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습작일 뿐이다"

'언론 문건' 작성자 이정현 부국장 인터뷰

등록 2000.12.13 16:44수정 2000.12.14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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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공개된 '이회창 총재에 대한 적대적 언론인 비리자료 수집' 등을 골자로 한 '한나라당 대권문건'의 작성자는 한나라당 기획위원회 이정현 부국장으로 밝혀졌다.

현재 '이 총재 대선 기본전략'에 대한 의혹이 증폭되고 있는 가운데, 이정현 부국장은 13일 오전 맹형규 기획위원장에게 구두로 사의를 표명하고, 당사에도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정현 부국장은 평소 일일 언론보도나 정치권 주요 이슈에 대해서는 이 총재에게 직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이 부국장은 한나라당 기획위원회 산하 전략기획팀장도 겸임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당의 한 관계자는 "이 부국장 평소에도 일 욕심이 많은 사람으로 당내에서 가장 부지런한 사람으로 정평이 나있다"며 "이번 문건도 그 사람의 일 욕심이 낸 것이 아니겠느냐"고 당혹스러워 했다.

한편 이 총재는 이 문건 내용이 파장을 일으키자 13일 오전 총재단 회의를 통해 "우리는 언론이 담당하고 있는 사회정의 실현을 위한 역할과 기능에 신념을 갖고 있으며, 자유롭고 공정한 언론이 침해돼선 안된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며 사태의 확산을 막으려 했다.

하지만 민주당 박병석 대변인은 성명을 내고 "한나라당 문건은 말로는 상생의 정치를 외치는 이 총재와 한나라당이 민생은 안중에도 없고 대권에 집착해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면서 "이 총재와 한나라당은 국민에 공식 사과할 것과 한나라당내 공작정치 파트를 해체할 것"을 촉구했다.

또한 박 대변인은 "이 총재는 오늘 '대권 시나리오'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으나 이는 진솔한 반성이 아니다"며 "국민과 언론을 공작대상으로 삼은 데 대해 국민에게 공식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한나라당 기획위원회 이정현 부국장과의 일문일답이다.

- 문건 작성 경위는?


"이쪽으로 발령받은 것은 지난 7월말이었다. 그 뒤 하루도 안빼고 언론 등을 요약해서 핵심 당직자들에게 보고해왔다. 8월 팀이 구성돼서 훈련을 많이 해왔다. 직원들을 밖으로 풀어서 여론을 듣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나온 것이다."

- 이 문건 작성을 지시한 사람은 없는가.

"내가 직접 했다. 초안을 직접 내가 만들고, 직원들에게 훈련시킬 목적으로 다듬어보라고 했다. 나는 글을 길게 쓴다. 보고서는 짧게 쓰는게 생명이기 때문에 밑에 사람들에게 이를 훈련시키기 위해 보여준 것이다. 하지만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

- 그렇다면 초안에는 문건에 나타난 언론대책 부분은 없었는가.

"물론 언론 대책 부분도 있었다. 그런데 글을 다듬는 과정에서 내 본래 취지와는 달리 기록됐다."

- 초안에서 언론대책부분은 어떻게 표기됐나.

"(신문)칼럼을 쓰는 외부 필진을 보면 어떤 사람은 과거부터 (우리 당에)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은 항상 매를 많이 때린다. 우리의 진실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생기는 오해도 많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이들을 리스트업하고, 이들을 직접 만나서 우리 생각을 이해시킬 수 있도록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해왔다. 그래서 그런 내용으로 보고서를 써본 것이다. 하지만 이건 습작이었다."

- '적대적 집필진 관리'라는 항목은 초안에 없었나.

"없었다. 언론사 집필진 성향을 파악해서 그들을 만나 객관적인 시각으로 볼 수 있도록 설득시키기 위한 내용이었다.

- 이 문건은 '향후 업무추진계획'이라는 제목이 달려있는 데 내용은 차치하고 이런 문건을 보고해서 올리라는 윗선의 지시는 없었나.

"절대 그런 일은 없다. 나 혼자 아이디어를 내본 것일뿐이다."

- 이 문건 좌측 상단에는 <별첨>이라는 표시가 돼있는 데, 이것은 본 문건에 대한 별첨 자료인 증거 아닌가. 습작이라면 굳이 이런 표시를 할 필요가 없지 않는가.

"…단지 훈련하는 상황이었다. 또 그쪽으로 인사이동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보고서를 올릴 여건도 아니었다."

- 어떻게 유출된 것으로 보는가.

"잘 모르겠다. 밑에 사람에게 다듬으라고 해놓고 받은 기억이 있는데 책상에 던져놓고 검토조차 않했다. 나도 이 문건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신문보도를 보고 알았다."

- 지금 심정은?

"너무 부끄럽고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것에 대해 일절 변명하지 않겠다. 어른들께 공연히 누를 끼친 것같아서 사표를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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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같은 남자. 산소같은 미소가 아름답다. 공희정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기자단 단장을 맡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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