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할아버지도 '일제 징용자'

할아버지의 증언 "우리 정부와 일본,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등록 2001.01.29 22:19수정 2001.01.30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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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연휴가 끝난 금요일. 우리 식구는 외갓집에서 저녁식사 후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외할아버지는 신문을 보고 계셨다. 연세가 많이 드셔서 눈이 침침하신 할아버지께서는 신문기사를 소리내어 읽고 계셨다. 그 기사는 연합통신의 일제징용자 지원법 관련 기사였다.

(서울=연합뉴스) 정재용기자 = 일본 제국주의 시절 군인, 군속 또는 노무자로 강제 징용됐던 `일제 징용자'에 대한 국가차원의 생활안정 지원이 올해중 이뤄질 전망이다.

국회 전용원(田瑢源) 보건복지위원장은 25일 "일제 징용 국민 가운데 생존자에게 국가가 생계급여, 의료보호 및 생활안정지원금 등을 지원토록 하는 내용의 `일제하 강제동원 징용자 생활안정지원법(가칭)'을 의원입법키로 상임위에서 의견이 모아졌다"며 "올 상반기중 관련법안을 처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건복지위는 최근 `일제강제연행 한국생존자협회'의 지난해 9월 입법청원에 대한 검토 결과 이같이 의견을 모았으며, 정부측도 이법의 제정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지난 93년 6월 `일제하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생활안정지원법'을 제정, 일본군 위안부 출신 할머니들에게 생활지원을 하고 있으나 일제 강제징용자에 대한 국가차원의 생활지원은 이뤄지지 않고 있어, 이 법안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2000여명으로 추산되는 징용 생존자들이 혜택을 볼 것으로 예상된다.

이 법안은 강제징용자 가운데 생존자에 대해선 국가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따른 생계급여와 의료보험법에 의한 의료보호 지원을 하는 것 이외에 일정액의 생활안 정지원금을 지급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지원 규모는 1인당 일시보상금 4300만원과 월 지원금 50만원이 지급되는 일본군 종군 위안부 출신 할머니들의 선례에 따라 책정될 것으로 보인다.


이 법안은 또 징용 생존자 중 무주택자에게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주택을 우선 임대하도록 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65년 체결된 `한일 청구권협정'에 따라 45년 8월 광복 이전에 사망한 강제 징용자에 대한 청구권 문제를 소멸시킨 뒤, 일부 징용 사망자의 유족(8000여명)에 대해 지난 75-77년 일정액의 보상금을 지급했으나 생존자에 대해선 아무런 지원도 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강제 징용자들은 `일제강제연행 한국생존자협회'라는 단체를 만들어 "정부가 과거 한일청구권 자금으로 경제개발을 이룬 만큼 80대 고령의 강제징용 생존자들이 모두 사망하기 전에 국가차원의 보상을 해야 한다"며 국회에 입법청원을 했다.


"그럼 아버님도 보상 받으시겠네요?"
기사를 들으신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그렇지. 내가 1945년 1월부터 끌려가서 그해 12월 31일에 제대했으니깐. 근데 이놈들 준다고만 했지 어떻게 될지는 몰라."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아녜요. 상임위원회에서 통과했으면 곧 법 제정 될 거에요."
"그래봤자 그게 몇 푼이나 될려나. 줄라면 제대로 줘야지. 그리고 돈이 중요한 게 아니지."

나는 할아버지께 이것 저것을 여쭈어 보았고, 신문기사에서나 볼 수 있던 이야기들을 할아버지는 들려 주셨다.

우리 외할아버지의 나이는 올해로 77세로 고령의 나이시다.
할아버지는 1945년 1월 15일 조선2부대 소속으로 징용이 되셨다. 그리고 그해 1945년 12월 31일 중국에서 제대하셨다. 해방 이후에도 약 4개월간을 계속 복무하신 것이다. 하지만 제대 후에 바로 귀국하지 못하고, 46년 5월에야 귀국하실 수 있었다.

일제의 악랄한 징용에 대한 분노를 뒤로 하고 할아버지께서 그 기사를 보고 말씀하신 건 보상문제였다. 중국에서 복무하실 때 할아버지가 받으신 월급은 한달에 20원. 그 당시 조선 내의 장교가 5원 정도 받는 거에 비하면 엄청난 액수였다. 일본군은 한달에 한번씩 조선 징용자들을 모아 그들에게 20원씩 현금으로 지급하였다. 대다수의 조선 징용자들은 꼭 필요한 2~3원만을 제외하고는 나머지는 우체국 소액환으로 바꾸어 당시 일본의 구마모토에 있는 은행으로 송금하였고, 이는 개인별 통장에서 관리되었다 한다. 즉 당시 징용자들은 월급은 계속적으로 지급받았으며 이는 곧바로 일본 내의 은행에 예금되었던 것.

하지만 이 예금은 징용자들에게 돌아가지 못하였다. 해방 이후 어수선한 상황 속에서 대다수의 징용자들은 예금을 반환하지 못한 채 귀국하게 되었고 몇 년 동안을 보내게 되었다.

그러다가 다시 그 일제 징용자의 보상이 문제된 것은 60년대 한일협정때. 당시 김종필과 오하라 사이의 합의에 의해 유무상으로 5억달러를 우리나라는 일본에게서 지급받았고 이때 일제 당시에 징용자에게도 보상이 돌아오게 되었다. 즉 그 5억달러 속에 수많은 일제 징용자들의 보상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할아버지도 그때, 익산 제일은행에 가서 3500원을 받아 오셨다고 한다. 2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음에도 받은 3500원은 말 그대로 쥐꼬리만한 액수. 일본 정부가 직접 지급한 것이 아니라, 일본에게서 돈을 지급받은 우리나라 정부가 지급한 것이고, 그것도 복역기간 전체가 아닌 해방 전까지의 액수였다. 돈의 액수가 적을 뿐만 아니라, 해방이후 복무 기간은 전혀 고려 되지 않은 것.

그 3500원을 지급받고 난 후 30년 동안 할아버지는 정부로부터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하셨다. 정부의 소홀한 대우에 일제 징용자들은 자발적으로 모임을 결정하고 일본 정부와 우리나라 정부에 정당한 보상을 요구하여 왔다.

할아버지가 살고 계신 전라북도 정읍 지역만 하더라도 정읍 고창 전주 부안지역의 일제 징용자들이 모여 결성한 '태평양 전쟁 유족회'가 고창에 위치하고 있다. 80년대 중반부터 활동해 온 이 단체는 활동 초기에는 800여 명의 회원이 활동하였지만 대다수의 회원이 시간이 지나면서 세상을 떠났고 이제 생존한 고령의 회원들만이 활동을 하고 있다.

회원들의 회비를 모아 일본 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하고, 일본 정부와 한국 정부에 문의를 하고, 국회의원들에게도 이러한 사정을 설명해 왔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한일협정 때 지급한 5억불로 일본 정부의 책임은 끝났다고 말하는 형편이고, 우리나라 정부도 확실한 대답을 회피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일제 징용자들은 회원들의 회비를 모아 국제 재판을 준비하게 되었다. 돌아오는 수요일날 국제 재판을 위해 선임한 미국인 변호사가 고창지역 유족회에서 설명회를 개최한다고 한다.

일제 징용자의 보상과 대우에 있어서 일본 정부의 무책임한 대응에도 문제가 있지만, 우리 정부에게 그 비난의 책임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당시 일본에게서 받은 보상금을 가지고 일제 징용자들에게 적절한 보상을 해 준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보상만을 한 채, 대부분의 액수를 경제개발을 위해 사용해 버렸고 이후 아무런 보상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나라의 이런 현실에 반해 이번에 북한 지역 일제 징용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요청한 배상금 액수는 100억불. 물론 이 100억불이 전부가 지급될지 아니면 얼마가 지급될지는 모르지만 북한과 우리나의 현실이 비교되는 것은 사실이다.

앞으로 징용자에 대한 생활 지원법이 원만하게 통과될지, 그리고 통과되어 적절한 보상이 이루어질지 정부의 태도에 귀추가 주목된다. 해방 이후 정부가 보인 안일한 대응이 이제는 바뀌었으면 한다.

할아버지께서도 돈 몇푼이 중요한 게 아니라, 정부가 어떻게 일제 징용자를 대하는가 하는 정부의 태도가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 그냥 어물쩍 넘어가는 태도가 아닌 확실한 책임과 보상을 정부에게 기대하는 것이다.

그 당시 일제 징용자들은 이제 70대 이상의 고령. 살아계실 날이 얼마 남지 않은게 사실이다. 그분들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정당한 대우를 받고 가시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할아버지가 말씀하신 내용을 토대로 급하게 기사를 작성하다 보니 관련자료 등에 대한 조사가 무척이나 미비합니다. 혹시나 이 분야에 관심있으신 분들의 많은 도움 바랍니다. 그리고 30일(수)에 고창에서 국제 재판에 관한 설명회가 있다고 하는데, 참석해서 취재를 하고 싶지만 사정상 여의치가 않아서 아쉽습니다. 혹시나 관심있으신 분들의 도움 부탁드립니다.

덧붙이는 글 할아버지가 말씀하신 내용을 토대로 급하게 기사를 작성하다 보니 관련자료 등에 대한 조사가 무척이나 미비합니다. 혹시나 이 분야에 관심있으신 분들의 많은 도움 바랍니다. 그리고 30일(수)에 고창에서 국제 재판에 관한 설명회가 있다고 하는데, 참석해서 취재를 하고 싶지만 사정상 여의치가 않아서 아쉽습니다. 혹시나 관심있으신 분들의 도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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