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박흥식 감독 데뷔 영화 속의 '사랑과 연애'

등록 2001.01.03 15:01수정 2001.01.03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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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 박흥식 감독의 데뷔작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젊은 남녀의 깔끔하면서도 잔잔한 연애담을 담고 있다. 하지만 단순한 멜로영화는 아니다. 그보다는 일상에 대한 묘사, 특히 사랑에 빠지게 되는(혹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됐다고 믿는), 두 남녀의 감정에 대한 디테일이 강한 영화다. 그런 면에서 박흥식 감독의 연출력은 신인답지 않게 치밀하고 꼼꼼하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이 영화는 <미술관옆 동물원>이나 <8월의 크리스마스>, <오! 수정>, <순애보> 등 일상과 주변의 생활을 통해 삶의 진실을 발견하고자 하는 최근의 일부 우리 영화들의 제작경향과 맥이 닿아 있다.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제목은 페데리코 펠리니가 만든 <아마르코드>의 대사에서 따온 것이다.


아파트 단지 내의 지점에서 일하고 있는 은행대리 김봉수(설경구)는 서른 안팎의 독신남이다(그는 자신의 아파트 내부수리를 하다 말고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흥얼거린다). 그는 여자를 유혹하려고 마술까지 배우는 인물이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혼이란 행운은 그에겐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은행 바로 건너편 빌딩에서 일하고 있는 원주(전도연)는 보습학원 강사. 그녀는 은행을 들락거리다 봉수와 자꾸 마주치게 되고 그가 자신에게도 호감을 갖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원주는 어느 날 용기를 내 봉수에게 데이트를 신청하지만 예상을 깨고 그는 야멸차게 그녀를 거절한다.

박흥식 감독이 들추어 낸 두 남녀의 일상은 하나도 특별할 것이 없다. 오히려 영화 속에서 일상 그대로의 모습을 발견한다는 것이 오히려 특별한 느낌을 줄 정도다. 지하철이 갑자기 정차한 후 불이 꺼지면서 여기저기서 핸드폰 액정화면 불빛만이 반짝이는 첫장면같은 것은 이 감독이 주변의 풍경에 얼마만큼의 관심과 관찰력을 동시에 지녔는지를 보여 주며 영화만들기란 것 자체에 대해서도 창의력과 상상력보다는 삶의 실제 모습에 얼마만큼 더 가깝게 다가서느냐를 중요시 하는지 보여주고 있다.

주위에 널려 있는 지루하고 무료한 일상의 모습을 삶의 한가운데로 끌어 들이는 데 탁월한 능력을 선보인 만큼 박흥식 감독은 두 남녀의 사랑이야기에도 전혀 영화같지 않은 사실성을 부여하는 데 성공했다.

버스를 몇 번 지나치게 하면서까지 서로 헤어지지 못하는 영화 속 두 남녀의 모습은 연애를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씩은 겪었음직한 얘기다. 보습학원 아이들과 분식집에서 개구리 시리즈 얘기를 해가며 깔깔거리다 남자가 들어 온 것을 눈치 채고 갑자기 목소리 톤을 바꾸는 것도 평범한 남녀들간의 연애과정에서는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일상어, 일상사, 일상의 사랑이야기 등 '일상'이라는 존재에 대해 지나치게 강박당한 느낌을 주는 것 또한 사실이다. 삶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은 분명 영화 분위기에 사실성을 부각시키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하지만 그 일상의 나열이란 것이 극 중간중간 적절한 의미부여라는 리듬을 타지 못하면 자칫 이야기 전체가 생동감을 잃고 지루해질 수 있음을 이 영화는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 영화의 남자 주인공이 마치 연애와 결혼강박증에 빠져 있는 인물처럼 보이고 여자 주인공 역시 오로지 장미빛 사랑의 환상만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처럼 보이는 것은 그때문이다. 이는 곧, 박흥식 감독이 진열해 놓은 영화 속 일상의 모습이 진짜 일상이 아니라는 얘기일 수도 있음을 보여 준다.


그보다는 감독이 슬쩍 지나치고 있는 두 남녀의 어릴 적 아픔, 즉 어머니의 죽음을 슬퍼하는 어린 봉수의 마음이나 6살때 돌아가신 아빠를 그리워하는 원주의 가슴 아픈 추억에서 한발짝 정도 더 나아 갔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일상의 연애 이야기를 미주알 고주알 캐담은 이 영화는, 이 세상의 모든 남녀가 우리 사회의 수많은 복잡한 문제들과는 아랑곳 없이 온통 사랑과 짝짓기의 고민에만 열중해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진짜 삶의 모습들에 대해 '역류'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이 영화는 오히려 바로 그런 점때문에, 즉 지금의 세상이란 것이 연애 외에 더 고민할, 순수한 무엇이 남아 있느냐는 역설적인 항변처럼도 느껴진다. 어쨌든 분명한 것 한 가지는 이 영화가 만들어 내는 두 남녀의 연애담이 답답한 일상에 지쳐 있는 관객들에게 시원한 청량제 역할을 하기에는 한걸음 처진다는 것이다. 진짜 사랑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는 것이어야 한다.

하지만 '연애담'이란 있을 수 있는 많은 이야기들 가운데 하나를 얘기하는 것이다. 이 영화를 러브 스토리라 하지 않고 연애담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덧붙이는 글 | 제작:싸이더스
배급:시네마서비스
각본 : 박흥식, 장학교, 최은영
감독 : 박흥식
출연 : 전도연, 설경구, 진희경
러닝타임 : 104분
상영관 : 서울극장,시네코아,메가박스,시티,동숭,CGV

덧붙이는 글 제작:싸이더스
배급:시네마서비스
각본 : 박흥식, 장학교, 최은영
감독 : 박흥식
출연 : 전도연, 설경구, 진희경
러닝타임 : 1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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