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와 간병인 사이...

등록 2001.01.30 12:20수정 2001.01.30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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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화장실에 매일 들어가는 여자, 여자화장실에 매일 들어가는 남자. 그렇다고 그들에게 눈총주는 사람이 있는 건 아닙니다. 병원에선...

설연휴라 다들, 고향으로 또 평소 바쁜 생활 때문에 만나지 못했던 분들을 찾느라 분주한 날들이지만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환자의 대소변을 해결해 주기 위해 더욱 분주하게 휠체어를 끌고 화장실에 드나드는 사람들은 환자 보호자입니다.


빠른 쾌유를 위해 보호자는 여러 가지로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특히 침대에서 식사와 대소변 등 모든 것을 치러야 하는 환자들의 경우는 보호자의 손길 하나 하나가 환자의 회복에 큰 영향을 끼칩니다.

suction(가래를 빼는 것)을 제대로 하지 않아 폐렴에 걸릴 수도 있고 자세를 자주 바꾸어 주지 않아 욕창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환자가 불면의 밤으로 지루하고 고통스런 시간을 겪고 있을 땐 간병하는 보호자도 마찬가지의 시간을 버텨내야 합니다.

어머니 맞은 편에 있는 환자는 반백의 말쑥한 얼굴을 가진 일흔살의 강원도 할머니입니다. 할머니는 지금 의식은 있지만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팔다리도 제대로 쓰기 힘들고 가끔 숨가쁨증으로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할머니 곁에는 이른 아침부터 할머니의 얼굴과 손발을 말끔히 씻기고, 수시로 기저귀를 갈아채우고, 레빈튜브로 식사와 약주입을 하고, 욕창 방지를 위해 자주 자세를 바꾸어주고, 밤에는 suction을 하느라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피곤한 기색이 완연한 40대 아주머니가 있습니다.

이 아주머니는 할머니의 딸이 아닙니다. 며느리도 아니고 할머니의 여동생도 아닙니다. 힘들지만, 환자 가족을 대신해 24시간 할머니를 간병하는 아주머니는 다름 아닌 직업 간병인입니다.


환자의 건강회복을 위해 여러 가지로 수고를 해야 하는 중요한 간병일임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허락되지 않는 환자 가족은 직업 간병인의 도움을 받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직업 간병인들이 본격적으로 활동한 지는 10여년쯤 된다고 합니다. 그들은 얼마간의 간병 교육을 받고 주간과 야간, 또는 24시간 근무를 합니다.

요근래 할머니의 숨가쁨증이 더 심해져 간병 아주머니는 밤잠을 제대로 못 자는 날들이 많아졌습니다. 이렇게 피곤한 밤을 지새우며 희뿌연 새벽을 맞을 때면 돈도 다 싫어져 일을 그만둬야지 하며 짐을 싸기도 여러 번이랍니다. 하지만, 어느새 아침이 되어 환자의 얼굴과 손발을 깨끗히 씻기고 나면 새벽에 싼 짐을 다시 푼다고 합니다. 환자의 얼굴을 보고선 안쓰러운 마음이 들기 때문입니다. 할머니도 가족보다는 오히려 아주머니의 간병을 더 신뢰합니다.


요즘 할머니의 병세가 처음보다 더 나빠져 간병 아주머니의 마음도 그리 편하지 못합니다. 환자와 간병인이라는 낯선 사이로 만났지만 그리고 말 한마디 못하고 그저 힘없이 끄덕이는 고개짓으로 의사소통을 하는 그들이지만 어느새 마음만은 서로에게 통하게 되었나 봅니다.

어젯밤에도 간병인 아주머니는 할머니의 숨가쁨과 suction으로 잠을 못잤습니다. 하지만 간병인 아주머니가 일을 그만두지는 않을 것입니다. 뭐라 단정짓기는 어렵지만, 몇 달 동안 환자와 간병인으로 있으면서 가족간의 동감(同感)은 아닐지라도 보살핌을 주고 받는 관계로서의 교감(交感)은 가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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