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베이비 65> 항구에 정박해 있는 배는 안전하다. 그러나…

등록 2000.01.31 00:00수정 2001.02.19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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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아! 케이크 사 와~아아.”

볼 일이 있어 외출을 하기 위해 내가 현관문 앞에 서자, 아이들은 그 앞에 도열해 서더니 안녕히 다녀오라는 의미를 담은 “안녕 #@%*~” 어쩌고 하는 서툰 발음의 인사말과 함께 배꼽에 양손을 가지런히 모은채 90도 각도로 정중히 인사를 하더니, 대뜸 본론(?)으로 들어가 케이크를 사오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얼마전부터 생긴 버릇이다.


크리스마스 이브다, 제야다, 엄마 아빠 생일이다 해서 지난 연말연시를 전후해 잇따라 몇 차례 케이크 맛을 보더니만, 그 맛이 아주 마음에 든 듯 이때부터는 슈퍼마켓이 됐건 어디가 됐건간에 내가 어디를 갔다 오려고 현관문 앞에 서기만 하면 이렇게 무슨 주문 외듯 “아빠~아! 케이크 사 와~아”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처음 한두번은 아이들의 이같은 자기 의사 표현이 신기하고 반갑게만 느껴져 요구대로 순순히 사들고 들어갔는데,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계속되는 아이들의 요구를 들어주려니 이게 보통 문제가 아니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소아비만 같은 아이들의 건강문제라든가 식생활 습관이 나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슬슬 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 같은 문제와 우려가 들기 시작한 뒤로 집사람과 나는 아이들의 케이크 식탐에 제동을 걸기 위해 전쟁 아닌 전쟁 상태에 돌입해야만 했다.

“아빠~아! 케이크 사 와~아아.”
“아빠 돈 없어서 케이크 못사 와!”
“아빠~~아! 케이~잌 사 와~~아아아”
“그럼 하늘이하고 바다가 아빠 돈 좀 줘. 하늘이하고 바다, 돈 있어?”
“아~~빠! 케~~이~~이~~익!”

“아빠~아! 케이크 사 와~아아.”
“하늘이하고 바다, 그렇게 케이크만 먹으면 몸에도 안좋고, 얼굴도 미워질텐데~에.”
“아~빠아! 케이크 사 와~~아~~아”


매번 이런 식이다. 돈이 없어서 못사온다고 오리발을 내밀면 그건 아빠 사정이라는 듯 막무가내고, 건강과 미용(?)에 안좋다고 설득을 하려 들면 그런 건 아빠가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는 듯 들은 척도 하지 않기 일쑤다.

비단 케이크뿐만이 아니다. 말문을 열고, 어느 정도 자신들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게 되면서 아이들은 인간으로서의 원초적 본능인지 어떤지는 몰라도 특히 먹을 것에 관한 쪽으로 단어 구사 능력과 어휘력을 발달시켜 나가고 있다. 그 작은 입을 열기만 했다 하면 두세번에 한번 꼴로 먹는 타령이다.


초콜릿, 사탕, 껌, 주스, 포도, 딸기, 귤 등 먹고 싶은 것도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그나마 과일 종류나 주스류 같은 것들은 몸에 좋은 것들이라서 형편이 허락하는 대로 사줄 수가 있어 다행이지만, 초콜릿이나 사탕, 껌 등에 이르면 속이 다 답답해질 지경이다.

초콜릿이나 사탕을 달라는 대로 다 줬다간 필시 얼마 못가 아이들 이빨이 다 충치로 썩어들어갈 것이 분명하고, 껌의 경우 “씹다가 단물 다 빠지면 뱉어 버리는 거야~아”하고 매번 주의를 줘도 잠시만 한눈을 팔았다 하면 그대로 꿀꺽 삼켜버리기 일쑤여서 집사람이나 나를 걱정스럽게 만들곤 한다. 그동안 그렇게 꿀꺽 삼켜버린 껌만 해도 아마 몇 통은 족히 되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고 해서 사달라고 매달리는 것을 매정하게 뿌리치기라도 하면, 그때부턴 막바로 한바탕 전쟁이다. 엄마 아빠가 저희들의 먹고 살 권리를 부당하게 억압(?)하기라도 했다는 듯 울며 불며 한바탕 난리를 친다. 참으로 난감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도대체 언제쯤이면 대화로써 아이들의 막무가내를 잠재워, 케이크니 초콜릿이니 하는 것들에 대한 무분별한 식탐을 자제토록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역지사지하는 심정으로 내 어린 날을 곰곰 돌이켜 본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먹을 것이 비교적 귀했던 시절, 그리 넉넉하지만은 않았던 집안살림 덕분에 요즘 아이들과는 달리 초콜릿이니 사탕이니 하는 걸 구경하는 건 거의 연중 행사에 가까웠고, 그래서 단 것이나 달콤한 것에 대한 욕구가 더욱 컸던 시기였다.

그때 나는 단 것 또는 달콤한 것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걸핏하면 꾀병을 부리곤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부모님께 더없이 죄송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지만, 시시때때로 배가 아프다거나 머리가 아프다고 꾀병을 부려댔던 것이다. 그러면 대개는 그 즉시 달콤한 박카스나 가스명수 같은 드링크약이 내게 주어졌기 때문이다.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처음 한두번은 몰라도 몇번 그런 꾀병을 반복하는 사이 아마도 부모님은 나의 얄팍한 속셈을 충분히 간파하셨을 것이 틀림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 내색없이 내가 꾀병을 부릴 때마다 박카스니 가스명수니 하는 드링크약을 사다 나르시곤 했었다.

이제와 짐작컨대 그렇게라도 해서 단 것 또는 달콤한 것을 먹고 싶어 안달하는 막내아들에 대한 안쓰러움 내지는 미안함을 씻고자 하셨던게 아니었을까 싶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론 때가 되면 제 스스로 그런 악동(?) 짓을 그만두겠거니 하는 미욱한 자식에 대한 믿음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아이들을 키우면서부터 종종 기억 저편에 묻어두었던 내 어린 날과 기억과, 그 시절 부모님의 마음을 되돌아보게 된다. 내 어린 날의 눈높이를 통해 아이들의 바람을 이해해 보려는 노력이요, 그 시절 철없는 행동으로 부모님을 힘들게 해드렸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나를 나무라고 질책하기보다는 이해해주고 감싸 안으며 키워주신 큰 사랑을 배우기 위함이다.

케이크니 초콜릿이니 하는 따위 별로 탐탁치 않은 먹거리들에 대한 아이들의 식탐과 맞서 전쟁 아닌 전쟁을 치르며, “이거 하나만 먹고 이제 그만 먹는 거야~아”하는 따위 부질없는 다짐을 앞세워 번번이 아이들의 막무가내에 무릎을 꿇으며, 그때 나의 부모님이 그랬던 것처럼 나 또한 우리 아이들이 언젠가는 제 스스로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본다.

‘항구에 정박해 있는 배는 안전하다. 그러나 배는 항구에 묶어두려고 만든 것이 아니다’라는 누군가의 말을 생각한다. 부모의 품이 비록 항구처럼 안전하다고는 해도, 언제까지고 아이들을 항구에 정박해 있는 배로 만들 수는 없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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