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자·월북자 숫자는 얼마나 되나

이산가족 규모의 허와 실, 그리고 냉전적 통념

등록 2000.11.30 07:12수정 2000.11.30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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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30일 드디어 2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시작된다고 한다. 8·15 1차 상봉 이후, 2차 상봉의 성사 여부와 시기를 둘러싼 우여곡절이 있었던 바, 비록 소수지만 이렇게 이산가족 상봉이 지속될 수 있게 된 건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지난 8·15 상봉은 이산가족 당사자들에게 실제 만남 또는 만남의 기대를 갖게 한 뜻깊은 사건이겠지만, 사회적으로도 이산가족, 그리고 그들을 발생시켰던 한국 분단사에 대한 새로운 관심과 '발견'을 불러일으킨 사건이 아니었던가 한다. 예컨대 그동안 존재 자체를 숨겨야 했던 '월북자' 가족의 '커밍아웃'과 그들에 대한 '존재 인식'만 해도 그렇다.

이러한 일들은 최근 일련의 남북 해빙 무드 속에서, 지나간 50여년간 냉전시기에는 말할 수 없었던, 또는 고정관념과 선입견 하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숱한 이슈들(비전향 장기수, 북파 공작원 등등)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과 궤를 같이 한다 할 것이다. 이 글에서는, 그 중에서 월남자와 이산가족의 규모와 관련된 고정관념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월남자 : 월북자 = 500만 : 1만명'?

<그는 "남쪽에서 북쪽으로 간 이는 1만명 수준이지만 월남한 이는 500만명이 넘으며 현재 살아있는 사람 중 60살 이상인 노령자가 100만명을 헤아린다"고 일러주었다. 그는 "이 때문에 양국이 방문단을 구성할 때 기계적으로 동등한 수만 고집하지 말고 전체적인 이산가족의 재회를 보장하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겨레> 8월 22일자에 실린 한 이산가족(전(前) 이북5도민연합회 의장을 지낸 이모 변호사)과의 인터뷰에 나오는 구절이다. 그 분을 비롯하여 "전체적인 이산가족의 재회"가 이뤄져 평생의 한들이 풀리기를 필자 역시 바라마지 않지만, '월남자 : 월북자 = 500만명 : 1만명'이라는 말은 아무래도 과장된 게 아닐까? 당시 북한 인구가 1,000만명이 채 안 되었다는데 말이다. 또 <조선일보> 9월 5일자 [만물상] 칼럼에는 이런 '기사 인용'도 있었다.

<한강 인도교나 대동강 철교의 그때 사진을 보면 아주 닮은 데가 있다. 다리 위의 피란민들이 모두 남쪽을 향하고 있는 것이다. (…) 1947년 10월 21일자 <조선일보> 제1면에는 광복 후의 인구이동 상황을 짐작케 해주는 동경발 AP통신 기사가 실려 있다. "…해방 이후 남하한 조선인 총수는 150만에 달하고 있으나 북조선으로 이동한 조선인은 1%에 불과하다." 그러니 우리 남한에 이산가족이 더 많고 아픈 사연도 더 많은 것이다.>


해방이후∼1947년 10월 기간의 150만 남하설은 사실일까? 실제로 월남자·월북자 인구규모는 얼마나 되며, 그게 부풀려지거나 축소되었다면 왜 그래왔던 것일까.

'월남자'는 몇 명이나 될까


월남자수가 5백만에 이른다는 위의 변호사의 말은 그냥 나온 것은 아니다. 1948년에 이미 이승만 대통령은 제헌의회 개원식 축사에서 "이북에서 넘어온 동포가 450만"이라고 말했다 한다. 또, 이북5도위원회 공식 홈페이지(http://www.ibuk5do.go.kr/)에 따르면, 1970년 가호적(假戶籍) 취득시 조사된 월남도민이 546만명이며, 그 이후 인구증가율을 감안할 때 지금은 (월남자 및 그 가족이) 767만명에 이를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예전 자료를 보면, 구체적으로 6·25 이전의 남하자가 약 350만명, 1·4후퇴 때 164만명 등으로 추산하기도 했다) 이는 현재 정부가 "남측의 이산가족이 767만명이며, 이 가운데 이산 1세대는 123만명에 이른다"라는 말의 근거가 되고 있다.

하지만 여기엔 상식적으로(물론 지금 와서 볼 때 '상식적'인 것이지만) 보더라도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먼저, 1946년 북한(38선 이북지역) 인구가 926만명, 1949년에 962만명 정도였다는데, 더구나 그 중 전쟁 도중에 사망한 군인·민간인 숫자가 70만명쯤(실종자 제외) 된다는데, 어떻게 500만명이나 되는 숫자가 내려올 수 있었겠는가 하는 점이다. 또한, '월남자가족〓767만명〓이산가족'이라는 계산법에는, 월북으로 인해 발생한 이산가족은 애초에 상정조차 되지 않았다는 점이 있다.

그렇다면 실제로는 어떠했는가. 사실 월남자·월북자 수효에 대해선 정확한 통계자료를 찾을 수 없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전쟁통의 혼란기에 통계작업인들 잘 이뤄졌을 리 없으려니와, 그동안 해당 주민들이 불이익을 우려하여 관련 사실을 노출시키지 않으려는 심리도 작용했을 것임은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역대 인구 센서스와 인구학적 추론을 동원한 학자들의 계산으로부터 어느 정도의 윤곽을 그려보는 것은 가능할 것이다.

우선 '월남자'의 정의를 어떻게 규정하면 될까. 상식적으로 보아 "38선 이북이 고향인 사람으로서, 1945년 해방 이후∼1953년 정전까지의 시기에 38선 이남으로 내려온 사람(강정구 교수)"으로 잡으면 적절하리라 본다. 그럴 경우, 38선 이남 출신이 해방 전 이북 지역에 취업이나 강제동원에 의해 머물러 있다가 이남으로 귀향한 경우라든가, 해외에 있던 동포가 이북 지역을 거쳐 남하한 경우는 계산에서 빠지게 될 것이다.

먼저 참조할 만한 것은 정부의 공식적 인구조사(센서스)이다. 그 자료에 따르면, 1945∼49년 사이의 월남자sms 1949년 조사에선 48만1000명, 1955년 조사에선 45만명으로 나와있다고 한다. 또 이후 인구센서스에서 조사된 '이북 5도 출신자'의 경우 1960년에 63만8000명, 1966년(특별인구조사)에 69만7000명, 1970년에 67만5000명으로 기록되었다고 한다.

이와 같은 자료들 및 '과소보고' 추정치, '생잔율(生殘率: 일정기간이 경과하는 동안 살아 남아 있을 확률), 사망율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인구학 전문가인 권태환 교수(서울대 사회학과)는 1945년∼49년까지 74만명, 전쟁기간 중 65만명 정도가 북한으로부터 남한으로 이주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 둘을 합치면 139만명이 된다.

그런데 동국대 강정구 교수(사회학)의 경우, 상기한 수치는 이북 출신이 아닌 월남인까지 포함하는 것이라면서, 자신의 추정치를 이렇게 말한다.

"1960년 이후의 인구조사는 어느 정도 정확하다는 판단하에 (…) 평균치를 구하면 67만명이 된다. 인구조사에서는 일반적으로 이북 출신의 경우 20% 정도가 과소보고된다는 인구학자의(권태환) 경향성 파악에 근거한다면 실제 월남인의 숫자는 84만명 정도로 추정할 수 있다."

또 120만명으로 보는 견해(유의영 씨)도 있다. 이렇게 연구자마다 각기 다른 추산을 하고 있긴 하지만, 학계에서는 대체로 60여만명에서 많게는 139만명까지로 월남자 수를 파악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월북자' 수는?

그렇다면 월북자 수는 어느 정도 될까. 이 역시 정확한 숫자는 알기 어렵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권태환 교수의 추론이 있어 여기에 소개해볼까 한다.

남한의 공보처와 UN군사령부의 발표를 종합한 것에 따르면, 한국전쟁 기간 중 사망자가 40만명, '납북자'가 15만명, '실종자·포로'가 41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 실종자·포로들은 다 어떻게 되었을까.

권태환 교수의 계산법은 이렇다. 이들 가운데에는 ①남한에 생존하게 된 사람, ②북한으로 자발적이든 강제적이든 이동한 사람, ③전쟁 중 사망한 사람이 섞여 있을 터인데, 이를 균등하게 나눠보자는 것이다(이의 타당성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사망자는 54만명, '북한으로의 이동자'는 29만명이 된다.

이러한 숫자는 물론 추론이긴 하다. 그런데 당시 북한 인구의 변동 상황을 보면 그 숫자가 대강 맞아들어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북한 인구의 변화를 보면, 1949년 962만명에서 1953년 849만명으로, 즉 그 사이에 113만명의 감소를 보인다고 한다.

그런데 전쟁 중 군인·민간인 사망이 70만명, 실종·포로 등(남한 이주 포함)이 77만명이라고 하므로(합계 147만명 감소), 대강 30여만명의 '유입'이 있다면 얼추 계산이 맞는 셈이다.

이 수치는 전쟁 중의 이동자이므로, 위에서 말한 '월남자의 정의'를 상기한다면 월북자의 경우에도 여기에 해방∼전쟁 전 시기의 이동자를 또한 추가해야 할 것이다.

<한겨레> 칼럼에서 강정구 교수도 "해방공간과 한국전쟁기간에 월남 및 월북했던 집단"으로서 "월남인은 약 85만명, 월북인은 30∼40만명으로 추정된다(8월 28일자, [얼치기 상호주의])"라고 쓰고 있다.

참고로, 월남자와 월북자의 구성을 보면, 월남자는 상대적으로 가족단위가 많은 반면, 월북자의 경우 '젊은 남성'의 비율이 매우 높다고 한다(남녀의 성비를 9대1 이상으로 추정).

남북 새 시대는 정확한 사실관계 인식으로부터

그렇다면 이러한 '월남민 500만명설'과 같은 비상식적인 과장은 왜 생겼고 또 왜 통용되어 왔는가?

강정구 교수는 '정치적 선전'에 그 주요한 혐의를 둔다. 미군정 때 경무부장(지금의 경찰청장)을 지낸 조병옥은 '1948년 9월 이전까지 이미 450만명의 북한 주민이 정치적 이유로 남하했다'는 근거없는 말을 미국 국무부 관리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이러한 주장은 "정치·사상적인 목적으로 월남자 수를 확대조작하여 이를 마치 사회주의를 혐오하여 '자유의 품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과장 선전"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조장된 것이라는 거다.

물론 다른 이유도 있을 것이다. 전쟁통에 인구파악이 제대로 될 리 없었을 것이며, 또 당시에는 식량배급을 받기 위한 유령인구도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월남자 숫자가 과도하게 부풀려지고, 다시 그것이 역대 정권 하에서 그대로 물려지게 된 데에서, '자유대한의 우월성' 강조의 정치적 의도를 읽는다면 지나친 것일까.

이 글에서는 주로 월남자·월북자 규모에 대한 이야기를 썼지만, 그 외의 이산가족 관련 통념 역시 재고찰할 대목들이 많다. 이를테면, 월남민 분야를 연구하여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은 김귀옥 씨(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는, 이른바 '월남인 통념'에 대해 조목조목 실증적으로 반박한 바 있는데, 몇 가지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한국전쟁 이전의 월남자 수가 더 많다(7:3 통념) → 1955년 센서스에 따르면 반대로 전쟁 중 월남자가 3.85 대 6.15 정도로 더 많으며, 여러 연구자의 사회조사 결과도 이와 비슷하다. ▲ 대다수의 월남동기는 반소·반공주의이다(정치·사상적 동기 통념) → 단일한 요인에 의해 이뤄진 것이라기 보다는 여러 복합요인이 결합된 것으로 봐야 하며, 적지 않은 월남인은 전쟁 상황 속에서, 원폭 투하 소문, 군의 징발 및 피난·소개(疏開) 권유 등으로 비자발적으로 월남한 것이다.

이상으로 월남자·월북자 수에 대한 고찰을 해보았다. 이러한 것을 규명한다고 해서, 그것이 이산가족의 명예를 실추시키거나 이산의 고통을 외면하는 것으로 간주되어선 안 될 것이다. 아니 이런 과정이 오히려 '이산가족'을 냉전시기 이데올로기의 채색으로부터 풀어내어 '가족'의 품에 되돌려주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간의 이분법적 통념을 재평가하여, 사실을 사실대로, 역사를 역사로 받아들이는 태도일 것이다. 그랬을 때라야 남북관계의 진전이 일회성 이벤트들이 아닌, '시민사회의 탈냉전화' 그리고 시민의식으로 뒷받침되는 새로운 역사의 든든한 시발점으로 자리매김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에서 주로 참조한 책은 다음과 같습니다. ('권위'를 내세우려는 것이 아니고, 더 자료를 찾아보고 싶은 사람에게 참고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적어놓는 것임을 양해바랍니다.)
강정구, [해방 후 월남인의 월남동기와 계급성에 관한 연구], <분단과 전쟁의 한국현대사>(역사비평사, 1995). 
김귀옥, <월남민의 생활 경험과 정체성: 밑으로부터의 월남민 연구>(서울대학교 출판부, 1999). 
김귀옥, [아래로부터 반공 이데올로기 허물기: 정착촌 월남인의 구술사를 중심으로](<경제와사회> 1999년 가을호). 
Kwon Tai Hwan, Demography of Korea: Population Change and Its Components 1925-1966, SNU Press, 1977.

덧붙이는 글 이 글에서 주로 참조한 책은 다음과 같습니다. ('권위'를 내세우려는 것이 아니고, 더 자료를 찾아보고 싶은 사람에게 참고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적어놓는 것임을 양해바랍니다.)
강정구, [해방 후 월남인의 월남동기와 계급성에 관한 연구], <분단과 전쟁의 한국현대사>(역사비평사, 1995). 
김귀옥, <월남민의 생활 경험과 정체성: 밑으로부터의 월남민 연구>(서울대학교 출판부, 1999). 
김귀옥, [아래로부터 반공 이데올로기 허물기: 정착촌 월남인의 구술사를 중심으로](<경제와사회> 1999년 가을호). 
Kwon Tai Hwan, Demography of Korea: Population Change and Its Components 1925-1966, SNU Press,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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