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방 권익위해 온몸 바친다"

<릴레이인터뷰30> 인터넷플라자협회 박대동 회장

등록 2000.12.04 11:13수정 2000.12.06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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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릴레이인터뷰코너입니다.

서른번 째 릴레이인터뷰의 주인공은 한국인터넷플라자협회 박대동 회장입니다. 그 동안 벤처기업인 중심으로 소개돼 온 릴레이인터뷰에 처음으로 단체장이 추천됐습니다.

추천한 그로벌한넷의 김정태 사장은 "국가 인터넷인프라에 대해 열정을 가지고 있는 분"이라고 소개했습니다.두 사람은 전국 PC방을 대상으로 사업을 하고있는 김 사장이 사업관계로 협회장을 만나면서 알게 됐다고 합니다.

인터넷플라자협회가 어떤 단체이고, 인터넷인프라에 대한 박 회장의 열정에 대해 소개하겠습니다.



박대동(43) 회장은 회원사 간에 '투사'로 통한다. 반듯한 외모와는 달리 정부를 대상으로 펼쳐온 장외투쟁과 높은 사람과의 면담에서 입바른 소리를 잘도 해 붙여진 별명이다.

강남 역삼동에 위치한 30여평 남짓한 협회 사무실은 한 눈에 살림살이가 넉넉치 않을 것임을 짐작할수 있다. 협회 회원사는 전국 6000여개 PC방업주. 상근 직원수는 4명에 불과하다.

박 회장은 명함이 필요해서 단체장을 맡은 것도,낙하산으로 자리를 꿰찬 케이스도 아니다. 다만 PC방사업을 하다 정부정책에 심하게 실망한 끝에 이를 해결하려고 협회일을 맡다 우연히 회장이 된 경우다.


박 회장의 첫 인상은 푸근한 아저씨 같은 느낌. 그는 협회가 어떤 일들을 해야 하고, 국내 인터넷 PC방이 어떻게 변모해야 하는 지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다.

◆ 잘 나가던 유통전문가


박 회장은 삼성 공채 26기(85년 입사)출신. 제일제당에서 10년간 근무하며 유통일만 했다. 그가 직장생활을 접은 것은 월급쟁이로서의 한계때문이었다.

94년 퇴사한 그가 택한 것은 유통이었다. 결코 젊지 않은 30대 후반에 그는 24시간 편의점을 열고, 유통시장의 한복판에 나섰다. 제일제당 시절 대전지점장을 지낸 인연으로 대전에 터를 잡았다.

2년6개월간 단 하루도 쉬지 않는 강행군 끝에 그는 얼추 돈을 만지게 됐다. "정말 힘들었습니다. 몸으로 때워야 하기 때문에 명절이고 뭐고, 하루도 쉴 수가 없었습니다"

자금력이 생기자 박 회장은 다른 쪽에 눈을 돌렸다. PC방을 비롯해 국내 최초 웹검색기인 코시크(Kor-seek)를 개발했던 충남대생과 벤처기업을 설립했다. 그는 98년 8월 IP시장이 뜨는 것으로 보고, 한국IP창업지원센터를 설립, IP인큐베이팅사업도 시작했다.

그는 편의점 외에도 무려 3개 사업을 동시에 펼칠 정도로 의욕이 넘쳤다. 사업확장은 IMF가 터지면서 엄청난 자금부담으로 돌아왔고, 결국 모두다 포기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박 회장은 네가지 사업중 PC방으로 인해 또다른 인생유전을 겪게된다.

◆ 운명의 PC방 비즈니스

그는 인터넷이 뜨는 것을 보고,97년 3월 대전에 PC방을 냈다.PC방은 그후 박 회장의 운명을 180도 뒤바꿔 놓게 된다.인터넷매직플라자의 체인점으로 문을 연 박 회장의 PC방은 당시 서울 여의도,신림동에 이어 전국 3호점.물론 대전지역 1호였다.

유성 충남대 앞에서 컴퓨터 12대로 시작했다. 하지만 고전의 연속이었다. 손님이 하루 1명도 없는 날이 부지기수였다. 10개월이 지나자 월매출 1천만원으로 안정을 찾았다.

요금은 지금보다 세배나 비싼 시간당 3000원이었지만 빈 자리가 없었다. "처음에는 워드프로세서, 오피스 등 사무적인 일 때문에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고, 외국인도 자주 찾아 e메일을 사용하더라구요. 정말 건전한 공간이었죠”

PC방을 하려는 사람들이 매일 서너명씩 다녀갈 정도로 박 회장의 PC방은 예비 PC방 사장들의 답사코스였다. 손님들이 가득 들어찬 모습을 보고, 하나둘 생겨 대전지역에는 지금 700여개 PC방이 운영중이다.

PC방이 우후죽순처럼 생기자 PC방업주들의 이해를 대변할 조직도 생겨났다. 99년 4월 정통부후원아래 한국인터넷플라자협회가 설립되자 주위 권유에 밀려 대전지부장을 맡게 됐다.

그해 6월 협회장에 취임했다. 가장 먼저 PC방을 했고, PC방업주들의 이익을 가장 잘 대변한다는 회원사들의 강력한 권유때문이었다.

◆ 투쟁의 세월

박 회장이 협회일을 맡을 당시에는 문화관광부의 ‘음반비디오 및 게임물에 관한법(이하 음비법)’문제로 전국의 PC방들이 난리를 치던 상황이었다.

법에 PC방이 대표적 유해업소인 게임장으로 분류돼 있었던 것. 이 경우 PC방 등록시 제재를 받는 것은 물론 청소년 출입을 금지시키고, 자정이후 영업을 못하는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다.

“법이 잘못돼 있었죠. 워드로 회사업무에 필요한 작업도 하고, 보고서, 리포트작성도 합니다. 물론 게임도 있죠. 많은 것중에 게임이 끼여 있다고 게임장으로 분류하는 것은 말도 안되죠”

그는 99년 6월부터 협회장을 떠맡은 후 서울과 대전을 오가는 더블플레이 생활을 10개월이상 해야했다. 주중에는 서울서, 주말에는 대전을 오가는 고달픈 생활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사업체가 하나둘 문제가 생기면서 박 회장은 심각한 고민에 휩싸인다. 협회일을 끝내고 토요일 대전으로 내려가면 암담했다. 벌여놓은 사업체중 되는 곳이 없었기 때문.

“정말 그 때는 협회일을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을 하루에도 몇 번씩 했습니다. 내가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가정도 있는 사람이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었습니다”

99년 9월, 그는 협회장일을 계속할 것인 지, 자신의 사업체로 돌아가 돈버는 일에 몰두할 것인지를 놓고 한달여를 고민했다. 하지만 그해 11월 음비법개정안 마감을 앞두고 있는 회원사들은 “2개월밖에 안남았는 데, 그만두면 음비법개정 문제가 좌초된다”며 강하게 매달렸다.

“고민 고민 끝에 결정했죠. 개인사업도 중요하지만 남자가 한번 칼을 뺏으면 대의(大義)를 위해 일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결국 그의 사업체는 모두 망가졌고, 박대동 개인에게 그 후 6개월은 인생에서 가장 쓰라린 불행한 시기가 됐다. 경제적으로 엄청난 어려움과 고통이 뒤따랐다.

99년 6월 협회장을 맡은 그는 그후 10개월 간 월급도 없이 무임으로 일했다.협회장 월급을 받기 시작한 건 올 3월부터.돈 한푼 받지 않고 그가 10개월간 벌인 일은 실로 엄청났다.

문화관광부 하위직 직원들과 회의는 늘 “이 새끼, 저 새끼”로 끝날 정도로 박 회장은 법개정 주무부처인 문광부에 정면으로 맞섰다. 99년 가을 어느날. 얘기 도중 다짜고짜 자리를 뜨는 민주당 정책위원의 무례함에 화가 나 한마디 던진 말은 몸싸움으로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세상 참 많이 좋아졌구먼,여기가 어딘 줄 알고 말 막하는 거야”라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박 회장은 전경들에 의해 국회밖으로 끌려나왔다.

99년 6월 회장에 취임하자 마자 법개정 관철을 위해 거리로 뛰쳐나온 그가 벌인 시위는 열두번. "그 때는 정말 치열하게 싸웠습니다. 온갖 욕과 몸싸움을 벌이고,전경에 의해 끌려다니기를 수없이 했죠”

박 회장은 자신의 인생이 거리에서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하는 모습으로 변해있을 지는 꿈도 꾸지 못했었다고 웃어 보인다. 결국 99월 11월 문광부 장관면담을 통해 PC방의 경우 게임방분류에서 등록예외로 하는 고시를 내겠다는 답변을 이끌어 냈다.

“힘든 시간이었지만 무엇보다 PC방에 대한 인식을 바꿔놓았다는 게 가장 큰 보람입니다”.

◆ 박대동의 PC방 애찬론

박 회장은 최근 경기침체로 PC방 수익이 갈수록 악화되고,이로인해 PC방이 점차 줄어드는 현실이 매우 안타깝다. 중요한 국가인프라인 정보고속도로가 점차 없어지는 점 때문이다.

"전국 2만5000여개 PC방은 전세계적으로 대한민국만 있는 엄청난 국가인프라죠. 이런 정보고속도로를 누가 깔았습니다. 민간(PC방)차원에서 만들었죠"

박 회장은 국가가 못한 초고속 정보고속도로를 민간이 깔아놓은 만큼, 이제는 정부가 나서서 국가인프라에 대해 제대로 평가하고, 가꿔야 한다고 강조한다.

박 회장은 더욱 톤을 높인다.“우리가 정보화부문에서 세계 10위권 국가라고 하는 데, 누구 덕입니까? 이런 국가인프라를 게임장으로 분류한다는 발상자체가 웃기는 일이죠”

그는 정부쪽에 화살을 돌렸다.“정부가 몇 년 전부터 몇 조원을 투입해 정보고속도로를 깐다고 해마다 반복했지만 공공부문에서 한 게 뭐가 있습니까?”

“최근 부처마다 중복적으로 정보인프라 구축에 나서고 있습니다. 교육부는 학교안에 PC방을 만들려 하고 있고, 건교부는 아파트 300세대이상에, 정통부는 우체국에, 국방부는 군부대안에 PC방과 비슷한 인프라를 만들겠다고 나서고 있습니다”

그는 정부가 뒷북치듯 지금와 정보화공간을 만든다고 야단법석을 떨지 말고,이미 깔려있는 국가 인프라인 PC방을 잘 활용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예를 들어 학교에 PC방을 만든다고 합시다. PC는 1년만 지나면 50% 이상 감가상각이 됩니다. 컴퓨터사양도 1년만 지나면 구닥다리가 되죠. 부품교체 등 관리도 만만찮습니다. PC방을 활용하면 이런 문제를 고스란히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는 학교의 정보화교육도 학교주변의 PC방을 적극 활용하면, 저비용으로 엄청난 효과를 거둘 수있다고 강조한다.

"컴퓨터 특활을 PC방에서 하면 안되는 이유가 뭡니까? 유해장소요?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PC방이 등장하면서 청소년들이 게임에 몰두하는 폐단도 있지만, 이 때문에 청소년범죄가 급격히 줄었든 것으로 집계되고 있습니다"

PC방에 대한 박 회장의 애찬은 끝없이 이어진다. ”IMF때는 PC방이 용산전자상가를 살렸죠. PC방은 실제 8조원의 시장을 창출한 만큼 관련산업계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박 회장은 산업적 측면에서도 PC방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우리나라는 PC방덕분에 온라인게임분야에 있어 유일하게 일본을 앞서고 있습니다.미국에 이어 세계 2위죠. 조만간 미국을 제치고 1위로 떠오를 것입니다”

그는 PC방은 전세계에서 우리나라가 최초로 만든 고유업종이라고 몇 번이고 강조했다.“ PC방을 전세계 시장에 수출할 수 있는 통합브랜드를 만들어야 합니다. 설립방안과 운영기술 등 PC방사업 노하우를 체계화해 세계시장에 수출해야 합니다”

그는 온라인게임업체들이 PC방을 단순히 수익원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같이 윈윈하는 파트너로 인식해야할 것이라고 주문한다.

◆ 박대동의 결단

7월 13일. 박 회장은 예정에 없던 기자회견을 갖고 PC방산업의 양대 협회인 정통부산하 한국인테넷플라자협회와 문광부산하의 한국인터넷멀티문화협회를 통합한다고 발표했다.

그는 음비법개정문제가 해결됨에 따라 연초부터 협회통합작업을 추진해왔다. "협회가 어차피 회원사인 PC방의 입장을 대변하는 조직인 데, 서로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거리고 싸웠죠. 이래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무조건 합치자고 제안했죠"

박 회장은 양 협회장이 불출마를 선언하고, 다른 사람에게 통합협회를 맡기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사심없이 일하자고 제안, 두 협회가 전격적으로 통합에 이른 것.

박회장은 통합작업이 마무리되는 내년초쯤 자연인으로 돌아갈 생각이다. "현안이 해결된만큼 제 길을 갈 때라고 생각합니다.이제는 제 일을 해야죠”

그는 PC방업계의 어려움과 관련해 협회가 새로운 수익모델을 발굴해 제시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부는 초고속 정보고속도로를 계속해 관리해야 하고, PC방 업주는 이를통해 실핏줄 같은 인프라를 더 많이 구축하는 구도가 돼야 합니다"

박대동 회장. PC방 회원사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자신의 사업을 포기하며 1년간 거리를 뛰어다녔던 그는 우리나라 초고속정보고속도로 구축의 산증인이었다.

곧 자연인으로 돌아갈 그가 어떤 모습으로 IT업계에 모습을 드러낼 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덧붙이는 글 | inews24 제공

덧붙이는 글 inews24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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