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01.02.24 16:41수정 2001.02.26 10:33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대관령에 또 다시 폭설 쌓여 발목은 묶이고 봄꽃 재촉하는 봄비로 남녘은 안개꽃 자욱하다.
죄없는 노동자들의 모가지가 우수수 베어지는
그 곳 부평에는 피가 튀고 비명 속 아수라장인가
좋았던 시절도 없이 또 다시 쫓겨나는 이 겨울 끝자락
복면한 자객들을 앞세워 오는 이 무식한 봄에
다시는 쫓겨나지 않으리란 다짐도 없이 동백은 피었다.
또 다시 피가 튀는 이 땅에 붉디붉은 동백꽃이 손짓한들
전선을 떠난 형제들이 돌아와 어깨를 걸 것인가
도저히 이럴 수는 없는 일이라고 돌을 모아줄 것인가.
피어라 피어 동백꽃이 피든 지든 매맞는 봄은 온다
피어라 피어 목숨꽃을 짤라도 싸움의 봄은 온다.
봄은 온다, 미친 곤봉춤을 추는 저 거리에
개처럼 끌려가는 아우성으로 산발한 봄이 온다
양심도 분노도 잠재운 마약 같은 봄이 온다.
그러나 봄이 오든 말든 노동의 싸움은 뜬다.
목숨 성성한 노동의 아이들은 큰다.
어제(23일) 폭우가 쏟아지는 빗속을 뚫고 주암을 갔습니다. 그 곳은 노동자의 고향, 20여 년간 갈쿠리로 밥줄을 이어온 철근쟁이 김해화, 김기홍 시인이 태어난 땅입니다. 그 곳에 서울서 내려온 '활화산'의 소설가이자 노동자들의 잡지〈삶이 보이는 창〉을 발행하는 이인휘 씨와 함께 어울려〈섶회〉를 먹으러 갔습니다.
심산유곡 1급수에서만 산다는 피라미을 빻아 겨울 무, 호박씨 등을 넣고 무친〈섶회〉, 비오는 날 공치는 날에 맞춰 고향을 찾은 두 시인과 객지 손님을 맞은 면내 고향 아주머니는 참 맛있게도 섶회를 무쳐 주었습니다.
난생 처음 먹어보는 매우 귀한 음식이었습니다. 머리카락과 등짝이 후줄근 땀에 젖을 정도로 맵싸한〈섶회〉를 맛있게도 먹었습니다. 함께 먹던 김해화 시인은 객지생활에 지칠 때면 간절하게 먹고 싶었던 고향의 음식이었다고 자랑했고, 김기홍 시인은 고향 콩으로 된장을 담그겠다며 돌아가는 길에 잠깐 장에 들렸습니다.
그칠 줄 모르고 온 종일 내리던 빗줄기, 빗길 따라 돌아오면서 우리는 분노하고 말았습니다. 대우차 무더기 해고사태와 DJ정권의 본질에 대해 견해를 나누던 우리들은 "왜 노동자들이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당해야 하는가!"라며 견딜 수 없는 분노로 목청을 높였습니다.
사기대출과 탈세로 나라를 말아먹은 자본가들은 권력의 비호를 받은듯 도피중인데 열심히 일하고 세금 꼬박 낸 죄밖에 없는 노동자는 죄를 뒤집어쓰고 매 맞고 끌려가야 하는가! 돈푼도 없는 사기업자들은 서류 몇 장으로 주택자금을 받아 부실 공사로 희희낙락 뱃속 챙기는데 노동자들은 쌔가 빠지게 일하고도 일당도 제대로 못 받아 빚더미에 허덕여야 하는가!
조합주의에 취해 좋은 시절 누리던 대기업 노동자들은 구조조정으로 발등에 불이 떨어지자 목청을 높였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와 정규직 노동자와의 격차는 하늘과 땅이라고 할까요? 대기업 노동자들은 비정규직(소위 노가다, 일용직 등) 노동자와의 상대적인 신분격차를 우월감으로 누리며 허상에 불과한 중상층 생활에 세월가는 줄 몰랐던 것은 사실입니다.
노동자라고 다 노동자는 아닙니다. 매 맞고 굶는 놈 옆에서 밥그릇만 챙기던 놈들도 언젠가 매 맞는 놈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매번 속으면서도 난 해당되지 않는다고 손을 내저으며 멀쩡히 구경하던 결과 오늘의 매맞고 짤려나가는 현실을 불러온 것입니다.
노동자란? 일하는 자의 권리와 자유를 획득하기 위한 정당한 싸움을 통해 평등한 세상을 꿈꾸는, 그래서 맞는 자도 때리는 자도 없는,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고 밥과 술을 나누며 내일의 희망찬 노동을 꿈꾸는 세계를 만드는 평화의 계급입니다.
20여 년을 가방 하나 둘러메고 이 공사장 저 공사판을 떠돌아다니며 시로 싸우던 노동자시인과의 하루, 넉넉치 못한 일당으로 먼 데서 온 손님들을 대접한 그 따뜻한 노동자 시인과의 하루, 넋 나간 고급 상품으로 전락해 시장에 팔려간 어떤 노동자시인과 달리 새벽에 깨어 일하고 시 쓰는 그 시인과의 하루는〈섶회〉처럼 맵고 알싸한 진정함이 있었습니다.
혹시 노동자입니까? 아니면 자본가입니까? 그것은 이념적 나뉨이 아니라 분명한 자기 확인입니다. 작업복만 입었다고 노동자는 아닙니다. 노동자의 생각과 실천으로 살아가는 사람, 그 길에서 헷갈린 놀음으로 함께 걸어온 동지를 팔아 넘긴 사람은 노동자가 아닙니다. 다만 한 때 노동자였을 뿐입니다.
노동의 대지에 비가 내렸습니다. 그 대지에 동백꽃이 피었습니다. 이제 다시 머리띠를 매고 작업화 끈을 동여매고 노동의 대지에 피를 뿌리는 폭력적인 권력과 자본에 맞서야할 때입니다.
동의하십니까? 다시 봄이 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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