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오늘 아버지가 됐습니다"

등록 2000.12.31 15:10수정 2000.12.31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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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12월 22일 오전 10시 43분에 저는 아버지가 되었습니다.저희 아이가 4.1kg이라 자연분만이 힘들어 제왕절개수술을 했습니다.수술하는 동안 저는 초조한 마음을 달래려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러기를 한참 한 아이의 힘찬 울음소리가 들려오더군요.

그때 전 아이와 이 세상에서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지만 왠지 처음 본 사람이란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아주 오랫동안 잘 알아온 사람 같은 느낌. 이런 것이 혈육의 정인가 봅니다.

아이를 보면서 아이를 기다릴 때 읽었던 책제목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똑같은 것은 싫다" 프랑스인들의 생활, 사고방식을 소개한 책인데 아이를 본 순간 우리 아이가 커서 체면보다는 양심을 중요시하고 남의 것에 대한 관용을 무엇보다 중요시하는 프랑스인들의 미덕을 가지고 살았으면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덩치가 커서인지(?) 녀석은 조금도 갓 태어난 아이에게서 느껴지는 느낌이 들지 않아 좋더군요. 얼굴도 깨끗하고 특히 터질 것 같은 통통한 볼을 가진 녀석이 얼마나 이쁘던지요.

그래서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예뻐 보인다는 말이 나왔나 봅니다.
그런데 그런 이쁜아이를 보는 것은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되더군요.

수술이 끝나고 병실로 돌아오는 아내는 오들오들 떨면서 신음소리를 내더군요. 참 안타까웠습니다. 이 땅의 수많은 어머니들은 그런 고통을 겪고 난 뒤에야 어머니가 되는 것입니다. 아내는 제왕절개를 수술을 한 터라 한 일주일 가량 병원에 입원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수시로 아니면 한밤중에도 들려오는 산모들의 비명소리에 잠을 깨거나 놀라곤 했습니다.

어느 날 밤 한 산모의 고통스러워하는 비명소리가 마치 저희들의 뼛속에 파고드는 것 같더군요. 전 사실 그런 비명소리를 처음 들어보았는데 속으로 여자들 참 존경스럽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아내가 간밤에 그 비명소리를 들었냐고 묻더군요. 사실 저도 그런 생각을 했거든요. 그 산모는 얼마나 아팠을까요?

한 이틀 후 우리 아기가 드디어 저희 병실에서 같이 지내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딸아이를 보는 즐거움, 그 어디에다 비교할까요?

이 땅의 모든 아이들은 모두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과정을 거쳐서 태어나고 모두 다 그 부모에겐 이 세상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존재인데 전쟁이나 인간의 어리석음으로 그 얼마나 허무하게 사라지나요?

얼마전 오마이뉴스의 윤락가에서 일하다 화재로 숨진 여인들의 일기에 관한 기사를 읽었습니다. 그 여인들도 저의 아기처럼 소중한 아기였을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을 한 순간이라도 쉽게 생각해서도 안 되고 함부로 대해서도 안 된다는 것을 처음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부끄럽지만.

바보가 배울 수 있는 유일한 학교는 경험뿐이라는데 전 제 아이를 가지고서야 사람의 소중함을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소중한 아이는 지금 저와 함께 있지 못합니다. 황달에다 열이 있어 태어난 지 며칠 되지 않은 귀여운 딸아이는 불쌍하게도 병원에 있습니다.

전 지금 막 병원에 있는 딸아이를 보는 것이 가슴 아프다는 아내를 혼자 두고 저 혼자 딸아이를 면회하고 돌아왔습니다. 처음 입원할 때는 그 어린 것에 칼을 대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고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수술도 하지 않았고 아내가 걱정한 것처럼 링겔같은 것도 달고 있지 않더군요. 다행히 열도 거의 없어지고 황달도 거의 다 나았다고 해서 기뻤습니다. 갓 태어나 병원에서 혼자 지내야하는 제 아기는 저를 보자마자 해맑은 웃음을 지어 보였습니다.

마치 "아버지 저 괜찮으니까 걱정 마세요" 하고 말하는 것처럼. 빨리 우리 아기가 퇴원했으면 좋겠습니다. 한밤중에 녀석의 울음소리에 깨고도 쉽고 그 터질 것 같은 볼을 부며 주고도 싶습니다. 이 땅의 모든 어머니들에게 참 고생하셨습니다라는 인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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