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정말 도둑질을 했을까

등록 2001.01.30 11:24수정 2001.01.31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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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눈발이 날렸다. 왠지 기분이 울적하고 불안했다. 눈을 좋아하는 내가 눈오는 날 이런 기분이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말이다.

저녁 준비를 하려는 참에 친정 어머니께 전화가 왔다.
"네 동생 설 지나고 만나봤니?"
'가까이 동생을 두고도 자주 돌보지 않는 나를 질타하시는 거구나.' 나는 순간 그런 생각을 하면서 기어드는 목소리로 아니라고 대답을 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오늘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는데 그 애가 다른 사람 가방을 가지고 갔다는구나."
어머니는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나는 순간 머리속이 하얗게 비는 것 같았다. 한참을 더듬다가 자초지종을 물었다.

어머니 말씀은 이랬다. 설을 쇠고 동생은 서울로 어머니는 시장을 가시느라 함께 읍내로 버스를 타고 와서 어머니께서 시장에서 먼저 내리시고, 동생은 더 먼 시외버스 터미널로 가야 하기 때문에 버스에서 헤어졌다.

그런데 사흘이 지난 오늘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는데, 버스 운전사가 내 동생이 다른 사람의 가방을 가지고 내렸다는 것이었다. 분명히 봤다고 하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계속 전화를 해도 동생이 전화를 안 받는다고 하셨다. 가까이 있으니까 내가 연락을 해보고, 전화를 계속 안 받으면 찾아가 확인을 해 보라고 하셨다.

어머니의 전화를 끊자마자 동생에게 전화를 했는데 받지 않았다. 핸드폰도 받지 않았다. 나와는 세 살 차이인 동생은 걸음마를 뗄 때부터 의롭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일에 타협하길 싫어했다. 피곤할 때도 있었지만 대충 편하게 사는 나에게는 존경스럽게 보일때도 많았다.


어려서부터 누구보다도 정의로웠던 동생이 그런일을 할 아이가 아니라고 믿었지만, 그래도 버스 운전사가 공연히 남에게 그런 죄를 뒤집어 씌웠을까 하는 생각과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두가지 생각이 맞물려 '혹시라도 내 동생이 그런 일을 했으면?'하는 불안감이 솟구쳤다.

그리고 어머니께서 모르는 사실 한가지를 나는 더 알고 있었다. 걱정을 끼쳐 드릴까봐 차마 동생이 얼마전 실업자가 되었다는 말씀을 드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혹시 얘가 직업이 없어서 경제적으로 쪼들려서 그런짓을?' 하는 생각과 함께 내 불안감은 증폭되었고, 얘가 정말 그렇게 망가지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으로 사고가 온통 마비될 지경이었다.


돈이 없어 수퍼에서 생필품을 훔치다 잡힌 실직한 가장과 주부에 대한 신문 기사들이 머릿속 한켠으로 비집고 들어오기도 했다.

몇 시간을 전화해도 전화를 받지 않고, 걱정때문에 저녁밥도 먹을 수가 없었다. 날이 어두워 졌을 즈음엔 어머니도 나도 거의 반쯤은 정말 동생이 그런 일을 하지 않았나 하는 의심을 품을 수 밖에 없었다.
전화걸기를 포기하고 막 동생 집으로 가려는데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는 다짜고짜 왜 전화를 안 받았냐고 따지듯이 물었다. 동생은 친구를 만나고 왔다고 했다. 그럼 핸드폰은 왜 안 받냐고 했다. 핸드폰이 고장이 나서 안 들고 다닌다고 했다.

집에 다녀올 때 시내버스에서 가방을 들고 내렸냐고 물었다. 동생은 아주 태연한 목소리로 그렇다고 했다. 나는 하늘이 노랗게 변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동생이 이어서 말했다.

어머니께서 차에서 내리신 후에 어머니 것이랑 똑같은 가방이 아무도 없는 차 안에 있길래 어머니것인줄 알고 전해주려고 따라내렸다. 그런데 어머니는 가방을 가지고 가시길래 다시 버스로 돌아왔는데 그 버스는 이미 떠나고 없더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뒤따라오던 같은 회사의 버스 운전사에게 맡겼다고 했다.

나는 안도하면서 어머니께로 빨리 연락을 해 보라고 했다. 잠시 후 동생은 모두 해결이 됐다면서 전화를 해 왔다. 뒤따라 오던 버스 운전사가 그 가방을 받고도 그때껏 모른체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방 속에는 십여만원이 들어있었는데 누군가 분실신고를 안하면 그대로 가지려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동생이 전화하자 그때서야 내놓았다는 것이다. 그것도 차에 감시카메라가 있어서 동생이 가방을 전해주는 모습이 잡혀서 인정한 것 같다는 것이다.

동생과 얘기하면서 나는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여태껏 쌓아온 동생에 대한 모든 신뢰를 나는 어째서 남의 말 한마디만 믿고 한순간에 무너뜨릴수 있었던 것일까?

하루종일 불안했던 기분은 가셨지만 부끄러움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동생에 대한 미안함에 나는 동생에게 줄 새 핸드폰 하나를 구입해 주기로 마음먹었다. '핸드폰만 있었으면 그런 오해는 없었을 걸..' 하고 애꿎은 핸드폰만 탓하면서...

그리고 올해에는 동생이 다시 취직을 하게 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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