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00.01.31 00:00수정 2001.02.19 19:44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작은방에서 담배 한 대를 피운 뒤 거실로 나오니 둘째 바다는 아직까지도 밥을 먹고 있다. 빨라야 30분, 길면 1시간까지도 걸리는 게 아이들 식사인지라 그냥 그러려니 생각을 하고 있는데, 큰딸 하늘이가 뽀르르 달려와서는 “아빠, 이야(이하늘) 밥 다 먹었어요” 하고 자랑을 한다.
아이들 밥 먹이는 일이란 게 워낙 만만치 않은 터라 밥을 다 먹으면 의례히 “우리 하늘이(바다) 밥 다 먹었어? 아이 예뻐라” 어쩌고 하며 칭찬을 해주곤 했더니, 이젠 아예 습관이 돼서 칭찬을 해달라고 쫓아온 것이다.
큰딸 하늘이가 이렇게 밥을 다 먹었다며 내게 자랑을 늘어놓으며 칭찬을 해달라고 매달리는 찰나, 둘째 바다에게 밥을 먹이기 위해 씨름하고 있던 집사람이 “밥을 다 먹긴 뭘 다 먹어? 하늘이가 하도 밥을 안먹어서 엄마가 대신 먹어 버렸구만…” 하고 퉁을 놓는다. 대충 어떻게 된 상황인지 안 봐도 짐작이 간다.
예기치 못한 집사람의 방해공작(?)으로 인해 칭찬을 받을 수 없게 된 큰딸 하늘이는 멋적은 표정으로 내 무릎에 와 안긴다. 그 사이 둘째 바다의 식사가 마침내 끝이 나고, 집사람이 “우리 바다 밥 다 먹었어요” 하고 내게 칭찬을 해주라는 사인을 보내온다. 큰딸 하늘이에게 앞으로 분발하라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둘째 바다가 “아빠, 바다 밥 다 먹었어요~오” 하며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내게 달려와 안기는 것과 동시에 나는 “우리 바다 밥 다 먹었어? 아이 예뻐라” 어쩌고 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말뿐만이 아니라 아이를 덥석 안아주고 엉덩이를 토닥거리며 가능한 칭찬의 뜻을 극대화한다.
그런데 그로부터 잠시후, 둘째 바다가 엄마 아빠로부터 칭찬받는 모습을 옆에서 시기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던 큰딸 하늘이가 득의양양한 목소리로 “아빠, 바다 콩콩 뛰었어요” 하고 내게 냉큼 일러 바친다. 침실겸 놀이방으로 가면서 둘째 바다가 캥거루 뛰듯 콩콩 뛰어갔는데, 그걸 보고서는 냉큼 일러 바친 것이다. 잘못을 했으니 혼내 주라는 뜻이다.
앞서 살던 집에서 아이들이 쿵쾅거리며 뛰어다니는 통에 한번 아래층 할아버지에게 된통 싫은 소리를 들은 뒤론 집사람이나 나나 아이들이 집안에서 뛰어다니는 일에 대해 노이로제에 가까운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있는 터라, 집안에서 뛰어다니거나 하면 엄히 꾸짖곤 했더니 큰딸 하늘이가 이를 이용해 방금전 둘째 바다만 칭찬받은 일에 대한 앙갚음을 하려 든 모양이다.
요즘 들어 이렇게 아이들은 엄마 아빠로부터 칭찬받고 사랑받기 위해 부쩍 서로 경쟁을 벌이곤 한다. 앞서 쌍둥이를 키워본 적이 있는 한 선배가 쌍둥이 특유의 이 남다른 경쟁심리를 이용(?)해 은근히 경쟁을 붙여 제법 재미를 봤다고 하더니, 과연 쌍둥이라서 그런지 어떤지는 몰라도 우리 아이들도 아직 어린 녀석들이 벌써부터 서로에 대한 라이벌 의식이 보통이 아니다.
그나마 상대 녀석보다 밥을 더 열심히 먹는다든가, 반찬통을 나르는 따위 엄마 일손 돕기(?)에 경쟁적으로 앞서 나서는 등 선의의 경쟁은 환영해 마지 않을 일이지만, 앞서의 경우처럼 상대 녀석의 잘못을 일러 바침으로써 반사 이익을 취하려 드는 태도는 한편으론 기가 차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론 좀 걱정스럽기도 하다.
386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좀 지독한 경쟁사회를 살아온 까닭에 나는 사실 경쟁이라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특히나 가까운 사람들이 경쟁 때문에 서로 틈이 벌어진다던가 하는 일에 대해선 매우 못마땅해 하고 있는 편인데,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나는 우리 아이들이 서로 지나치게 라이벌 의식을 갖는다거나 경쟁하는 것만큼은 극구 만류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설령 경쟁이라는 것이 서로를 채찍질해 잠재능력을 극대화시킨다던가 하는 따위 능력 개발 등에 지대한 공헌을 한다 할지라도, 나는 우리 아이들이 서로를 경쟁 상대로 삼아 좀 더 높이 도약하기보다는 따뜻한 형제애로 어깨를 부여안고 사이좋게 나란히 세상을 살아가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직은 설명을 해줘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할 것이기에 잠시 방관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긴 하지만, 아이들이 좀더 자라나면 그 때는 그런 나의 생각에 대해 아이들과 진지하게 얘기를 나누고,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서로 경쟁하기보다는 서로 사랑하며 이 세상을 살아가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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