춥고 배고픈 것보다 더 힘든 것들

새해 첫날부터 '야만인'? - 단식농성 참여기

등록 2000.12.31 18:13수정 2001.01.15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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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말엔 뭐하고 있었더라?

오늘 기자가 물었다.
"이렇게 연말연시에 농성하고 있으면 무슨 생각 드세요? 가족생각 나세요?"

농성 4일 째. 이제 굶는 건 제법 이력이 날만도 하다. 오전 10시쯤이면 농성장을 마주보고 있는 중국요리 집에서 퍼져오는 짜장 볶는 냄새가 신경을 괴롭히고 화장실을 다녀올 때마다 풀려가는 다리 때문에 당황해 하긴 하지만 말이다.

이 글을 쓰는 나는 명동성당 들머리 농성단의 막내로 '국가보안법 폐지와 국가인권위원회법 제정'을 위한 인권활동가들의 단식농성에 참여하고 있지만 그리 특별한 사람은 아니다.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가진, 대학입학을 앞둔 늦깍이 수험생이고 국제민주연대라는 인권단체의 자원활동가일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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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성당 지지 방문기 / 김형수 기자

지금 옆에서는 잠시 충전된 핸드폰 밧데리를 가지러 다녀오셨던 다산인권센터의 송원찬 씨가 주저앉아 3살바기 딸과 통화를 하고 있다. 아이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던 송원찬 씨는 아이에게 "노래 불러주세요∼"라고 말하고는 아이의 노래를 들으며 매우 흡족해 하고 있다.

농성장에서 보낸 시간이 어느 새 80시간이 되어 간다. 자는 시간을 빼고 나머지의 시간을 우린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 농성장의 평범한 하루가 궁금하실 분은 없을까?

우린 침낭을 털며 하루를 시작한다

▲단식농성에 참여하고 있는 인권활동가들 ⓒ 김진만
농성단이 큰 관심을 갖는 것은 일기예보. 항상 3일치의 일기예보를 외우고 다닌다. 그럴 수밖에. 길바닥에서 자고 있으니. 누군가의 말처럼 언듯 보면 노숙자들의 집단행동처럼 보일 정도로 우리의 모습은 노숙자들과 닮았다.

2000년 12월 28일, 성당측의 집회·농성 불허 입장과 삼엄한 경찰 경비로 최소한의 농성물품도 반입하지 못한 채 바닥에 신문지 하나씩 깔고 인권활동가들의 연합 단식 농성은 시작되었다. 이후에도 성당과의 마찰 우려는 계속 되었고 농성천막을 설치하지 못한 채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농성은 계속되고 있다. 인권활동가 연합단식농성은 이렇게 "인권활동가 연합 노상 단식농성"이 되어 버렸다.

기온이 영하 10도에서 0도를 오가다 보니 아침에 일어날 때 쯤이면 모든 침낭과 비닐덮개 모포가 얼어붙어 있다.

삐그덕 거리며 일어나 첫 일과는 명동성당의 수위아저씨들과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며 침낭들을 말리기 위해 벽에 너는 일. 미관상 좋지 않다는 이유로 수위아저씨들이 달려오기 일쑤지만 농성단은 별 대꾸없이, 그저 아주 미안한 표정만을 지으며 침낭을 턴다. 우리도 살아야 하니까.

지금 막 PC방을 빠져나가 농성장에 다녀왔다. 전북에서 오신 활동가 동지가 탈진으로 쓰러져 구급차로 실려나갔다는 우울한 소식이다. 고생하셨습니다 문형...

농성을 하며 가장 싫을 때

짜장 볶는 냄새, 제대로 씻지 못하는 찜찜함, 기상할 때면 목덜미 안으로 떨어지는 얼음조각, 대낮에 불어오는 칼바람, 익숙해지지 않는 배고픔...

▲농성에 참가하고 있는 필자 ⓒ 김진만
아니, 이런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내가 특별한 사람이라서? 단식에 일가견이 있어서? No..! 이미 충분히 예상하고 각오한 일이기 때문에. 이런 결심 앞에서 쉬이 이런 문제는 해결되어 버린다. 하지만 예상하고 각오해도 버티기 어려운 고통이 있다.

바로 내가 야만인이 될 때. 성당을 오가는 적지 않은 분들이 우리의 농성에 지지의 뜻을 보낸다. 그러나 그에 만만치 않은 분들이 우리에게 냉소를 넘어선 단호한 거부를 보인다. 그리고 우린 그 앞에서 아무 것도 모르는 야만인이 된다.

성당이 어떤 곳인지도 제대로 모르고, 이곳이 얼마만큼 중요한 성지인지도 모르고, 북한이 아직도 얼마나 남쪽이 헛점을 보이기만을 기다리고 있는지 모르고, 이렇게 계단을 막고 있으면 얼마나 사람들이 불편해 하는지도 모르고 철없이 농성을 하고 있는 나는 공중도덕·공공질서·국가안보를 모르는 2000년의 야만인이 되어 버린다.

나름대로 우리 역시 야만인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을 한다. 이른 아침부터 시끄러이 들려오는 소리들에 대답도 하고 언 손을 녹여가며 통행에 불편을 드려 죄송하다는 푯말도 만들어 보고, 명동을 찾는 모든 분들에게 축복이 있기를 빌어도 본다.

어찌 해야 더 잘사는 건데?

너무나 보편적인 진리라고 믿고있는 인권에 대한 신념이 때로는 상처받는다. 특히 인권의 문제가 정치권력의 지배 시도, 특정 세력의 변화에 대한 반발에 부딪칠 때 인권에 대한 나의 신념은 보편적 권리가 아닌 "정치적인 문제"로 변질되어 버린다. 바로 국가보안법의 문제처럼.

▲ 박래군 농성단 상황실장의 두 딸 수빈(왼쪽), 성아 ⓒ 김진만
이번 농성의 최고령자는 인권운동사랑방의 서준식 대표. 얼핏 들으니 52살이시란다. 그리고 막내인 내가 25살. 얼추 2배의 차이가 난다. 이렇게 뜬금없이 나이의 문제를 말하는 건... 국가보안법은 서준식 대표와 동갑내기란다. 서준식 대표를 제외한 모든 농성단 식구들은 국가보안법의 세상 아래 태어나 국가보안법의 보호 아래 평생을 살아온 셈이다.

농성장에 동지가 또 한 분 늘어나셨다. 천주교 인권위원회의 이덕우 변호사님. 서준식 대표님과 두 분 중 누구의 나이가 더 많을까? 변호사 님은 국가보안법이 없는 세상에서 살아보셨을라나?^^

사회 변화를 바라는 많은 이들을 반국가 이적단체의 사슬로 묶어 한국의 독재정부들을 지켜낸 국가보안법. 그 생이 이제 다했는가 했더니 누구로부터의 자양분 때문인지 무럭무럭 잘만 크고 있다. 누구보다도 국가보안법의 큰 피해자였다는, 인권대통령이라고 한국인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라고 칭송(?)받는 김대중 대통령은 과연 이 사실을 알고는 있는 걸까?

그래 정 세상이 바뀌었다는 걸, 남북의 정상이 만나고 통일의 걸음을 딛는 지금의 정국을 인정할 수 없어 자기 모순의 국가보안법을 방치해 두고 싶다면 언제든 나타날 수 있는 정권의 반대세력들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국가보안법을 존속시켜 두고 싶다면 그렇게 해야겠지. 그것이 김대중 정부의 뜻이라면.

그래 과거의 문제는 따지지 말자는 사람들을 위해 좀더 미래지향적인 이야기도 할 수 있다. 바로 "국가인권위원회"와 같은. 지금까지는 인권후진국의 모욕을 안고 살아왔지만 진정 미래의 인권국가를 생각한다면 모든 국민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취급하는 국가기구에 맞서 국민 인권의 방패막이가 되어줄 독립적이고 실효성 있는 인권위원회는 당연히 설치되어야 할 것이 아닐까?

국가보안법이 폐지되고 국가인권위원회가 설치되어 세상이 확 바뀐다고 말할 수는 없겠다. 이 둘 외에도 수없이 많은 문제들이 이 사회의 구석구석에는 박혀 있으니. 하지만 국가보안법의 폐지와 국가인권위원회의 설치가 이 사회를 조금 더 살기 좋은 세상으로 가꾸어가는 또 하나의 빠른 길이 되어 줄 것이라는 믿음은 변치 않는다.

우리의 믿음을 살찌게 하는 것들.

농성을 하며 가장 싫은 경험들은 말한 바와 같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가장 기쁜 일은 무엇일까?

"여러분의 지지방문이 힘이 됩니다."
대학 시절 이런 말을 들을 때면 항상 의문이 따랐다. 뭐가 좋다는 거지? 무슨 힘이 된다는 거야? 그저 와서 만나주는 게 좋은가? 우리가 젊어서 보기가 좋은가? 뭐지?

지난 4일간 10여 단체에 이르는 많은 분들이 명동성당을 찾아주셨다. 어떻게 알고 오셨는지 하나 둘 들머리에 오르는 우리의 동지와 친구들을 보며 농성단은 외롭지 않음을, 우리의 주장이 결코 몇몇 사람들만의 고집이 아님을 확인한다. 방문해준 이들의 소개와 격려의 말, 연대의 발언, 함께 부르는 투쟁의 노래 속에서 우리의 믿음은 살쪄 가고 순간의 허기와 추위는 다시 과거의 경험이 되어 버린다.

"여러분의 지지방문이 큰 힘이 됩니다." 이제 이 말이 그저 말해본 한순간의 "접대용 멘트"가 아님을 올라오는 이들은 반가운 눈으로 맞이하는 나의 눈빛과 치켜세우는 어깨에서 확인한다. 음식도 무엇도 필요 없습니다. 그저 동지들의 발걸음과 함께 부를 노래, 우리와 함께 싸우겠다는 동지들의 결의만 있다면...

진정 우리가 바라는 것

연말연시다. 작년 이때 쯤, 아마 조금은 술에 취해 티브이를 보고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타종을 기다리는, 2년을 함께 보내려는 엄청난 인파들 사이에서 가수 이현우가 부르는 노래를 들으며 난 무슨 소망을 가슴에 가졌을까?

이제 명동거리에서 소망을 새겨본다. 국가보안법 철폐, 국가인권위원회 설치, 민중생존권 보장. 2000년에는 시간이 없어(?) 이루어내지 못한 이 모두가 2001년에는, 아니 다음 달에는 우리 모두의 노력으로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조금 더 나아진 세상을 살고 있음을 만끽하고 싶다. 새해에도 인권은 너무나 보편적인 가치이며 우리의 일상 속에서 숨쉬고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나. 어머니 아버지 새해 첫날 못 뵈어서 죄송합니다. 건강하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꼭 인사갈께요.

자∼ 난 지치지 않는다∼! 우리는 쓰러지지 않는다∼! 농성단 형들 파이팅∼!
모두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농성단은 명동에 있습니다. 고운 얼굴들 많이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인권활동가 연합 단식농성단'의 일원으로 명동성당 노상에서 단식하고 있는 국제민주연대 박철우씨의 농성기입니다.

덧붙이는 글 '인권활동가 연합 단식농성단'의 일원으로 명동성당 노상에서 단식하고 있는 국제민주연대 박철우씨의 농성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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