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 도대체 여잘 어떻게 본 거야?

안나 마리아 지크문트 <영혼을 저당잡힌 히틀러의 여인들>

등록 2001.02.26 16:04수정 2001.02.26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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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그 여인들을 과연 진취적이고 창의적이며 활동적인 여성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가정에 충실하고 헌신적인 모습이 최고의 미덕이었던 전통적인 여성상과 다른 것은 틀림없지만, 그들이 진정한 사회참여와 자아실현의 모습을 보여주었는지는 의문이다.

삶의 방식의 문제라고 하면, 얘기가 달라질 수도 있을 테다. 하지만, 그 여인들의 모습이 전통적인 여성상에 분명히 반한다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 책은 히틀러 옆에 그 여인들이 있었기 때문에 독일이 파멸로 이르긴 했어도, 어쨌든 그들의 모습엔 당시 독일의 여성해방 움직임이 녹아있다고 말하려 한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히틀러를 흠모했다는 여인들의 연애담이 지극히 드라마적으로 쓰여 있어서, 한 남자 앞에 무력한 여자의 모습만이 부각될 뿐이다. 사랑하는 남자의 실체를 알지도 못한 채 자신의 모든 것을 무책임하게 바쳐버리는 맹목적 여성. 그것이 과연 여성해방의 모습인가.

여성은 남성의 동지가 아니야

히틀러는 독일민족을 파멸로 이끌 뻔 한 사람이다. 유태인을 인간으로도 취급하지 않아 끔찍한 아우슈비츠 가스실에서 벌거벗긴 채 몰살시키려 했던 히스테릭한 만행의 장본인이다.

제1차 대전 이후 무한 권력을 장악하면서 파시즘의 거두가 되어 제2차 대전을 일으켰으며, 1941년 소련군의 반격으로 베를린이 고립되면서, 결국 폐허가 된 도시의 지하방공호 안에서 자결하기까지 히틀러는 소위 '열등민족', 저항운동 가담자, 그리고 점령지의 엘리트들을 가스실이나 화장로에서 조직적으로 집단 학살하였다. 무자비하게 벌거벗긴 채. 가히 전 세계 역사에서 가장 잔인한 악행이라 할 만한 짓이었다.

그런 히틀러를 사랑한 사람이 있었다니. 한 남자로서든, 이상적인 국가사회주의의 표상으로 맹신한 것이든 그 사람의 눈과 판단력이 의심스럽다. 그 사랑의 심도가 어느 정도였느냐를 보면 그게 또 하나의 아이러니다.


자살하는 순간 결혼반지를 받고 행복하게 죽어갔다는 여인 에바 브라운 이야기는 많이들 들었을 테고, 그 밖에도 몇 몇 여성들의 헌신과 원조가 없었다면 히틀러는 애초부터 아무 일도 못했을 거였다.

여인들은 파산직전이었던 그의 집세며, 당의 부채를 해결해주었고, 그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 고급저택, 자동차, 값비싼 보석 등을 헌납했다. 심지어 차고 있던 손목시계까지. 진심이건 아니건 그는 여인들의 마음을 사로잡느라 키스세례를 퍼부으며, 그 여인들의 인맥과 부를 이용해 국가사회주의 독일노동당(나치당)의 당원을 확보해나갔던 것이다.


히틀러 자신 "내 생각엔 총통이란 말도 여자들이 만들어낸 것 같소"라 말할 정도로, 여성지지자들의 마음을 능란하게 조종하여, 이를 뜻대로 이용하는 데 있어서 그는 거의 천재적이었다. 책에 나오는 여성들 대부분이 그에게 그런 존재였다. 에바 브라운, 겔리 라우발, 카린 괴링, 엠미 괴링, 막가 괴벨스, 레니 리펜슈탈, 게르트루트 숄츠 클링크, 헨리테 폰 쉬라흐.

책은 그 여성들의 이야기를 각자 20에서 30여 페이지씩 할당하여 들려준다. 그들이 어떻게 히틀러를 맹신하고 추종하게 되었는지 당시 독일의 상황과 함께 사건들을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다.

인종 배양 프로그램이라니

이렇듯 히틀러는 여성들을 이용해 최고의 자리에 오르고 유지해나갔다. 그야말로 이용만 한건지, 그의 여성관을 알고 나면 확실해진다. 상황에 따라 상반대는 의견을 주창하긴 했어도, 그의 '생명의 샘'이라는 인종배양 프로그램을 알고나면 그가 얼마나 인간같지 않은 인간인지가 확실해진다.

인종배양 프로그램이란, 여성은 남성의 동지가 될 수 없으며, 여성은 가정 안에서만 행복하다는 근거없는 생각이 게르만우월주의와 결합하여 생겨난 것인데, 정부조직에 '생명의 샘'이란 이름으로 하나의 부서까지 만들었다 한다. 지금이야 코웃음칠 일이지만 그시대엔 가능했나 보다.

'인종상으로 문제가 없는 미혼모들에게 무료로 출산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아이의 생산을 도울 자로는 인종적으로 순수한 남자들이 추천될 것이다.'
히틀러의 이런 생각을 지지하고 사랑한 여성들은 자신들의 성을 망각한 건 아닐까. 어쩌면 자신들은 그 정책에서 제외될 수 있는 권력 안에 있었기 때문에 무관심했는지도 모른다. 그럴 것이다.

그런데도 그 여성들을 진정한 여성해방의 모습으로 보아야 하는지는 읽는 분들도 판단할 수 있으리라 본다. 제2차 대전의 와중, 히틀러에게 도취되어 지지자가 되고 사랑하게 된 여인, 지지를 거두는 순간 수용소로 가야했던 여인, 있는 듯 없는 듯 그의 사랑만을 기다리던 여인 등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히틀러를 알게 되고, 그 시대 독일을 이해하게 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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