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영 파문에 부쳐

씁쓸한 우리의 자화상

등록 2000.11.30 21:04수정 2000.11.30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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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오후 3시, ‘B양 비디오’사건이 불거진 후 종적을 감췄던 가수 백지영(24) 씨가 드디어 공식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백씨는 그간의 고통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 상당히 많이 초췌한 모습이었다. 그는 기자 회견 내내 울먹였지만 가수 활동을 여기서 끝낼 수는 없다는 단호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3인의 변호인단을 구성한 백씨 측은 우선 1. 비디오 촬영에 있어서 백씨의 의사가 개입되지 않았다 2. 즉각 법정 대응을 불사하겠다 등의 의사를 밝혔다. 그리고 백씨는 자신을 바라보며 꿈을 키워 갔던 많은 청소년 팬들에게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또 한 명의 O양이 탄생하려는 것일까. 아니다. 다시는 그런 전철을 밟지 않도록 사회적인 차원에서 우리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번 사건에 있어 가장 유감스러운 건 그런 비디오를 유포한 쪽이 아니며, 그런 사생활을 가졌다는 이유로 근거 없는 비난을 받아야 하는 백씨 쪽은 더더욱 아니다. 허울 좋은 진실을 알고 싶어하는 대중들이 오히려 가장 추악하다.

왜 백씨는 비난을 받아야 하는 것인가. 우리나라는 헌법에도 명시되어 있듯 자유로운 민주 국가이다. 그리고 또한 사생활의 침해를 받지 않을 권리도 국민이라면 당연히 가지고 있다. 은밀히 간직되어야 할 사생활이 폭로되었을 때 우리가 비난해야할 대상은 당사자의 허락도 받지 않고 그런 사생활을 내보인 쪽이지 결코 그것이 폭로됨으로써 상처를 받게 되는 쪽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씨에게 특례 입학을 허가했던 모 대학에서는 서둘러 백씨의 입학 허가를 취소했다고 한다. 체계적인 공부를 하고 싶어 준비를 나름대로 열심히 해 왔던 백씨에게는 또 한번의 상처가 될 거라는 건 자명한 사실이다.

그렇지만 대학에서 학문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과 이번 비디오 사건은 과연 어떤 상관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뚜렷한 관계가 있어 보이지 않는 내 눈이 잘못된 것일까.


잠시 화제를 돌려 지난 해 온 나라를 술렁이게 만들었던 소위 '옷 로비 사건'을 생각해 보자. 정말 기가 막혔던 건, 사랑하는 남편을 위해 로비를 하고 또 고위 관리층의 사모님이라는 허영심에 들뜬 여자들이 아니라 그 '진실'이라고 불리는 걸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이었다.

얼마든지 더 심각하고 중요한 문제들이, 더 깊이 거론되어야할 현안들이 이 한국에는 수없이 존재하고 있을 텐데, 온 나라의 관심이 그리로만 쏠려 있는 것도 우스웠지만 역시 최고의 코미디언들은 사람들이었다.


정작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들이 왜 그런 뉴스에 관심을 갖고, 또 '진실'을 밝혀내라고 아우성을 치는지. 도대체 그들이 알고 싶어하는 건 진정 무엇인지. 사람들은 진실을 알고 싶어한다. 하지만 왜일까. 그 진실을 알고 난 뒤에 달라지는 건 무엇일까. 그리고 무엇을 우리는 얻게 될까.

사람들은 진실을 밝혀냄으로써, 자신이 두려워하고 있던 대상의 실체를 깨닫게 되면서 그리고 그로 인해 일종의 우월감을 느끼고 싶어하는 건 아닐까. '거봐…뭐랬어. 별거 아니었잖아…' 그리고 이젠 진실이 밝혀졌으니 자신있게 스스럼없이 돌을 던질 수 있다고 믿고 싶은 게 아닐까.

어떤 마음으로 그런 비디오를 유포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분명한 건 이번 일로 백지영은 너무나 큰 일생일대의 상처를 받았다는 점이다. 이 시점에서 나는 감히 고한다. 제발 타인의 사생활을 들여다봄으로써 희열을 얻는 관음증같은 취미는 버리자고. 제발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는 얼마든지 죽을 수 있다는 걸 기억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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