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를 앞둔 지난 1월 18일 이른 아침, 수년 만에 찾아온 한파에 몸을 웅크리고 공장을 들어서던 현대 자동차 노동자들은 낯선 유인물 하나를 건네 받았다. 무심코 유인물을 훑어보던 노동자들의 눈이 뒷면 귀퉁이의 짤막한 글에 주춤 머물렀다. 그곳에는 '하청은 아무나 하나'라는 제목으로 어느 하청 노동자의 일기가 소개되어 있었다. 하청은 아무나 하나? 그 밑에 매달려 있는 글을 보니 제목의 의미를 알아들을 만하다. "아무나 하청 못합니다. 안전 장치 없어도 일할 수 있어야 하고 보너스 없어도 생활할 수 있어야 하고 퇴직금 없어도 그만둘 수 있어야 합니다 하청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지요" 현대 자동차 사내 하청 노동자가 쓴 것으로 짐작되는 위 글의 제목은 '직영 성과급 받던 날'. 다음에 전문을 소개한다. 며칠 전, 12월 28일에는 성과급 100%, 상여금 100%, 설 직전에 성과급 50% 상여금 50%가 나온다는 대의원회 공고가 붙었다. 이 작은 공고문이 붙은 순간 공장은 일순간 환호의 분위기에 휩싸였다. 겨울이라 잔업이 줄어서 살림이 바짝 쪼들렸는데 이제야 숨통이 트였다며 모두들 환한 웃음이 가득했다. '우리도 혹시...'하는 마음에 소장을 보자마자 물어보지만 소장의 한마디, 꿈 깨란다. 80년대 말 이후로 하청에게 성과급이 지급됐던 적은 단 한번도 없단다. 현대자동차의 작년 순이익은 자그마치 6000억원이나 된다고 한다. 한 대라도 더 만들려고,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우리 역시 직영들과 똑같이 여름철 비지땀을 흘려가며 잔업, 철야, 특근 다 뛰었고, 끊임없이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에 매달렸다. 직영의 1/3밖에 안 되는 얄팍한 월급 봉투도 묵묵히 참아냈다. 그런데 이제는 연말 성과급마저 우리 하청들에게는 '남의 집 잔치'라니, 이건 해도해도 너무하다. 직영은 금으로 차 만들고, 하청은 똥으로 차 만드는 것도 아닌데... 직영들은 월급 봉투를 두 개씩 받아들고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 속없는 몇 명은 우리에게 다가와 '이래봐야 세금 떼고 나면 얼마 안된다'며 푸념을 해댄다. 아무리 떼봐야 직영 200%면 우리가 석달 꼬박 일해야 되는 돈이다. 평상시에는 그래도 좋은 사람이란 생각을 가지고 살았지만 이런 순간만큼은 소리라도 질러주고 싶다. 내 앞에서 유세하는 거냐고...하지만 '그래도 그게 어디에요...' 말을 흐리며 고개를 숙일 뿐이다. 직영들을 탓해봐야 아무 소용도 없다는 것도 알고, 그들의 잘못도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는데, 이 순간만큼은 우리 사정 몰라주고 마냥 기뻐하는 그들이 야속하기만 하다. '같이 일했는데 우리만 받아서 미안하다'라는 말 한마디라도 해주면 좋을 텐데... 이번 달 월급날까지 아직도 반달은 더 기다려야 한다. 이번에는 상여금도 나오니까, 100만원은 넘는다. 이 돈을 어떻게 써야할 지 열심히 머리를 굴려보지만, 쥐구멍에 볕들 날이 올 것 같진 않다. 새해에는 부모님께 따뜻한 코트 한 벌 해드리고 싶었는데 가벼운 스웨터로 만족해야겠다. 오늘따라 이리저리 뛰어 다니는 발걸음이 무겁기만 하다. 그냥 이 공장을 빨리 벗어나고만 싶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