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감사엔 호랑이, 법률제정에는 고양이
지난 달 28일 민주당 소속의원 49명의 명의로 '농어업인부채경감에 관한 특별조치법안'을 제출했다. 그러나 지난 7월 6일 한나라당 의원 27명의 명의로 이와 비슷한 '농어업인부채경감 및 경영안정에 관한 특별조치법안'이 제출됐던 것으로 밝혀졌다.
따라서 장기간에 걸친 여야대치와 국회공전만 없었다면 농어가부채 관련 법안은 이미 처리돼 농민들의 피해를 줄일 수 있었으며 지난 달 21일에 있었던 고속도로를 점거하는 대규모 시위를 미연에 막을 수 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여야가 제출한 농가부채관련 법률안은 이름도 흡사하거니와 세부내용에서도 크게 차이가 없는 것으로 분석됐다. 다만 한나라당은 7월에 제출하고 민주당은 11월에 제출한 차이만 있을 뿐이다.
국회사무처에 의하면, 11월 30일 현재 16대 국회에서 발의된 436건의 의안 중 83건이 처리됐다. 반면 지난 13대 국회는 945건, 14대는 902건, 15대 국회에서는 1951건이 처리됐다.
16대 국회가 출범한 지 6개월이 넘었으나 처리안이 83건에 지나지 않아 15대 국회의 6개월 평균 처리안인 244건에 비해 34%밖에 되지 않는다. 83건의 의안 중 9건의 법률안을 제외하고 실재 민생과 관련된 의안은 거의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현재까지 처리된 83건의 의안을 분류하면 예산안 1건, 법률안 9건, 동의안 19건, 승인안 15건, 건의안 1건, 결의안 24건, 규칙안 1건, 중요동의 11건, 기타 2건 등으로 나타났다.
19건의 동의안 중 '국군부대의 동티모르과도행정기구파견연장'을 위한 동의안을 제외한 나머지 18건은 김한길 의원 사직동의안과 이한동 국무총리 임명동의안을 비롯한 각종 임명동의안이다.
승인안 15건도 이번 국정감사실시에 앞서 처리된 국정감사대상기관 승인건 들이다. 1건의 건의안은 차흥봉 보건복지부장관 해임 건의안이다.
결의안 24건 중 'SOFA 전면 개정 촉구결의안', '남북이산가족 조속한 상봉을 위한 결의안', '남북정상회담개최 지지결의안'을 제외한 21건은 국회회기결정의 건 등 국회의사일정과 관련한 것이다.
또 규칙안 1건은 국회 상임위원회 정수에 관한 규칙안이다. 중요동의 11건도 2건의 특별위원회 구성건과 1건의 국회회기 결정의 건을 제외하고는 전부 휴회의 건이다. 기타 2건은 2명의 헌법재판소 재판관 선출안이다.
한편 지난달 30일 현재 국회에 접수된 각종 의안 가운데 법률안이 329건이나 그중 9건이 처리되고 320건은 미처리로 남아 법률안 처리율이 2.7%에 불과해 충격을 주고 있다.
의원들이 발의한 법률안은 152건 중 단 3건이 처리돼 1.9%의 처리율을 보였고, 정부가 제출한 법률안은 177건 중 6건만 처리돼 3.3%의 처리율을 보였다.
이미 처리된 법률안 9건 중 재정경제위원회가 5건, 보건복지위원회가 2건, 국회운영위원회가 1건, 환경노동위원회가 1건이 차지하고 있으며 총 16개 상임위원회 중 12개 상임위원회는 단 한 건의 법률안도 처리하지 못했다. 또한 그나마 제정된 법률안도 3,4개월씩 지연 처리되어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즉, '2000년도 제1회 추가경정예산안'의 경우 지난 6월 29일 제안되었으나 4개월 가까이 지연된 10월 13일에서야 처리되었다. 2조4000억에 이르는 추가경정예산의 지원항목은 저소득층의 생계지원을 위한 공공근로사업을 포함한 서민층 생계안정지원 확대, 구조조정으로 발생하는 실업대책, 구제역, 산불 등 현안지원, 지방재정과 교육재정 확충 등 서민생활에 시급한 것이었다.
또한 정부가 발의한 금융 및 기업구조조정을 위한 핵심법안이었던 '금융지주회사법안', '기업구조조정 투자회사에 관한 법률안', '외국환거래법법률안' 등 6건의 법률안은 지난 6월 30일 발의됐으나 3개월이 지연된 10월 9일에야 처리되어 경제난국을 극복하는 데 커다란 걸림돌로 작용했다.
기존 상시근로자 5인 이상의 사업장에만 적용됐던 최저임금법을 IMF 이후 더욱 열악해진 노동자들의 처지를 감안, 모든 사업장의 노동자들에게까지 확대해 실시하기로 한 '최저임금법개정법률안'도 6월 23일 제안되었으나 10월 9일에야 통과됐다.
또한 제정된 법률안 중 6월에 처리된 인사청문회법안, 7월에 처리된 약사법개정안을 제외한 6건이 모두 10월 9일 단 하루만에 처리됐다.
16대 국회상임위에서 처리된 9건의 법률안 중 한나라당이 제출한 '약사법개정법률안'은 철회되어서 실재 제정된 법률안은 8건에 불과했다. 제정된 8건의 법률안 중 6건은 정부가 발의한 법률안이고, 나머지 2건, 즉 인사청문회법안과 약사법개정법률안은 여야합의로 발의됐다.
그러나 지난 7월 31일 제정된 약사법개정법률안도 의사들의 파업을 불러일으켜 의정간 재개정이 논의되고 있다. 결국 지난 6월 19일 여야합의로 제정된 인사청문회법 이후 근 6개월 동안 여야를 막론하고 국회의원 발의의 법률안 제정을 성사시킨 국회의원은 273명 중 단 한 명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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