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학교선배와 술자리를 한 적이 있다. 중견기업 대리인 그는 매달 30일 전후로 한바탕 실랑이를 벌인다고 한다. 신용카드 대금을 막기 위해서다. 1년 전에 4개 카드에서 끌어다 쓴 500만원의 원금이 아직도 400만원이나 남아 있다. 그 동안 카드 이자만 100만원 가까이 나갔다.
한 신용카드전문 인터넷 사이트가 최근 회원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더니 3명 중 2명이 카드로 카드빚을 막는 `돌려막기'를 경험했다고 한다.
신용카드는 `제2의 화폐'라며 자본주의 꽃으로 불린다. 숫자와 이름이 밝힌 플라스틱을 내면 웬만한 곳에서 현금을 대신한다. 말 그대로 믿고 팔고, 서비스한다는 것이다. 돈의 흐름도 투명해진다. 그만큼 정부의 세금 징수도 쉬워진다. 재정수입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정부가 신용카드 사용 확대를 위해 당근 정책을 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카드사들은 경쟁적으로 회원을 모집했고 지난해 1조원이 넘는 당기 순이익을 냈다. 사상 최대의 호황이다. 일부 카드사 직원들은 지난해 말 700% 가까운 성과금도 받았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 보면 그리 즐거운 일도 아니다. 한국은행 발표를 보면 99년 이후 경기침체로 10명 중 7명의 신용카드 회원들이 물품사용보단 현금서비스와 카드론으로 카드를 주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은행대출 받으면 일 년에 10% 내외 이자만 내면될 돈을 20% 이상의 고금리로 돈을 받아 쓰고 있는 것이다. 은행을 통한 직접대출이 어려운 사람들이 그 만큼 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은행들은 카드사를 통한 간접대출을 더욱 늘리고 카드사들은 싼 이자로 돈을 끌어다 비싼 이자로 공급하다 보니 서로 손해보는 장사가 아니다. 카드사의 미사여구를 동원한 서비스 제공 미끼를 먹은 일반 서민들은 또 다시 빚내서 빚을 갚아야 하는 악순환을 거듭해야 한다.
투명한 돈의 흐름도 중요하지만 올바른 돈의 흐름이 더욱 중요하다. 개인과 가계의 파산이 크게 늘고 금융권 전반이 불신을 받고 다시 이것이 국민에게 부담으로 돌아올 때는 너무 늦다.
신용카드가 국내에 들어온 지 올해로 꼭 32년째를 맞는다. 애물단지로 전락한 신용카드를 다시 살리기 위해서 정부나 금융당국, 카드업계의 보다 전향적인 자세가 아쉬운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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