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아는 태어나서는 안되는 존재인가

누가 임산부에게 낙태할 권리를 주었나

등록 2000.11.30 20:37수정 2000.11.30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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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최고 법원인 파기원은 지난 11월 17일, 병원의 오진으로 인해 장애인으로 태어난 경우 피해보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는 외신을 접했다.

프랑스의 니콜라 페리쉬(17)라는 장애인의 어머니는 그를 임신했을 당시에 풍진이 걸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진단을 받았지만, 이상이 없다는 병원의 진단결과를 믿고서 페리쉬를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페리쉬는 심각한 신경장애를 안고 태어나서 현재 시각과 청각장애를 갖고 있는 바, 그의 부모는 이미 병원측으로부터 장애아를 낳은 데에 대한 피해보상을 받았고, 이번에는 더 나아가서 페리쉬 본인의 이름으로 소송을 제기하여 장애인으로서의 존재에 대한 피해 보상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결국 파기원은 "병원의 실수로 페리쉬의 어머니는 장애아의 출산을 피할 수 있는 낙태의 기회를 놓쳤으므로, 장애 당사자는 장애와 오진에 따른 피해에 대해 보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고 한다. 즉 페리쉬는 태어나서는 안될 몸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보상을 받는 셈이 되었다.

이러한 소식은 장애인 문제에 관심이 많은, 또 장애인 당사자이기도 한 나에게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또,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 행동인가를 한참 생각하게 할만큼 혼란스럽게 했다.

물론, 태아에 대한 진단에서 오진을 한 것이 피해보상을 할 수 있는 일이란 것에는 이의가 없다. 그러나 낙태의 기회를 놓친 것에 대한 피해보상이란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논리이다.

왜냐하면 그런 논리 밑바닥에는 태아가 장애인임을 확인하게 될 경우, 장애라는 이유로 낙태를 하는 것은 임산부의 당연한 권리라는 사고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과연, 이세상의 임산부들, 또는 이세상의 사람들은 태아가 장애인이란 이유 하나만으로 그 태아를 죽일 수 있는 권리가 있는 것일까? 비장애인들과 동등한 인격체로서의 장애인이 세상에 태어날 권리는, 또 장애인으로서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는 권리는 도대체 무엇인가? 장애인은 비장애인에 비해 열등한 존재인가? 설사 열등한 존재라고 가정한다고 해서, 열등한 존재를 낙태시키는 일이 나치의 유태인 학살과는 어떻게 다른 것인가?

고등학교의 양호실에서 임신한 여고생에게 먹는 낙태약을 제공하고 있다는 프랑스라는 나라의 사고방식이나 윤리관이 우리와는 차이가 많다는 사실도 이런 질문에 대한 혼란을 해소하는 데에 별 도움이 안되는 듯 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낙태가 별다른 죄의식 없이 흔하게 자행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낙태는 곧 살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또한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태아를 존엄한 인간과 동등한 인격체로 보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필자는 예전에 낙태문제의 심각성을 홍보하고자 천주교 단체에서 제작한 비디오 자료를 본 적이 있었다. 낙태를 하는 방법 중에서 썩션(진공 흡입)의 방법으로 낙태를 할 때, 태아의 두개골이 크기 때문에 사전에 가위와 비슷한 금속의 도구를 자궁으로 집어넣어서 태아의 두개골을 깨트려버리고 잘게 부수는 일을 먼저 하게 된다.

그런데 초음파로 촬영된 화면에서 그 금속도구를 이리저리 피해다니며,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는 태아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한 장면을 본 후의 임산부들은 이세상 그 어느 누구도 낙태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이번의 소식은 그러한 낙태의 윤리적 문제에다 하나 더 얹어서 장애인으로서의 생존권 문제를 던져 주기 때문에 더욱 우리를 혼란스럽게 한다.

우리가 지금까지 장애인도 동등한 인격체라고 주장했던 것은 한낱 스스로를 위로하는 빛좋은 말잔치에 불과한 것인가? 이러한 윤리관의 혼란 속에서 과연 나 자신의 아이가 장애인임을 출산 전에 알게 되었을 때, 낙태의 유혹을 끝끝내 뿌리칠 수 있을까?

필사적으로 이 세상 사람들로부터의 죽임을 피해 다니는 태아의 초음파 사진들이 아직도 눈앞에 어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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