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01.01.30 20:07수정 2001.01.31 11:18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빨리! 빨리! 전화 해 봐~~'
'엄마 일을 어떻게, 일을 어떻게! 설마 아니겠지, 하나님 제발!'
'얘, 핸드폰 번호가 뭐였더라!'
집안 식구들의 시끄러운 소리에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 어머니와 누나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동생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다. T.V 에서는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돌아오던 26살 한인 학생, 지하철역에서 일본인 취객 구하려다 숨져'라는 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남동생이 신주꾸에서 살고 있었고, 아르바이트를 했고, 학생이었고, 26살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우연의 일치로 우리집 식구들은 삽시간에 공포에 떨고 있었다. 이 불행이 우리 일이 아니길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는지 모른다. 연결이 잘 되지 않는 핸드폰의 벨소리는 더욱 우리 가족들의 가슴을 철렁하게 하였다.
몇 번에 걸친 시도끝에 연결된 전화기의 음성 속에 동생의 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을 때야 비로소 우리 가족은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심지어 어머니는 옆에서 까닭없는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동생은 착잡한 목소리로 '괜찮다는 말과 함께 그 사실을 자신도 알고 있으며, 그의 죽음이 동경시 전체를 들끓게하고 있다'라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그것이 다였다. 무심코 지나가버린 한 청년의 죽음은 나에게 아무런 상관이 없었으므로 내 기억의 낭떠러지 저만치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바로 어제(29일)였다. '이수현'학생의 죽음이 신문과 방송에 대대적으로 보도가 되었기에 나는 어렵지 않게 컴퓨터에 링크되어 있는 그의 사이트를 방문하게 되었다. 잘생긴 용모에 좋은 대학에 좋은 학교성적, 타고난 운동소질에 여자친구까지... 그에 대해 많은 것을 알수록 왜라는 의문이 깊어갔다. 왜 하필 술취한 사람을 위해 무모한 행동을 했을까? 남겨진 여자친구가 불쌍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쉽게 지나쳐 버렸던 그의 죽음에서 알 수 없는 뜨거운 뭔가를 느끼게 되었다.
그날 저녁 모처럼 온 가족이 모여 식사를 하고 있었다. T.V를 켜자 '의로운 죽음'이라는 제목으로 뉴스에서 그의 죽음에 대해 보도하고 있었다. '증조부부터 시작된 악연이 그의 아버지에게까지 계속되었음에도 그는 일본인에 대해 편견을 가지지 않고 인류애를 실현했다. 아름다운 청년의 죽음이다'라며 일본 열도가 떠들썩하다는 얘기였다. 가족들 역시 참 훌륭한 학생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분위기는 나로 인해 깨졌다.
"엄마. 이건 만약인데 저 사람이 만약에 내동생이었다면, 저렇게 지하철역에 뛰어 내렸을까? 또 뛰어 내렸다면 어떻게 하지? 걔도 정의감에 불타는 앤데 혹시 모르잖아."
어머니는 이 말에 깜짝 놀라며 화를 냈다.
"말도 안되는 소리하지 마. 얘가 별 끔찍한 소리를 다하네! 니 동생이 저렇게 되길 바라니! 걔가 바보인 줄 알어!"
"바보라니, 엄마 그럼 저 사람은 바보라서 저렇게 된 거야? 말도 안돼."
어머니와 내가 티격태격되는 모습을 보시던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그 학생 죽음은 의롭다. 그리고 용감한 사람이었어. 하지만 그 사람이 내 자식이었다면 나는 다르게 생각했을지도 모르지. 그의 부모님들은, 아들을 잃은 부모생각은 다를 수밖에 없어. 저렇게 방송에서 보도를 한들, 기부금이 수천, 수억이 된들 아들을 잃은 부모 마음을 위로해 줄 수는 없는 거야. 나도 니 동생이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결코 그런 짓따위는 하지 말라고 말리고 싶구나."
침묵 속에서 식사는 끝났고, 나는 방으로 돌아와 동생의 사진첩과 옛날 편지를 꺼내보았다. 동생의 사진 사이로 간간이 한번도 본 적이 없는 한 젊은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사라지곤 했다. 3개국어를 구사하고, 일본에서 학교를 다니는 동생이 당신에게는 자랑스러울 수밖에 없고, 그런 동생을 불의의 사고로 잃는다는 것을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부모님께서는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셨을 테다. 또한 그만큼 아들을 잃은 그 학생의 부모님의 상처와 아픔은 어떤 위로의 말로도 대신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쯤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동생은 무척 가라앉은 목소리로 담담히 한인청년의 죽음에 감동을 받은 사장이 자신의 알바비를 파격적으로 올려줬다는 말을 했다. 쉽게 감동하고 슬퍼하는 일본인으로서는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떨려오는 동생의 목소리에는 다른 것이 들어 있었다.
"형! 나 어제 '이수현' 씨 부모님들 만났어. 한인교회학생들하고(동생은 교회학생회 회장으로 있다) 같이 조문갔다가 봤는데, 글쎄 뭐라고 말을 해야 좋을지 모르겠더라구. 어머니가 한국인 유학생들인 걸 아시더니 막무가내로 손 붙잡으시고 우시는 거야. 아들 생각이 나셨나봐. 뭐라고 말해주고 싶었는데 해 줄 말이 없었어. 참 그런 일도 세상에 있구나하고 느꼈지. 여자애들은 막 울더라고.
여기 있으면 알지만, 한번도 본 적 없는 모르는 사람이라도 한국 사람이면 같은 식구, 같은 형제처럼 느껴지거든. 한번도 본 적은 없었지만 '참 고마운 사람이고 용감한 사람이구나'하고 같은 한국인으로서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 몰라. 형! 분명 그는 일본 열도를 뜨겁게 만들었어. 형도 여기와 보면 알겠지만 지금 일본 열도에서 한국인 신드롬까지 일어나고 있어. 그 사람 덕택에 한국인들 인식 자체가 틀려졌구. 그래서 우리 학생들도 성금 걷어서 내기로 했어, 근데 너무 작아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들의 사정을 누구보다 뻔히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새벽부터 일어나 일한 돈으로 학비를 충당하는 그들에게 그 작은 돈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돈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생의 전화를 끊은 후, 한 청년이 우리 사회에, 아니 적어도 한국과 일본에 던져준 교훈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사랑과 믿음이 붕괴해진 폐허의 사회에 그가 남긴 사랑의 정신은 어느 때보다 숭고하고 절실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을 실천한 한 의로운 청년의 죽음 앞에 이 땅의 젊은이로서 한없이 부끄러워짐은 어쩔 수가 없었다. 다만 그의 육체는 죽었지만 그의 영혼은 우리 가슴에 영원히 살아 있을 것이라 믿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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