도는 역사관광, 레저관광 등을 하기에 좋은데 강화8경, 교동8경, 박물관, 특산품 판매장, 마니산, 용두레질 놀이, 시선 뱃놀이, 곶창당제, 고인돌, 봉가지, 봉천대, 북문누각 등을 볼 수 있다. 많은 관광지 중에서 몇 군데만 소개해본다.
강화 고인돌
강화군 하점면 부근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북방식 고인돌로 사적 제137호이다. 지금까지 발견된 북방식 고인돌 가운데 대형에 속한다. 지상에서의 높이 2.6m 덮개돌의 크기는 길이 7.1m, 너비 5.5m 이며 화강암으로 되어 있다. 고인돌은 두개의 긴 굄돌 위에 덮개가 덮혀 있는데 남북으로 길게 놓여 있다(18번). 근처에는 굄돌만 남아 있는 것(15번)과 덮개만 남아 있는 것(16번, 17번)이 있다.
근처 볼거리
강화 하점면 석조여래입상 : 하점면 장정리 봉천산 자락에 있는 고려시대 석조여래입상, 보물 제615호.
강화 하점면 오층석탑 : 하점면 장정리 봉천산 자락의 고려시대 석탑, 보물 제10호.
봉가지 : 하점면 부근리에 있는 하음봉씨의 발상지로 알려진 20평 정도되는 작은 연못.
봉천대 : 하점면 신봉리 봉천산 꼭대기 근처에 있는 제단.
봉천산 : 등산로가 있다. 꼭대기 근처에 봉천대가 있다.
북문누각
강화군 강화읍 관청리에 있는 강화산성 내성의 4대문 중 북쪽에 있는 문이다. 북문은 고려 고종 19년(1232년)에 강화로 천도한 뒤 대몽 항쟁을 위하여 흙으로 쌓은 내성에 연결되었던 문이다.
조선 숙종3년(1677)에 강화 유수 허질이 전면을 돌로 쌓고, 후면은 흙으로 개축 확장하기 시작하여 숙종 37년(1711년)에 강화 유수 민진원이 34년 만에 강화산성 당시 북문에는 누각이 없었으나, 정조 7년(1783년)에 강화 유수 김노진이 누각을 세우고 진송루라고 하였다.
그 뒤 북문 누각은 헐려서 석축만 남아 있던 것을 1976년 강화중요국방유적 복원정화사업으로 현재와 같이 복원하였다. 북문 누각 안쪽에는 진송루라고 쓴 현판이 걸려있다. 현판의 글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쓴 것으로 보아 1976년에 새로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고개에 세워진 문으로 문 앞이 옴폭 들어간 형태이기 때문에 북쪽에서 침입하는 적을 공격하기에 알맞게 되어 있다. 북문 양쪽으로 성벽이 남아 있다. 1999년 5월 16일에 성벽을 따라 왼쪽으로 조금 오르니 우리 산야를 점령한 외래 수종인 아카시아 나무가 꽃향기를 내고 있었다.
마니산 참성단
마니산 꼭대기에 있는 참성단에서는 1년 내내 지는 해를 볼 수 있다.
강화읍 →마니산 관광단지 →걸어서 참성단
해가 지고 나면 산길이 쉬 어두워지므로 해진 후 빨리 하산해야 한다.
전시관
강화군 강화읍 갑곶리 갑곶돈대 옆에 있는 강화의 역사를 주제로 한 전시관이다. 선사시대로부터 고려시대, 조선시대, 대한제국에 이르기까지 강화의 역사에 대하여 설명과 전시물 등이 있다. 마당에는 시선 1척이 있고, 역사관 오른쪽 30m 지점에는 갑곶리 탱자나무가 있다. 전에 검문소에서 바라보이는 용정리 언덕에 있던 비석들을 마당에 옮겨 놓았다. 갑곶리 탱자나무를 지나 더 가면 갑곶돈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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