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예고된 안기부자금 사건의 어설픈 결말

등록 2000.01.31 00:00수정 2001.02.19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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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 안기부자금 불법 유용 수사에 착수할 때의 일견 비장해 보이기까지 했던 기세와는 달리 검찰의 안기부자금 수사가 흐지부지 끝나버릴 듯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정치권에 휘둘리기 쉽다는 사건의 성격에 비춰 처음부터 크게 기대하지 않았지만, 이것이 우리 검찰과 이 나라의 한계인가 싶어 실망을 금할 수가 없다.

하기사 따지고 보면 현재의 결말은 이미 예고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한창 서슬 퍼렇게 사건의 진상을 낱낱이 밝히고야 말겠다고 덤벼들던 시점에서조차 검찰은 연루된 의원수가 너무 많아서인지 어떤지는 몰라도, 안기부자금을 받은 사람 전원이 아닌 그중 상대적으로 거액을 챙긴 사람들에 대해서만 소환조사를 하겠다는 둥 납득하기 힘든 잣대를 아무렇지도 않게 제시하곤 했으니 말이다.

문제가 된 것은 나라돈인 안기부자금을 선거비용으로 불법 유용한 사실이다. 다시 말해 국민의 혈세를 도둑질한 것이 문제의 핵심인데, 이 도둑질이라는 엄연한 범죄행위에 대해 훔친 돈의 많고 적음에 따라 누구는 수사 대상으로 삼고 누구는 제외시킨다는 발상 자체가 엄정한 법 집행과는 거리가 있었다는 생각이다. 문제는 도둑질이지, 훔친 돈의 많고 적음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돈 액수를 문제 삼아 몇몇 사람들만으로 수사 대상을 국한시키려 들었고, 급기야는 안기부자금인줄 모르고 받았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으며, 심지어 그렇게 받은 돈에 대해 국고환수 조치조차 불가능하다고 아주 당당히 밝히고 있다. 국민들 알기를 완전 바보로 알고, 국민의 혈세를 쓸데가 없어 버린 휴지조각 정도로 아는 모양이다.

길거리에서 지갑을 주워 그 안에 든 돈을 임의로 유용하는 것만 해도 엄연한 범법행위이고, 그렇게 유용한 돈에 대해서는 다시 토해내거나 죄값을 치루는 게 상식이다. 하물며 아무리 안기부자금인줄 몰랐다 하더라도 국민의 혈세를 무려 1000억원 이상이나 불법 유용한 당사자들에 대해 아무런 처벌도 하지 않고, 유용한 돈에 대한 환수조치조차 취하지 않겠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제발이지 상식이 통하는 사회, 정치논리나 힘의 논리 이전에 법 정의가 앞서는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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