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12월 29일 포항 전교조 사무실에 시내 인문계 고등학교인 P고 학부모들의 갑작스런 방문이 있었다. 방문의 목적은 인문고에서 방학중 보충 수업을 하지 못하게 된 것에 항의하기 위한 것이었다.
전교조 포항지회는 지난 한 해 동안 불법 보충 수업을 반대하고 정상적인 특기 적성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이에 포항시의 인문계 고등학교 교장들은 지난 해 22일 모든 특기적성 교육의 중지를 선언함으로써 사실상 보충수업 실시 포기를 선언하였다.
이에 P고 학모들은 29일 학교에 모여 보충 수업에 반대하는 전교조 교사의 명단을 달라면서 전교조 포항지회로 몰려가 항의하고 계란세례를 퍼부었다.
전교조 포항지회의 교사의 말에 따르면, 지난 한해 동안 전교조의 주장은 학교가 강제적이고 획일적인 보충 수업이 아닌 다양한 특기 적성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운영해야 한다는 것이었으나 학교는 과거의 타성에 젖어 획일적이고 강제적인 보충 수업만을 계속해 왔으며 결국 학교는 다양한 특기 적성 교육의 실천을 포기한 셈이라는 것이다.
이번 포항시 인문계 교장단의 '방학 중 모든 특기적성교육 포기 성명'은 보충수업을 금지시킨 정부당국에 대한 저항이며, 사실상 특기 적성 교육 포기를 공개적으로 선언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어 지난 2년간 금지된 보충 수업을 합법적으로 재현하려는 움직임과도 관련이 있다고 보아야 하지 않느냐 하는 예측을 자아내기도 한다.
현재 전국 각 지역에서는 방학 중 보충수업을 버젓이 실시하고 있는 곳이 많다. 만약 보충수업 금지와 특기 적성 교육의 실천에 대한 교육부의 의지가 확고하다면 이런 일은 애초에 일어나지도 않을 것이다. 교육부의 암묵적 동의 없이 일선 교장들이 교육 개혁 정책에 전면 대응하는 이런 일은 그간 교육계의 풍토로 보아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는 게 일반적인 의견이다. 이런 측면에서 향후 교육부의 태도가 무척 궁금해진다.
만약 보충수업이 곧 교육부 차원에서 허용된다고 하면 입시 제도 개혁과 맞물려 진행된 교육부의 소위 교육 개혁은 구두선에 불과한 것이라는 것을 스스로 입증하는 꼴이 될 것이다. 동시에 국가 관리 차원에서 진행되는 교육 정책에 대한 무용론이 일시에 고개를 들 것이며 어떤 교육 정책도 정치적 술수로밖에 보지 않으려고 하는 국민적 여론에 직면할 것이다. 그 결과는 참담하다. 교육의 위기는 곧 그 국가의 위기라는 것을 왜 모른단 말인가?
적어도 교육 현장에서 국가가 실시하고자 하는 교육 정책을 제대로 하자고 주장했다가 학부모들로부터 계란 세례나 받고 인권 모독적인 언사를 듣는 일은 없어야 한다. 적어도 교사가 학생들에게 누가 묻거들랑 우리는 보충 수업 안하고 특기 적성 교육한다고 하라는 식의 거짓말을 집단적으로 하도록 하는 거짓 교육 풍토만은 제발 없어지도록 해야 한다.
참고로 시민들이 궁금해 하는 방학 중 보충 수업비에 대한 내역을 조사했다. 포항과 인접한 K시의 인문계 학교의 경우다. 교사는 방학 때도 월급을 받는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는 분명 과외의 성격을 띄는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런 정도의 액수가 전국적으로 모인다면 얼마나 될까?
IMF로 인한 국민적 고통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이런 엄청난 사교육비가 공교육 내에서 지출된다면 이는 분명 문제 있는 것이다. 더구나 평소 방학이 아닌 학기 중에도 보충수업이 진행된다면, 게다가 학원이라도 가는 경우에는 그 비용은 급증할 것이다. 그 경제적 비용 때문에 온갖 잘못된 행태들이 사회 문제가 된 것이 바로 엊그제였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교육부의 실질적인 대안이 진정 필요한 이유는 바로 이런 문제를 포함한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K시 인문계학교의 방학중 보충수업비 내역
실시기간 : 12월 26일- 2000년 1월말까지 (24일간)
일정: 08시 등교 - 13시 하교
참가자: 약 400여명(1,2 학년 약 90% 참가) / 시수 : 120시간 내외
교사 수당: 시간당 15,000원 / 학생 1인당 납부액: 57,000원 내외
보충 수업 총액: 34,000,000원 내외 / 교사 강사료: 31,500.000 내외
잔액: 2,500,000원 내외(예년에는 이 돈으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생의 보충수업비를 면제해 주기도 하고, 난방비, 전기료 등 수용비를 내고, 나머지 상당 부분이 교장, 교감을 비롯한 관리자들의 간접지도 수당으로 지출되기도 했음)
덧붙이는 글 | 우리나라 교육 문제 해결은 하루아침에 안 된다. 그러나 그 걸음을 멈추어서도 안된다. 교육이 신분 상승의 절대적 기회로 작용하는 한, 노동이 이처럼 천시되는 한. 빈부차가 크면 클 수록 교육을 통한 신분 상승의 기회를 아무도 놓치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는 사이 우리 인간 사회는 비인간화로 황폐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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