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 새로운 미디어의 출현

김광일 기자의 글을 읽으며 떠 올린 몇가지 생각들

등록 2000.12.31 14:59수정 2000.12.31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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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2월29일치 문화면에 실린 김광일 기자의 글 성역없는 비판'에 숨겨진 선동의 그림자은 이른바 안티현상을 문화현상으로 국한시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다소 아쉽긴 하다.

하지만 기자의 차분한 어조, 다각적인 고찰, 상식적인 문제 접근은 읽는 이로 하여금 안티현상에 대해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지를 충분히 주었다는 점만으로도 의미 있는 글이라고 생각된다.

이 글은 김광일 기자의 글을 읽으면서 떠올렸던 필자의 문제의식을 몇가지로 정리해 본 글이다. 기본적으로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김광일 기자의 글을 반박하는데 일차적인 목적이 있지 않음을 미리 밝혀 둔다.

하나, 안티와 안티사이트

김광일 기자는 안티사이트의 성행에 대해 "때로 어떤 안티사이트들은 하위문화의 범주에조차 넣을 수 없을 정도로 조악한 제작과 운영을 보이고 있다"는 문학평론가 최성실씨의 주장을 예로 들면서, "그러한 무분별한 난립은 '안티문화'의 정당성에 의문을 갖도록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다분히 성급한 단정이라는 생각이다. 안티사이트 전체를 도매금으로 넘겨 그 정당성에 의문부호를 찍어 일반화시키기에는 그에 타당한 논거가 전혀 제시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얘기다. 더욱이 안티사이트들은 김광일 기자의 말대로 전방위적이다. 편의상 안티라는 개념으로 한데 묶이고 있을 뿐, 실상 그들은 너무도 다르다는 얘기다.

다른 방식으로, 시장에 나오는 상품을 예로 들어보자. A,B,C라는 자동차가 생산되고 있다고 치자. 그런데 그 중 A라는 자동차가 품질이 조악하며, 회사 자체도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그때,그것을 이유로 자동차라는 상품 자체의 생산에 정당성의 문제가 제기될 수 있는가.

답이 부정으로 나올 수 밖에 없는 것은 자동차라는 상품 자체에 대한 필요성이 사회적으로 이미 인정되고 있음을 뜻한다. 그와 마찬가지다.

김광일 기자도 지적했지만, 안티는 필요에 따라 생겼다 효력 상실과 더불어 자발적으로 사라지는 현상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다른 옷을 입고 있을 뿐 새롭게 등장한 어떤 것이 아니다.

굳이 변증법을 이야기할 필요도 없이, 안티는 역사 이래 면면히 내려 온 인간의 한 특징이기 때문이다. 정당, 시민운동, 매스미디어. 그들과 안티를 따로 떼어 놓을 수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안티현상은 문화현상이기도 하지만, 사회현상이며 정치현상이라는 얘기다.

그런 점에서, 앞서 언급했던 대로 김광일 기자가 안티현상을 특정 현상으로 국한시켜-경쟁자에 대한 일종의 평가절하를 위함일까?
보고 있는 데서, 이런 문제가 나타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김광일 기자의 인식대로 안티를 특정 현상으로 국한시켜 본다손 치더라도, 위에서 말한 일반화의 오류 문제는 역시 남는다.

둘. 폭력성과 증오

김광일 기자는 글에서 '안티 조선'을 이야기하고는 이어, "한편에선 일부 안티즌들이 다수 온건파에게 피아 선택을 강요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하위 문화의 전도된 '폭력성', 혹은 근년 들어 세계적 확산을 보인 '증오' 문화의 '한국적 버전'이라는 비판도 있었다"고 주장했다.

또 안티문화를 다룬 문학평론가 김미현씨의 글 일부를 예로 들며 "죽이기와 흠집내기에 익숙해져 있는 그들에게는 '옳고 그름' 보다 '좋고 싫음'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고도 해석했다.

과히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폭력성이나 증오의 문제가 안티문화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점에서 이 글의 시야는 극히 좁다고 판단할 수 있다. 피아 선택을 강요하는 모습이라든가, '옳고 그름'보다 '좋고 싫음'을 중요시하는 것은 필자가 보기에 군부독재 시기를 거쳐오면서 우리 국민에게 상당 부분 체질화되어 온 역사적 측면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모습은 최근의 사회 이슈, 주류 일간지들의 논조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들이다.

필자는 지금, 그것이 옳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문제를 오로지 안티의 문제인양, 새롭게 등장한 문제인양 책임을 전가하고 있는 너무도 '쉬운' 판단이 아쉽다는 얘기다.

셋. 다양성 그리고 문학평론가 정준영

김광일 기자는 안티의 순기능을 들며 안티는 다양성을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문화를 더이상 정치나 사회 문제와 따로 떼어 놓고 볼 수 없게 된 현실에 대한 인정의 말이 아닌가 싶다. 결국 안티현상을 굳이 문화적 현상으로 국한시켜 다루고 있는 글의 난맥상을 스스로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글 말미를 보면 이런 인용문이 있다. "그들은 모두 지배문화에 포섭되기를 열망했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실패한 존재들이며, 대중화 능력도 결핍하고 있"다는 문학평론가 정준영씨의 주장이다. 이는 하위 문화인 안티의 독자 전선이 성공을 거두기 힘들다는 전망의 이유이기도 하다.

필자는 정준영씨 주장의 전모를 알지 못하므로, 그에 대해 왈가왈부할 입장이 아니다. 하지만, 그의 주장을 인용한 김광일 기자의 의도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히 있다. 여기에서도 역시 일반화의 오류를 찾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김광일 기자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셈이다.

마무리

안티사이트로 대표되는 안티현상은 분명히 새로운 어떤 것이 아니다. 또다른 유형의, 뉴미디어의 출현으로 볼 필요가 있다. 안티는 기존의 미디어와 치열한 경쟁을 벌이며, 적자생존의 단계를 거치며 구체적인 모습으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 어떤 것도 결정된 것이 없는 이른바 빅뱅의 단계다.

따라서 여러가지 문제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건설적인 비판은 필요하되 섣부른 단정과 타당성 없는 문제제기는 금물이라고 본다. 그래서는 공정한 게임이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시간을 갖고 안티현상을 좀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김광일 기자가 인용한 문학평론가 김미현씨의 말대로 거기에서는 '현대판 소돔과 고모라'라 보이기도 하지만 '사이버 아크로폴리스'가 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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