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01.02.26 20:00수정 2001.02.27 13:38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50여 년이 흐를 동안 여전히 국가보안법을 사랑하는 당신에게 편지를 씁니다. 먼저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바쁜 당신에게 지금은 사라져 버린 어느 부족의 이야기를 들려 드리지요.
사람의 본성을 간직한 어느 부족
참사람 부족이 있습니다. 아침이면 동쪽 태양을 향해 반원을 그리고 서서 대지에 있는 모든 것들과 마음속으로 대화를 합니다. 그들은 먹을 것을 따로 준비하지 않습니다. 대자연에게 먹을 것을 요청하면, 때로는 뱀 한 마리, 때로는 물고기, 새, 흰개미, 다양한 풀들이 그들 앞에 나타나고 그들은 그 음식을 감사히 받았습니다. 그들은 필요 이상의 음식을 취하지 않으며 다른 생명들과도 먹이를 나눌 줄 압니다. 식물을 발견해도 번식하는데 필요한 만큼은 남겨 놓을 줄 알며 아무리 물이 궁해도 동물들의 몫을 남겨 둡니다.
호주 사막에 사는 참사람 부족이 있습니다. 그들은 시계 대신에 백 절도 넘는 노래로 시간과 거리를 잽니다. 기억력을 앗아가는 문자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이불이랄 것도 없어 추운 날에는 딩고 가죽으로 체온을 유지했고, 더욱 추운 날에는 발을 가운데로 모으고 둥글게 누워 자기도 합니다. 그들은 오감을 이용해 사막 한 가운데서도 물줄기를 찾습니다.
참사람 부족은 우리 같은 문명인들을 무탄트라 부릅니다. 무탄트.
참사람 부족의 말로 돌연변이를 뜻합니다. 참사람 부족이 보기에 문명인들은 자신의 직관을 믿고 행동하는 일을 멀리 해, 고대의 기억과 보편적 진리를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이 말하는 돌연변이란 외모가 이상한 이들을 말하는 게 아니라 아닌 머리와 가슴에서 원초성이 사라져버린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며, 애초 참사람의 모습과 너무나 다르게 사는 문명인들이 돌연변이로 보였던 것입니다.
2년여 전에 소개받은 책
제가 이 부족을 알게 된 지는 얼마 되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첫 인연은 한참 거슬러 울러갑니다. 98년 10월 10일. 그날은 제가 청탁 받았던 글을 김경환 선배에게 건네주던 날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마감이 바쁜 날짜였는데, 그날 선배는 그냥 돌려보내기가 뭐했는지 저녁 식사를 함께 하자며 나를 근처 음식점으로 이끌었습니다. 그 자리는 자연스레 술자리로 이어졌고 12시가 다될 무렵 마친 그 자리에서 선배는 몇 가지 꿈을 말했습니다.
'시간에 쫓겨 사는 이 삶이 싫다. 훗날 시골 내려가서 폐교를 한 채 얻어 그곳에서 글쟁이들을 위한 난장을 벌이겠다. 그 난장을 통해 글쟁이들이 재충전 해 보다 좋은 글을 쓸 수 있도록, 그런 자리를 만들겠다. 농사도 지을 것이다.…' 그날 선배는 내게 어떤 책 한 권을 선물해주고 싶다고 했습니다.
[무탄트].
선배가 권하던 책입니다. 미국 백인 여성 말로 모간이 어느 날 호주의 원주민들과 함께 여행을 하면서 겪게 되는 여러 일들을 기록돼 있습니다. 원주민이라면 '미개한 사람들' 쯤으로 치부해 버리는 이들에게는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그 여행에서 말로 모간은 원주민들이 진정한 사람, 태초의 사람의 본성을 간직하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문명이 결코 우월함을 나타내는 것이 아님을 석 달 남짓한 사막 여행을 통해 하나하나 깨닫게 됩니다.
아마 선배가 그 책을 선물하고 싶었던 이유는 그 무렵 선배가 관심을 갖기 시작한, 영성이나 생태운동을 이해하는데 이 책만큼 유용한 책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나 역시 이 책을 읽고 난 후, 문명이라 불리는 것들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아울러 인간의 진정한 해방의 길이 어디로 닿아 있어야 하는지, 그 요원한 해답을 찾기 위해 나서는 길에 훌륭한 나침반을 얻은 듯 합니다.
혹여 국가보안법을 사랑하는 당신도 그런 지침서가 필요하다면 이참에 한 번 읽어보십시오. 비록 당신의 기득권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깨닫고 자괴감에 빠질 지도 모르지만, 그것만 잘 이겨낸다면 나처럼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이들을 제대로 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니까요 지피지기이면 백전불퇴라 했던가요?
원주민인 참사람 부족들은 문명인들이 참사람 부족과 가장 다른 점은 문명인들이 두려움을 갖고 있는 것이라 말합니다. 문명인, 즉 무탄트들은 두려움이 강해 법의 강제와 감옥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또한 무탄트들의 국가안보란 두려운 나라들을 무기로 위협하는 것이라 말합니다.
폭력의 숨통을 끊어놓을 봄꽃들, 두려움
선배에게 4년 6월이란 긴 시간동안 몸의 자유, 나아가 영혼의 자유마저 앗아가 버린 국가보안법을 사랑하는 당신들은 무엇을 두려워해, 법의 강제와 감옥을 필요로 했을까요? 선배처럼 '국가보안법' 위반자들이 공산주의자들과 한 패가 되어 풍요로운 남한 사회를 위협할까봐서요? '뿔 달린 북한 사람들'이라는 허상이 남한의 인민들에게 먹혀들던 시절에 그런 이유의 두려움은 충분히 의미가 있었을 듯 합니다. 그러나 이제 그런 정도의 논리로 사람들이 설득될 만큼 이 사회는 허약하지 않은 듯합니다.
아니, 이른바 민혁당 사건 관련자들을 처리하는 국가보안법을 사랑하는 당신들의 모습을 보노라면 이제 그런 논리는 억측임이 분명해 보입니다. 법의 형평성마저 잃어버린 채 내려진 판결, 그 판결을 이끌어낸 몇몇 국가권력들, 그 판결에 정당성을 부여해주는 국가보안법….
서른이 넘은 나이에 이 사회를 유지하는 당신들의 힘들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요. 전향했다고 말한 선배는 자신의 일은 모두 밝혔을지언정 끝내 다른 동지들에 대해서는 수사과정에서도 말하지 않았다는 얘기를 들은 듯합니다. 그 사건과 관련한 다른 이들의 '죄가'를 불었더라면 선배 역시 자유롭게 되었을지 모를 일이지요. 그것이야말로 당신들의 생명을 연장해 주는 좋은 먹이니까요.
우리 사회 역시 무탄트들이 많은 듯 합니다. 자신들의 존재 이유를 유지하기 위해 국가보안법에 의존하는 이들, '국가안보'라는 미명아래 자신들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악법을 폐지하지 않는 이들, 국가보안법에 의존해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는 이들, 바로 당신들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정치적 무탄트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본디 사회란 구성원들의 자유로운 삶을 보장하는 것일진대, 사상의 자유야말로 사람에게 더없이 소중한 원초성일 텐데, 그 본래의 본성을 어기며 몇몇 기득권자들의 이해를 위해 이 사회에 생명을 붙이고 있는 무탄트, 돌연변이들인 셈이지요.
"과거의 어떤 생각, 사회적 판단을 그렇게 처벌할 수 있는 나라, 그걸 밥벌이로 삼는 이들이 사회적 힘을 자랑할 수 있는 나라"(노항래님)를 만들고 있는 무탄트들 말입니다. 사람 한 명 한 명의 자유로운 삶을 위해 존재해야 할 이들이, 이해관계에 따라 법과 권력을 악용하는 행위는 분명 사람 사는 사회에 존재하는 당신들 같은 무탄트 들만이 하는 짓일 것입니다. 호주 참사람 부족들은 자연과 더불어 자연의 일부로 살았던 태초 인간의 본성을 잃어버린 문명인들의 오만함과 폭력으로 인해 이 지구별을 떠나게 됩니다.
이 땅에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려는 사람들은, 양심을 버린 채 몇몇의 기득권을 위해 반인간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국가보안법을 사랑하는 당신들 같은 무탄트들의 오만함과 폭력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참사람 부족들은 무탄트들로 인해 지구별을 떠났지만, 인권을 소중히 생각하는 이들은 국가보안법을 지키려는 당신들의 폭력 앞에서도 그 폭력의 숨통을 끊어놓을 봄꽃을 피울 것입니다.
그리움 기다림, 그리고 연대
2월 한 달간 감성시위를 펼치는 동안 선배의 형수는 당신들과의 싸움을 위해 민가협 집회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하루가 간다는 것'에 기뻐하던 마음에서 뭔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나선 것입니다. 3대 악법 폐지를 위한 서명운동을 벌이며 한 사람 한 사람의 서명을 받을 때마다 선배를 만날 하루가 줄어드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고 합니다.
저 역시 이번 감성시위로 선배가 감옥 안에서 있어야 하는 날 들 중 단 하루라도 줄일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그 하루는 단시 24시간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 하루는 당신들을 포함한 우리 사회의 모든 이들의 인권과 평화를 위한 평등세상이 올 날이 우리 곁으로 하루만큼 다가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 겁니다. 당신들만의 권력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일 겁니다.
아울러 이곳 감성시위에 함께 참여한 이들의 마음이 담긴 열매일 것입니다. "후배가 안쓰러워 없는 주머니 돈을 나누어주고 그것도 부족해서 어디 무어 먹일 것이 없나 또 살펴보고 이제 헤어지면 어디로 가냐고 걱정하던 형의 그 낯빛을 마주하고 싶"(류계환님)은 이의 그리움이자, "선배가 다시 세상 속으로 들어오는 날 그냥 모른 척 하면서 옛날 밤 새워 술을 마시며 얘기하고 웃고 하던 그 때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갈"(구영식님) 날에 대한 기다림이고, "회원으로 있는 동호회에 감성시위를 퍼다 올리고 있"(루오님)는 이의 연대의식인 것입니다.
그 마음들 안에 당신들의 폭력을 이겨낸 선배가 띄운 봄날이 있을 것입니다.
'모든 생명이 움트고, 물오르고, 깨어나는, 참 좋은 봄날입니다. / 길 위에 있으면 그 길의 끝에 닿고 싶다. / 어느 소설가의 얘기가 오늘 절실하게 와 닿습니다. / 나도 어딘가로 끝없이 이어지는 이름 모를 길 위에 서 있고 싶습니다. / 그리운 이들과 함께라면 더욱 좋겠지요. / 가없이 푸르게 펼쳐진 하늘을 봅니다. / 따뜻한 봄바람에 내 더운 숨결을 실어 보냅니다. / 어디선가 문득 봄을 느끼시거든, 제가 띄운 마음이라 생각해 주소서.'
오직 권력에만 눈 먼 당신은 저의 감성시위와 감성시위에 호응해준 이들의 마음을 가벼이 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무탄트]에서 참사람 부족은 이런 말을 남깁니다.
"왜 무탄트들은 깨닫지 못할까요? 내가 부른 노래가 단 한 사람만이라도 행복하게 해준다면, 그것은 훌륭한 일이라는 것을. 단 한 사람만이라도 도울 수 있다면 그것은 좋은 일입니다. 우리는 어쨌든 한번에 한 사람밖에는 도울 수 없으니까요."
참사람 부족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들에게 이로울 때만' 무탄트들이 추구하는 지식이 의미 있다고 말합니다. 이제 국가보안법 폐지를 반대하며 더욱 굳건히 국가보안법을 사랑하려는 당신들에게 진심으로 묻고 싶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당신들 마음 안에서 울리는 소리로 말해 보십시오.
'이 사회의 모든 사람들에게 과연 국가보안법은 이로운 것입니까?'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된 김경환의 조기 사면을 위한 감성시위의 일환으로 올린 여덟 번째이자 마지막 글입니다. [무탄트]라는 책을 통해 이 땅에서 국가보안법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해보고 싶었습니다. 이 글 괄호 안에 쓰인 이름들은 감성시위 기사에 의견을 써주신 분들입니다.
이 글을 마지막으로 2월 한 달간 펼쳤던 감성시위를 마칩니다. 국가보안법이 폐지되면 선배가 좀더 쉽게 사면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직 보안법이 폐지될 날이 먼 듯합니다. 저의 감성시위를 끝까지 지켜 봐주신 분들과, 선배의 안녕을 기원해준 네티즌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번 시위가 선배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지만, 감성시위에 동참해준 이들의 마음만큼 맑은 에너지가 선배에게 전해 졌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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