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시민의 사회

등록 2001.01.01 00:00수정 2001.01.02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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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했던 새 천년의 개막을 뒤로하고 어느덧 우리는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한국도 단기 4334년, 해방된지 반백년하고도 5년이나 지난 셈이다. 파란만장한 근현대사의 질곡을 헤쳐와야 했던 우리이기에 감회가 더욱 새롭지 않을 수 없다.

'민주공화국'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달려온 것도 50여년, 과연 우리는 얼마나 자유와 민주, 평등과 같은 소중한 가치들을 지켜내 왔던가? 민주주의를 경험해보지 못했던 나라에서 '한국적 근대화'라는 독특한 실험을 강행하면서까지 우리는 진정 내면적인 발전을 이루어내었는가?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의 상황은 민중들이 주체적인 자유와 권리를 향유하는 다원적인 자유주의 사회이기보다 소수의 권력자들만이 기득권을 바탕으로 무소불위의 절대권력을 휘두르는 귀족공화국에 가까운 듯하다.

그 이유로는 정책과정이 다양한 의견들의 공존에 기초한 설득과 토론으로 이루어지기보다 정부나 힘있는 집단들의 영향력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점.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급진적인 발전양상을 보이고 있는 시민단체의 활동 또한 낮은 시민의 참여율과 척박한 인프라 환경 때문에 국민들의 이익을 제대로 대변하기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는 점.

힘을 가진 권력가들이 '노블리스 오블리지'나 견제와 균형을 통한 조화로운 발전을 이루어 내는 덕목을 보이기는 커녕, 서로 권력의 남용을 묵인하고 부정부패를 통하여 자기 잇속 챙기기에만 급급하여 공익은 황폐화시키고 있는 점.

사회 제반분야에서 기득권 세력들이 자신들의 이익에 부합하는 것들을 확대·강화해가고, 이에 반대되는 다양한 참여세력들을 짓누르고 그들의 진출을 억압하는 점등이 있다. 이러한 것들은 소수 권력자들에 의해 민주주의가 짓밟히고 있다는 우려가 단순한 가정이 아니
라 현실로 존재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그렇다면 국민들의 자유와 권리를 이렇게 유린하는 지배권력들이 마음껏 활보하도록 국민들이 잠자코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핵심적인 요인으로 시민의 목소리를 반영해야 할 언론이 그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고 있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본래, 간접민주주의 사회에서 언론은 다양하고 풍부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건강한 여론을 형성하는 사회적 공기로서 공공적 기능을 담당한다. 하지만, 민주주의에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지님에서 비롯되는 막대한 영향력을 악용한 하이에나 언론들의 난장으로 일그러져 있는 것이 오늘날 우리의 언론현실이다.

그들은 국민의 눈과 귀와 입임을 자임하면서도, 실제로는 언론사주의 사기업으로서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맞게 왜곡과 확대·축소보도로 일관하는 의도적 무결정으로 여론을 지배·조종하고 있다. 다양한 의견의 상호비판으로 형성되는 공론에 기반한 일반의지가 아니라, 사회구성원이 깨어 있지 못한 상황에서 지배적인 언론의 힘에 의해 조작된 중론이 여론화하는 여론독과점의 위험성이 우려를 넘어 실제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국민들이 적극적이지 못한 연유는 우리의 역사적인 배경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상명하달의 권위주의적 유교문화, 일제시대의 물적·인적자원의 수탈에 이은 정신의 오염으로 인한 자생력 상실, 식민지 지배와 근대문물을 동시에 경험하게 된 사회 속에서 맹목적인 지향점으로서의 근대화·산업화, 나라를 되찾은 후에도 친일파를 처단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이 득세하여 지배세력 곳곳에 자리잡고 있는 실정, 군사개발독재 시대의 억압적이고 반민주적·비인간적인 사회문화, 해방 후 처음으로 겪게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동시수용 과정에서의 문화지체 현상으로 형성된 천민자본주의적 기질의 내면화 등과 같은 사회문화적 배경이 그것이다.

우리 국민들이 민주주의적 자질과 정 반대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기주의, 타자를 자신의 의지 밑에 굴복시키는 권력지상주의, 타자에 대한 무관심과 경멸이 내재된 경쟁의 논리들을 무비판적으로 내면화하게 된 것도 이러한 문화들에 힘입은 바 크다.

이러한 상황이니 체계적으로 길들여져 온 우리네 국민들이 '힘없는 국민'으로 전락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하겠다. 여기에 우리의 미래의 가능성을 여는 교육에서마저 수동적인 국민들을 확대재생산하고 있다. 학생들은 상호존중과 신뢰에 기초한 자유와 관용의 분위기에서가 아니라 서열화된 대학 중 좀더 높은 곳에 들어서기 위한 줄서기 마라톤을 십여년이나 아무생각없이 달리다보니 상호배타적, 경쟁적 생존의 원리를 체화하게 된다.

특히 사물의 본질을 꿰뚫고 가치판단의 지혜를 키우는 교육이 아닌, 천편일률적인 지식과 정보의 일방적인 전달로 강제되고 있는 형태로 진행되는 교육현실은 자율적이고 창조적인 인재의 가능성을 압살하고, 체제에 순종적인 박제된 로봇들만 양산하고 있다. 이렇게 근본적인 문제의식이 고갈된 우리네 교육체제까지 더하여 소수의 권력자들과 경비견, 그들에 종속된 무관심한 신민들의 바스티유 체제가 완결을 짓고 있는 셈이다.

아, 우리는 이렇게 지배구조의 족쇄에 묶인 채로 피동적인 국민으로 길들여질 수밖에 없는 운명인 것일까? 아니! 절대로 아니리라. 그것들은 우리를 둘러싼 외적 여건일 뿐 얼마든지 우리들 마음먹기에 따라 새로이 설계할 수 있고, 개척해 갈 수 있는 조건에 불과하니까. 우리들 스스로가 우리의 권리와 자유를 인식하고 그 지평을 넓혀나가는 속에 즐기면서 새로이 만들어 갈 수 있는 세상이니까 말이다.

벌써 포기하고 매인 채로 살기에는 여기 날개짓하는 우리의 자유와 권리, 그리고 무엇보다도 풀뿌리 민중들의 존엄성이 너무도 푸릇푸릇하게 살아 숨쉬고 있지 아니한가?

덧붙이는 글 | 이글은 월간 자유공론 2001년 1월호 <젊음의 광장> 에도 실려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글은 월간 자유공론 2001년 1월호 <젊음의 광장> 에도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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