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만한 화폭에 개미만큼의 내용을 담아낼 수도 있고, 엽서 크기의 종이에 지구를 담아낼 수도 있는 것이 그림이다."
예순을 훌쩍 넘긴 노인이 폭 당 수십 미터의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힘겹지 않느냐는 우문(愚問)에 대한 김기혁 화백(63세)의 현답(賢答)이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인 석굴암, 불국사, 해인사 팔만대장경, 종묘, 수원 화성, 창덕궁 등을 진채화(眞彩畵) 방식으로 화폭에 담아내는 작업을 20년 가까이 해온 김기혁 화백. 그의 요사이 고민은 전시공간을 찾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다룬 7부 작 중 하나인 <경판이안도(經板移安圖)>-팔만대장경을 강화 선원사에서 가야산 해인사로 옮기는 광경의 그림-의 길이만도 53m에 이르는 것.
각각의 문화유산을 8개의 테마로 잡아 각 테마를 다시 예닐곱 개의 그림으로 완성시킨 최화백의 작품들. 그 그림을 이어 붙인 길이는 10리를 넘어선다. "일관적인 테마로 연결된 그림들이니 만치 동일 전시공간에서 선보이길 원한다"는 최화백의 바램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자그마치 총 연장 5Km의 갤러리가 필요하다. 그러나 한국에선 내노라하는 '예술의전당' 전시장도 겨우 '석굴암' 연작(총 연장 1Km)만을 내 걸 규모에 불과한 실정.
김화백의 작품이 이렇듯 크고 길어진 데는 이유가 있다. 그는 70년대 까진 고려대학교에서 영문학을 가르치던 교수였다. 학자가 가지는 특성이 여럿 있을 수 있으나, 뭐니뭐니 해도 학자의 성정(性情), 그 핵심은 '세밀한 고찰'과 '철저한 검증'.
그가 말한다. "고인돌에 대한 그림을 그리려면 고인돌에 대해 누구보다 자세하고,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이어지는 그의 말. "<경판이안도>도 마찬가지다. 누구는 과감한 생략과 건너뜀이 필요하다고 충고했지만, 판경이 옮겨지는 과정이 하나라도 생략된다면 설화를 그림으로 구체화시키려는 내 작업이 의미가 그 뜻을 잃을 것만 같았다."
일반인들에게 김화백의 그림만큼이나 관심을 끄는 건 김화백의 이력. 1980년, 그는 고정적인 수입과 명예가 보장되는 고려대 영문과 '교수'직을 박차고 나와 가난과 고난의 앞길이 훤히 뵈는 '화가'가 된다. 마흔을 넘긴 나이에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터.
이유를 물었다. 회갑을 넘긴 사람의 대답 같지 않게 속된 말로 '쿨'한 답변. "평탄한 길이 아니라,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가보고 싶었다. 더 늦기 전에." 그 대답과 함께 떠오른 게 있었다. 서머셋 모옴이 화가 고갱의 삶에서 영감을 얻어 썼다는 <달과 6펜스>의 주인공 스트릭랜드. 증권중개인이라는 안정적인 직업과 가족을 버리고, 그림을 위해 타이티 섬으로 떠난 사람.
몇몇 이야기가 더 오고갔다. 그는 민족 탄생의 구심점으로 작용한 단군신화에 관련된 설화를 테마로 그림을 그리고싶다고 했고, 설화와 관련된 그림을 상설적으로 전시하는 공간을 마련하고 싶다고 했다. 덧붙여 서양의 설화라 할 성경에 기초한 미켈란젤로의 천장화같은 작품을 가지지 못한 한국의 문화풍토를 질타했다.
김화백의 작품은 86년 일본 경도방송사 초대전과 88년 3차례에 걸친 유럽 순회전시회로 해외에서 이미 그 가치를 판단 받은 바 있다. '부피'에 관계없이 '질'이 보장되는 작품이라면 전시의 공간을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나라. 21세기 문화선진국을 표방한 한국. 그 문화정책의 입안·수행자들이 고민해야 할 부분이 아닐까.
김기혁 화백의 작품은 그의 홈페이지에서도 볼 수 있다. www.namk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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